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번호 ○○○○호, 유아원생 성추행 혐의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서울고등법원 형사5부)
“사건번호 ○○○○호, 애인인 업소여성과 동침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지난 10일. 여성계가 발칵 뒤집혔다. 유아원생과 가출 청소년 등 여성을 상대로 벌어졌던 성폭력 범죄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2부, 형사5부, 서울중앙지법 등 재판부는 같은 날 그동안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여온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성계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이번에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 1심에 불복해 항소한 사건인데다, 특히 유아원생 성추행 사건의 경우 법원이 1심의 유죄를 뒤엎고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울YMCA, 한국여성민우회, 아동성폭력 피해자부모모임 등 여성단체들이 모두 강력한 항의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향후 이 문제는 또다른 관심거리가 될 전망이다.
서울YMCA 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관장은 “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며 “조만간 성폭력상담소, 아동성폭력 피해자부모모임 등 여성계측과 모임을 갖고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이 중 한 사건의 판결을 맡았던 전수안 부장판사(여)도 “이번 사건과 동일한 대법원 판례가 있어 이렇게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그러나 청소년을 보호하는 책임 등을 고려할 경우 과거 대법원 판례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문제의 사건을 알아보자.
1. 강제로 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지난 10일 최씨가 인터넷으로 만난 가출 청소년 이양을 속여서 성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무려 1년 가까이 법원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끌어왔던 사건.
사건은 지난 2002년 10월 최씨와 이양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양은 여자 친구 몇 명과 함께 가출해 여기저기서 전전하고 있던 와중에 최씨 일행을 만나게 됐다.
이후 이양은 최씨가 ‘너를 사랑한다’, ‘어서 빨리 커서 스무 살이 되면 나와 결혼하자’는 말을 믿고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그런 최씨가 기소된 것은 이양의 아버지에 의해서였다. 이양의 아버지는 딸이 가출한 직후 경찰에 가출신고를 하면서, 인신매매됐을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것.
그러나 경찰수사 결과 이양은 최 씨와 함께 있었고 이양의 아버지는 최씨가 결혼을 하겠다고 속여 이양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알게 되자 ‘위계에 의한 청소년 간음’ 혐의로 최씨를 기소했다.
문제는 ‘성년 남자가 여자 청소년에게 결혼하겠다는 말로 속여 잠자리를 같이 하면 무죄일까, 유죄일까’하는 부분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계에 의한 간음’은 종교의식, 병 치료 등의 명목으로 성폭행 하는 것으로, 최씨가 ‘사랑한다’고 속이고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강제로 한 것이 아니라면 간음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8월 서울 송파구의 Y유아원에서는 이 유아원의 교사가 아이들 부모에 의해 고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아원 체육교사인 양아무개씨(27)가 기소된 이유는 여자 유아원생 3명을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기 때문.
피해자측 부모에 따르면 이 유아원에 파견된 체육교사인 양씨가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유아원에 다니던 여자 어린이를 화장실, 체육실 등으로 불러 여러 차례 치마를 벗기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은 이들 중 한 아이가 체육수업이 들어있는 날 유치원에 가는 것을 유독 싫어해 부모가 이를 묻다가 체육교사의 성추행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날 서울고법 형사5부는 이날 양씨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형사5부는 이 같은 판결을 내린 이유에 대해 “피해자 어린이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아동성폭력 피해자부모모임 등은 강력히 반발할 태세다. 대표자인 송영옥씨는 “재판부가 3~4세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것 같다”며 “많은 곳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있지만, 정작 법원에서는 이 같은 결과가 나와 허탈하기 그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종업원에게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기소된 유흥업소 주인도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여종업원과 손님이 화대를 지급하지 않는 ‘애인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3월 발생했다. 유부남 백 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 서울 서초동의 한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신 뒤 여종업원 이 아무개씨(22)와 성관계를 가지려 모텔로 들어갔다가, 뒤따라온 경찰에 의해 덜미가 잡혔다.
당시 백씨는 경찰조사에서 “성 매매 대가로 40만원의 화대를 지급했다”고 순순히 밝혔으나, 이후 말을 바꿔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우리는 애인사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역시 지난 10일 백씨와 유흥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백씨와 여 종업원이 몇 차례 통화를 한 기록이 있어 애인관계라는 점을 인정한 때문이다.
유흥업소의 여직원이라고 해도, 애인인 손님과 대가 없이 성관계를 맺은 것은 윤락이 아니라는 게 판결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