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락장부에는 남성 1백명의 ID와 전화번호, 특이사항이 적혀있었다. | ||
“그런데요?”
“최근 채팅으로 정민(가명)이란 여자 만난 적 있죠?”
회사원 김아무개씨는 최근 난데없이 경찰 수사관으로부터 이 같은 전화를 받고 놀랐다. 경찰이 말한 정민이란 여자는 얼마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조건 만남’으로 만나 딱 한 차례 성관계를 가졌던 여자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 사이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경찰서를 찾아간 김씨는 그곳에서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문제의 정민이란 여자와 마주쳤다. 그리고 자신이 경찰로 불려온 것은 한 권의 장부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장부는 정민이란 여자가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들의 채팅 ID와 연락처를 적어둔 것이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신 외에도 1백여 명의 남자들이 동일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 권의 대학노트 때문에 1백 명의 남성들이 떨고 있다. 이 노트에는 이아무개씨(여·41)가 정민이란 이름으로 채팅을 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은 남성들의 ID가 빼곡히 적혀 있다. 그는 이 명단을 통해 상대 남성들을 관리해 왔던 것.
이씨는 윤락행위방지법 위반으로 지난 2월16일 밤 체포되어 현재 구속중이다. 윤락행위방지법은 쌍방처벌을 하기 때문에 노트에 이름이 적힌 남자들은 꼼짝없이 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남편과 별거하고 혼자 사는 이씨와 미혼의 중년여성인 공범 주아무개씨(37)가 윤락을 목적으로 채팅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4일.
두 여인은 송파구 방이동에 월세방을 잡은 뒤 컴퓨터 두대를 구입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하루종일 컴퓨터를 켜놓고 채팅 사이트에 들어온 남성들에게 쪽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들은 남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 채팅 사이트를 이용하는 남성들도 이 같은 여성들의 제안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 알고 있던 터였다. 만남을 가지는 데는 그리 긴 대화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남성들은 대부분 ‘조건 만남’이라는 첫 쪽지에 바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무르는 방이동의 집 인근의 모텔로 남성들을 불러냈다. 굳이 먼 곳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 하루에도 수차례 남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관리한 남성들의 신상명세는 그대로 노트에 기록됐다. 이들은 1백 명의 남성들과 2백여 회에 달하는 성관계를 통해 4개월 만에 3천만원을 벌었으나 결국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이 여성들은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 확실해 보이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노트에 형광펜으로 표시해 구분했다고 한다. 실제로 만남을 가졌을 경우에는 만난 날짜, 성관계 대가로 받은 돈의 액수 등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까다로운 남자를 만났을 때는 ‘싸가지’ ‘왕싸가지’ 등으로 묘사해 놓기도 했다.
이들은 변태적인 집단 성관계도 마다하지 않았다. 장부에는 집단 성관계를 가진 남성을 ‘2:1’, ‘2:2’라고 적어 두었다. 1대1의 경우 이들이 받은 돈은 15만원. 그러나 2대1의 경우(두 여자와 한 남자)에는 20만원을 받았다. 장부에 의하면 2백여 회의 성관계 가운데 10회 정도가 2대1의 만남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과 성관계를 가진 남자들의 직업과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대리부터 자영업을 하는 60대의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수없게 걸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은 얌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선처를 부탁했다. 자신들의 가정에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 경찰측도 순순히 본인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 집에 알리지 않고 처리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발을 내미는 남자들도 적지 않은 상황. 순수한 만남이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김아무개씨(50대)는 “나이 들어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채팅을 한 것이다. 마음이 맞아 성관계를 가진 것이었는데 갑자기 이씨가 돈을 요구해 기분이 많이 상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만난 사실이 없다며 잡아떼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화를 버럭 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아무개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런 여자는 알지도 못한다.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말라”며 처음부터 혐의를 부인하다가 경찰이 장부에 적힌 전화번호와 화대로 지불한 액수를 보여주며 추궁을 하자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만나기로 했으나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고 한발 물러났지만 성관계 사실 자체는 딱 잡아뗐다.
또 경찰에서 조사를 위해 전화를 걸면 귀가 잘 안들린다는 핑계로 못알아듣겠다고 하는 남자도 있는가 하면 언론보도를 통해 사건을 접한 한 남자의 경우 미리 자신의 전화번호를 바꿔버리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수사에 비협조적이거나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재를 끝까지 추적해 한 명도 빠짐없이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사를 맡은 용산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별다른 죄책감 없이 성매매를 하지만 윤락행위등방지법은 쌍방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주의를 환기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비록 ‘조건 만남’이라도 모르는 여자와는 성관계를 가지다가는 언젠가 큰코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자들과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진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과 헤어진 후 할일도 별로 없는 데다 돈도 궁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