정형근 의원이 최근 실시된 중앙위 의장 경선에서 1위를 차지, 중앙당 간부로 화려하게 복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최고 의결기구인 상임운영위원회에 나란히 참석, 주요 정책에 대해 수시로 마찰을 빚게 됐다. 최고위원인 원 의원과 중앙위의장인 정 의원은 상임운영위 멤버이며, 남경필 의원도 원내 수석부대표로 배석 권한을 갖고 있다.
이들의 대립은 개인적인 감정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각종 정책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그만큼 주목받고 있다.
이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상당히 깊다. 올초 4·15총선 공천을 앞두고 원희룡, 남경필 의원은 정형근 의원을 지목해 낙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 의원은 한때 남경필 의원을 ‘오렌지족’이라고 비난하는 등 대립을 빚어왔다.
원·남 의원 입장에선 한나라당을 중도보수 노선으로 새롭게 탄생시켜야 하는데, 정형근 의원의 존재가 상당히 껄끄럽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는 입장이다. 정 의원이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및 2차장 출신으로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과거를 갖고 있는데다 각종 폭로정치를 주도,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원·남 의원은 정형근 의원이 한나라당에 있어선 안된다고 보고 지난 총선 때 축출 운동을 벌였다. 실제 소장파의 입김이 강했던 지난 총선의 공천 심사과정에서 정 의원은 낙천될 뻔했다. 하지만 이문열씨 등 보수주의자들이 많았던 공천심사위에서 “소장파의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막판에 정 의원의 공천을 결정했다.
정 의원은 공천을 받은 뒤 이미지 변신을 추구해왔다. 더이상 폭로전에 가담하지 않고, 과거적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면서 유연한 행보를 해왔다. 최근 들어선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대폭 개정을 주장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정 의원이 이번에 중앙위 의장 경선에 출마, 다시 중앙 정치무대에 복귀하려하자 소장파들은 무척 당황했다. 실제 총선 직후인 지난 5월 정 의원이 부산시 지부장을 맡고 싶다고 했을 때 소장파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격렬히 반대하진 못했다. 지역사회의 일이고, 부산에서 나름대로 3선 의원들끼리 역할분담 차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정 의원이 중앙위 의장 경선에 출마한 것은 상황이 달랐다. 중앙위 의장은 한나라당의 상임운영위원으로 각종 정책에 간여할수 있는 위치다. 한나라당을 탈바꿈시키겠다고 생각하는 소장파들 입장에선 난데없는 장벽을 만난 격이다.
▲ 원희룡 의원, (오른쪽)남경필 의원 | ||
특히 정형근 의원이 최근 당의 만류에도 국보법 관련 TV토론에 참여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는 데 대해 많은 걱정을 토로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당이 국민의 지지를 잃은 데는 시대착오적 색깔론과 공작정치의 그늘을 털지 못한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그것에 책임 있는 사람이 자숙하기는커녕 또다시 마각을 드러내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정 의원을 ‘어둠의 자식들’ ‘어둠의 그늘’이라고 표현하고 “새로운 한나라당이 나가는 길에는 그 같은 세력의 공간과 배역은 더 이상없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의원 역시 “정 의원이 방송에 나와 지금의 한나라당의 모습을 제대로 된 보수라고 주장하면 전국민적 웃음거리가 된다”고 못마땅해했다.
한나라당은 대체로 정형근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껄끄러워하고 있다. 국보법 토론의 경우만 해도 정형근 의원이 나설 경우 자칫 국보법 가해자 대 국보법 피해자의 대결로 비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형근 의원이 주도하는 한나라당의 국보법 폐지반대투쟁이 과거 이미지를 연상시켜 한나라당을 궁지로 몰아갈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정 의원은 그러나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 TV토론 참석을 강행하고 중앙위 의장에도 당선됐다. 14일 실시된 중앙위 의장 경선에서 대의원 총 1천88명 중 5백91명(56. 8%)이 참여한 가운데 1인 2표제에 의해 4백99표(42. 2%)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정 의장은 인사말에서 “잘못된 사상과 역사관으로 분열과 투쟁만 일삼는 노무현 정권과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며 “당내 중심으로 걸어들어가 국민이 원하는 당으로 환골탈태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제2의 6·25에 직면해 있고 60여 년 피땀 흘려 쌓아올린 정체성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을 하고 있다”며 “노 정권은 국보법 폐지를 통해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노리고 있고 수도 이전으로 지배세력을 교체, 사실상 영구집권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의 갑작스런 출현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가급적 정 의원이 알아서 전면에 나서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정 의원은 거꾸로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정 의원은 과거처럼 폭로에 나서지 않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변신을 자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철학은 소장파와 180도 다르다. 결국 원희룡 남경필 의원이 총대를 메고 정 의원과 한판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높다.
정 의원의 등장으로 한나라당은 예기치 않은 고민에 빠진 셈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