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김○○.
나이:34세.
인상착의:짧은 반 곱슬머리, 등에 커다란 문신….
한아무개씨(여·26)는 절망에 찬 얼굴로 안산시내 거리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찾는 공개수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얼핏보면 흉악범을 찾는 전단지와 같지만, 수배대상은 뜻밖에도 그녀와 결혼을 했던 ‘남편’이었다. 그런데도 전단지에는 ‘현상금 3백만원’이 걸려 있었다. 현상금까지 걸고 남편을 찾아나선 한씨. 그녀가 직접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와야 했던 사정은 기가 막혔다.
한씨는 지난해 7월 문제의 남편인 김아무개씨(33)를 처음 만났다. 당시 한씨의 여자친구가 남편 김씨의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다. 그 후 네 사람은 비교적 자주 만났고 자연스럽게 한씨와 김씨는 가깝게 됐다.
당시 남편 김씨는 자신을 1백억원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경호업체 사장이라고 소개하며 한씨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한씨는 그즈음 전 남편과 헤어진 뒤 딸 하나를 두고 있어 김씨의 접근이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이혼녀인 자신에게 재산도 많고 총각이라고 주장하는 김씨가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만남을 거듭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게 됐고, 마침내 결혼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혼을 앞두고 한씨 부모는 김씨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고 반대를 했지만 김씨가 돈 많은 사업가라는 점을 믿고 결혼을 승낙했다.
김씨는 결혼식도 평범하게 치르지 않았다. 강원도 태백의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야외결혼식을 올리는 등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게다가 결혼식의 주례는 유명 코미디언 B씨였고, 사회는 개그맨 C씨였다.
결혼식에서 유명 인사와 수많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한씨로선 자신의 행복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한씨의 꿈은 깨지기 시작했다. 남편 김씨는 사업자금 명목으로 한씨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업체가 세무감사를 받고 있어 금융거래가 묶여 급하게 현금이 필요하다며 한씨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한씨 가족들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빌린 뒤에도 김씨의 요구는 계속됐다.
남편 김씨는 한씨의 딸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겠다며 인감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남편은 인감증명서로 아내 명의의 자동차를 팔아 치우고는 집을 나가 버렸다.
한씨 가족이 김씨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집을 나간 지 몇달 째 돌아오지 않은 김씨의 실종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찾아갔을 때였다. 경찰서에서 확인한 결과 남편의 이름은 가짜였다. 남편의 가짜 이름은 그가 다닌 적이 있던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다른 직원의 것이었다. 그간 신분증을 위조해 사용해왔던 것이었다.
한씨는 남편 김씨를 자신에게 소개시켜 준 남편의 친구를 찾아가 추궁한 끝에 실명을 알아냈다. 그의 실명은 김○○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남편 김씨가 이미 혼인빙자간음죄로 징역을 살았던 전과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현재 5건의 혼인빙자 사기사건에 연루돼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과 결혼하기 4개월 전에도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남편과 결혼한 신부는 파주의 유지 집안 딸로 역시 수억대의 돈을 남편에게 사기당했다.
남편 김씨의 행적을 계속 추적해 본 결과 피해여성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김씨가 숨겨놓은 자식만 3명이었다.
피해를 입은 여성이나 피해 가족들은 대부분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본인들이 망신당할 것이 우려돼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씨의 사기행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알려진 것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김씨의 부모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는 부모가 미리 묫자리를 봐둔 가묘에 부모 이름의 비석을 만들어 세워 놓고는 죽은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한씨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한 편의 연극이었던 것임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김씨는 한씨와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크고 작은 사기행각을 그치지 않았다. 김씨의 경호업체는 간판만 걸어놓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물품을 공급한 관련 경호업체에서도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김씨는 카드 한도를 늘려준다는 명목으로 여직원으로부터 빌린 신용카드로 수천만원을 쓰기도 했다. 여자들로부터 뜯어낸 돈을 가지고 갑부 행세를 하면서 다른 범행대상을 유혹하는 데 사용했던 것.
현재 한씨의 가족들은 김씨의 행적을 찾아 직접 수배전단을 만들어 돌리고 있다. 한씨는 “지금은 많이 진정되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마음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한씨의 오빠는 “강력범죄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는데, 단순사기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아 우리가 직접 나섰다. 김씨가 노리는 범행대상은 순진한 시골사람들, 그리고 이혼했거나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다. 그런 여성들에게 부자행세를 하는 김씨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평생을 산 고향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녀 안산으로 모두 이사를 할 계획”이라고 현상황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