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짜 사진작가가 ‘작업’ 때마다 상대여성에게 내뱉었던 흔하디 흔한 레퍼토리다. 하지만 이 ‘평범한’ 유인구에 속아넘어가 신세를 망친 여성들은 뜻밖에도 적지 않았다.
사진작가 행세를 하며 젊은 여성들을 유혹해 몸과 돈을 빼앗아 오다 최근 경찰에 덜미를 잡힌 임우영씨(가명·34). 임씨는 ‘상금 1억원짜리 세미누드사진 국제대회에 출품한다’며 여성들의 알몸사진을 찍은 뒤 이를 이용해 성폭행과 공갈협박을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넉 달 동안 임씨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농락당한 여성들은 모두 7명. 하지만 그의 집에서 20여 장의 여성 알몸사진과 모델계약서 등이 발견돼 실제 피해자는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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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와 가짜 사진작가 임씨의 첫만남은 지난 1월말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는 생각에 인터넷에 접속한 이씨는 한 동호회 사이트에서 임씨가 올린 글을 발견하게 된다.
임씨는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인터넷에 ‘H포토 동호회’라는 사진동호회를 직접 개설해 놓고 누군가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 그가 구인구직 광고란에 올린 ‘세미누드대회에 입상시켜 드립니다. 모델로 선발되면 1천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는 문구는 이씨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평소 외모에 자신감을 갖고 있던 이씨는 곧바로 임씨에게 연락을 했다. 임씨는 “계약서를 가지고 갈 테니 만나자”며 서울 신천동의 한 커피숍으로 나올 것을 요구했다. 임씨는 그럴듯하게 사진작가 행세를 하기 위해 카메라와 누드사진 수십 장도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다.
커피숍으로 나온 이씨의 예쁘장한 외모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임씨는 슬슬 ‘작업’에 들어갔다. 아슬아슬한 차림새를 한 여성들의 예술사진을 보여주며 “너 정도면 국제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겠다”고 이씨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씨 역시 임씨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더구나 국제사진전에서 입선하면 상금의 70%를 준다고 하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말이 먹혀 들어가기 시작하자 임씨는 가지고 온 ‘모델계약서’를 내밀었고 이씨도 스스럼없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서상에는 국제대회에 입상하면 상금이 2천만원(장려상)~1억원(대상)에 이르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임씨가 말한 모델 일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임씨는 계약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씨를 잡아끌었다. “모델이 되기 위해선 먼저 테스트를 해야 한다”며 자신을 이끄는 임씨를 이씨는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모델이 되려면 이 정도야…’라는 생각에 임씨를 따라 결국 여관에까지 가게 된 이씨.
객실에 들어선 임씨는 가방에서 준비해온 옷가지를 꺼내들었다. 임씨가 말한 ‘테스트’란 바로 이씨의 몸매를 훑어보겠다는 것. 이씨는 미니스커트를 한번 입어보라며 카메라까지 들이대는 ‘사진 작가’ 임씨의 말에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고 포즈를 취했다.
‘찰칵, 찰칵.’ 몇 컷의 사진 촬영이 끝나자 갑자기 임씨가 돌변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임씨를 밀치던 이씨. 하지만 임씨는 “모델이 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느냐. 이 정도는 꼭 거치는 코스다”라며 힘으로 밀어붙였다. 이씨가 반항하자 임씨는 예상했다는 듯 “내겐 너의 나체사진이 있다”며 협박을 했고 결국 이씨는 임씨에게 두 차례나 몸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 외에도 같은 수법으로 농락당한 피해여성은 여러 명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씨처럼 모델로 출세해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임씨를 따라나섰다가 거꾸로 악몽을 겪고 말았다. 임씨는 ‘세미누드 국제사진전’에 출품하기 위한 참가비 명목으로 이들 피해여성들에게서 4백만원 가량을 뜯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가짜 사진작가 임씨는 서울 모 대학 신학과를 나온 뒤 가구점에서 직원으로 일해왔다고 한다. 강도, 강간 등 전과 12범으로 아직 미혼인 그는 PC방을 전전하며 인터넷을 이용하다 이 같은 범행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자신이 상대한 여성들이 쉽게 피해사실을 토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범죄행각을 이어가던 임씨. 하지만 한 여성의 신고로 그의 위험한 사진작가 행세는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임씨는 경찰이 인터넷 ID를 추적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동호회 사이트를 폐쇄하기도 했지만 결코 법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임씨는 지난 5월21일 성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과 공갈협박 혐의로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