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기다려!’ 젭 부시 대권 노크
새해가 밝으면서 워싱턴 정가의 관심은 오는 2016년 대선에서 과연 두 정치 가문의 맞대결이 다시 한 번 성사될지에 모아지고 있다. 여기서 정치 가문이란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을 일컫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이자 전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과 조지 H 부시의 차남이자 조지 W 부시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맞대결이 성사될 경우 두 가문이 대선에서 맞붙는 것은 지난 1992년 대선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1992년 대선 당시에는 아칸소 주지사였던 떠오르는 ‘신예’ 빌 클린턴이 노련한 ‘베테랑’ 조지 H 부시를 누르고 승리한 바 있다. 미 언론들은 23년 전 그때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이뤄질지 모르는 ‘세기의 대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존경받는 정치 명문가라고 하면 단연 ‘케네디 가문’을 꼽을 수 있다. 장남 존 F 케네디는 35대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고, 차남인 로버트 케네디는 뉴욕주 상원의원을, 그리고 삼남인 에드워드 케네디는 민주당 의원을 지낸 그야말로 유명 정치인을 여럿 배출한 명문가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치 명문가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2016년 대선을 가리켜 MSNBC의 크리스 매튜스는 “역대 선거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점치면서 “왕조의 결투”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이 2016년 대선에서 24년 만에 재대결을 펼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 딸 첼시 클린턴. 로이터/뉴시스
우선 클린턴 가문의 역사를 살펴보자. 부시 가문에 비해 클린턴 가문의 정치 왕조는 역사가 짧은 것이 사실이다. 클린턴 가문의 왕조가 시작된 것은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오른 1992년부터였다. 현재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이 여전히 워싱턴 정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힐러리를 끝으로 끊길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만일 외동딸인 첼시 클린턴이 정계 진출을 선언하지 않는 한 말이다. 현재 첼시는 클린턴 재단을 이끌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워싱턴에 발을 담글 의향을 내비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 ‘현대판 귀족’이라고도 불리는 부시 가문의 정치 뿌리는 깊다. 케네디 가문에 견줄 정도로 집안 대대로 정치인을 많이 배출했으며, 벌써 대통령만 두 명이 나왔다. 하지만 부시 가문의 선조가 처음부터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은 아니었다. 조지 H 부시의 조부인 페트리아크 새뮤얼 프레스콧 부시는 은행가이자 철강회사를 운영하는 기업가였다. 부시 가문의 첫 번째 직업 정치인은 그의 장남인 프레스콧 셸던 부시였다.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했던 그는 훗날 정치에 입문한 후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대통령만 두 명을 배출한 부시 가문은 ‘현대판 귀족’으로 불린다. 왼쪽부터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과 그의 장남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차남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AP/연합뉴스
부시 가문에 꽃이 피기 시작했던 것은 그의 아들인 조지 H 부시가 41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1989년부터였다. 비록 1992년 민주당 후보였던 클린턴에 패해 연임에 실패했지만 8년 후 다시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가 43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가문의 영광을 이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사정이 이러니 만일 다음 대선에서 세 번째 ‘부시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부시 가문이 케네디 가문을 뛰어넘는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정치 가문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이런 야망은 이미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듯하다. 실제 젭 부시는 지난 12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출마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적극 검토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히면서 “오는 1월 선거자금 접수단체인 PAC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젭 부시의 백악관행은 아직까지는 썩 낙관적이지 않다. 우선 지지율에서 그렇다. 현재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의 지지율은 9%에 그치고 있다. 이는 선두주자인 미트 롬니(20%), 벤 카슨(10%)의 뒤를 어이 세 번째에 해당한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과 1 대 1로 붙었을 경우에도 37% 대 43%로 뒤지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밖에 이민제도 개혁에 대한 그의 유연한 태도는 공화당 내 보수파들 사이에서 반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빌 클린턴의 고문을 지냈으며, 현재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자금 모금을 맡고 있는 해럴드 아이케스는 “젭 부시야말로 힐러리 클린턴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무엇보다도 부시의 아내인 콜럼바가 멕시코 태생이란 점이 가장 강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 점이 히스패닉계 미국인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아이케스의 말에 따르면 부시는 집에서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심지어 스페인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공화당이 대선에서 이 점을 부각시킨다면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이 부시에게 몰표를 선사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히스패닉계는 현재 미국 인구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구성원들이기도 하다.
반면 그의 ‘스페인 사랑’이 공화당 내 일부에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지난 4월, 그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동정의 뜻을 비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는 점을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당시 부시는 불법 이민자들을 가리켜 “그들이 비록 법을 어긴 건 맞지만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다. 그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두둔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행위가 딱히 범죄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미국의 보수성향 단체인 티파티의 공화당 회원들은 부시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맹렬히 비난하는 한편, 멕시코 국경 경비 강화 등 보다 강력한 이민 억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젭 부시의 약점으로 꼽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형인 조지 W 부시다. 형이 남긴 두 가지 유산, 즉 ‘전쟁’과 ‘포로 고문’은 자칫 그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선거 자금 모금에 있어서만큼은 오히려 ‘부시’라는 이름이 든든한 지원이 된다. 전통적으로 부유한 지지자들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는 데다 전임 두 대통령인 아버지와 형의 후원도 넉넉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가 공화당 내에서 아직 견고한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래 전부터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클린턴은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만일 클린턴이 민주당 경선에 입후보할 경우 클린턴을 지지할 것이라고 응답한 민주당 유권자들은 65%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 다음을 잇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렌의 지지율은 10%대에 머물고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순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빌 클린턴의 선거 전략가였던 제임스 카빌은 “클린턴이 반드시 대선 후보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정치에는 ‘반드시’란 없다”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의 정치 전략가였던 크레이그 스미스도 방심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만일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정부의 연장선으로 여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현재 오바마의 인기가 곤두박질 치고 있다는 데 있다.
클린턴의 또 다른 약점으로는 그녀의 정치적 성향이 민주당 내에서 충분히 ‘좌파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2002년 상원의원 시절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는 점은 아직도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이 정치적으로는 라이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앙숙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조지 H 부시와 빌 클린턴은 현재 친구가 됐다. 둘은 전 세계에서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함께 구호활동을 펼치면서 우애를 다지고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나 2005년 카트리나 허리케인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2010년 아이티섬 지진이 발생했을 때마다 함께 적극적으로 손을 맞잡은 바 있다.
또한 클린턴은 조지 W 부시와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부시는 1년에 두 번씩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정책에 대한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서 부시는 “우리는 늘 의견 일치를 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클린턴과의 대화는 내게 매우 중요했었다”라고 밝혔다.
만일 오는 2016년 ‘빅매치’가 성사될 경우 미국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것은 자명한 일.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이 벌써부터 대선이 기다려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