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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체포된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사기 및 상습도박.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강남 일대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 등 유흥업소를 돌며 부유해 보이는 부녀자를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 뒤,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부녀자를 꾀어 성관계를 갖고 돈을 뺏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태는 ‘고전적 제비’와 큰 차이가 없지만 이들이 저지른 범행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과거의 제비보다 훨씬 고도화된 것이다. 한때 강남에서 사라졌던 ‘강남 제비’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지난 9월25일 밤 강남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앞에 위치한 M나이트클럽 주차장. 그랜저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섰고, 이어 고급 의상과 진주목걸이를 한 K씨(44·주부)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이들이 이곳에 온 것은 M나이트클럽에서 가볍게 술을 한잔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K씨와 친구가 차에서 내릴 때부터 이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서초경찰서에 긴급체포된 황씨 등 일당 네 명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초저녁부터 M나이트클럽 주차장을 서성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이들이 노리는 대상은 M나이트클럽을 찾아온 돈 많은 부녀자였다.
K씨를 본 황씨 등 범인 일당은 행동에 들어갔다. K씨를 따라 나이트클럽에 들어간 황씨 등은 웨이터를 통해 끈질기게 K씨 일행에게 부킹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K씨와 친구는 끈질긴 부킹에 합석을 허용했고, 시간이 가면서 술자리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날 밤 황씨 등은 더이상의 추근거림 없이 K씨로부터 연락처만 받고 헤어졌다.
며칠 뒤 황씨는 K씨와 따로 만났다. 그는 K씨에게 자신을 “강남에 10층짜리 빌딩을 가지고 있으며 성형외과와 비뇨기과를 운영하는 병원장”이라고 소개했다. 또 다방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장한 공범 윤씨에 대해 “파주에 부동산을 엄청나게 소유한 부동산 재벌”이라고 허풍을 쳤다.
K씨는 1천만원짜리 롤렉스시계를 차고, 고급 승용차를 몰며, 세련된 매너를 보인 황씨 등이 백억원대의 사업자금을 굴린다는 등의 말로 유혹하자 마치 자신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후 몇 차례 만남이 더 이루어진 뒤 황씨 등은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날 황씨 등 일당 네 명은 K씨에게 점심을 사주겠다며 불러냈고, 점심을 먹은 뒤 황씨 등은 점당 1만원짜리 고스톱을 쳤다. 이날 황씨는 자신이 딴 돈 80만원을 선심쓰듯 K씨에게 주었다. 물론 이것은 K씨의 환심을 사기 위한 각본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K씨는 고마움의 표시로 고급 열쇠고리를 황씨 등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황씨 등이 본격적인 행동을 개시한 것은 이즈음부터. 황씨는 “고액 수표를 바꿀 잔돈이 필요하다”며 K씨에게 현금 및 소액 수표를 빌린 후 속칭 고리를 떼어주거나 두툼한 이자를 주면서 도박판에 돈을 빌려주더라도 후한 이자와 원금을 챙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했다. 그러면서 황씨 등은 K씨로부터 빌린 돈의 일부를 갚지 않고 남겨 만남이 계속 이어지도록 했다.
만남이 계속될수록 사태는 점점 커져갔다. 지난 10월6일 K씨는 때마침 딸의 결혼자금으로 쓰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고 받은 5억원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황씨는 그동안 K씨에게 밀린 빚 4천만원을 즉석에서 갚은 뒤, 의도적으로 고스톱판에서 돈을 잃으면서 K씨의 가방에 있는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나머지 일당들은 머뭇거리는 K씨에게 “한 방 터지면 갚을 수 있다”며 황씨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바람을 잡았다. 속칭 ‘칠홍싸리 고스톱’(돼지 그림이 있는 화투를 먹을 경우 한 마리당 5백만원씩을 받는 신종 고스톱)으로 황씨는 30분 만에 5억원 가운데 3억원을 잃었다.
고스톱판이 끝난 뒤 돈을 잃은 황씨는 K씨를 커피숍으로 데려가 “곧 갚겠다” “별것 아니다”며 마음을 달래려 애썼다. 물론 이러는 사이에 나머지 일당들은 K씨의 수표 3억원을 은행에서 전액 현금으로 바꿔버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 K씨는 아무래도 마음이 찜찜해 수표지급정지를 하려고 은행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수표가 현금으로 교환되었음을 알았다. 뒤늦게 사기당했음을 눈치챈 K씨는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K씨뿐만 아니라 청담동 소재 C나이트클럽, 광진구 소재 H나이트클럽 등을 무대로 비슷한 수법으로 상당수 부녀자들을 갈취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황씨 등 일당은 사기 전과 7범에서 25범으로 유치장, 경마장 등지에서 서로 알게 된 사이였다. 이들은 범행할 때 병원장, 부동산재벌 등 갑부행세를 하면서 “당신같이 세련되고 멋진 여성과는 당장에 결혼할 수 있다”는 등 달콤한 말과 꽃바구니 등의 선물로 부녀자들을 유혹해 성관계까지 가졌다.
특히 이들은 거액의 판돈이 걸린 고스톱판을 벌여 자연스럽게 부녀자들이 돈을 가져오도록 유도했고, 돈의 일부를 항상 빚으로 남겨 계속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한번 이들의 덫에 걸린 여성들은 자신이 거액 도박의 공범이 되었다는 점과 이들과의 성관계 사실이 밝혀질까봐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수사 결과 황씨와 K씨가 성관계를 갖지 않았던 것은 때마침 황씨가 ‘인테리어’(성기에 실리콘을 넣는 수술)를 한 직후였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