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계왕’ 성은 입은 앵커들 줄줄이 벼락출세
‘백계왕’ 저우융캉이 CCTV 아나운서들을 첩으로 둘 수 있었던 건 그의 측근이자 친분이 깊었던 리둥성(작은 사진) CCTV 부사장 덕분이었다.
2013년 12월 체포돼 부패 혐의를 조사받고 당적이 박탈된 저우융캉의 경우, ‘비리로 축적한 재산이 1000억 위안(약 17조 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보다도 ‘지금까지 그가 범한 여자들이 400명에 달한다’는 의혹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백계왕(100마리 암탉을 거느린 왕)’이라고 불리는 저우융캉은 카사노바도 울고 갈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다. 대부분 자신의 권력과 돈을 이용해서 여자를 ‘선물 받는’ 식으로 불륜을 저질렀으며, 이 가운데는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여대생, 여배우 등 다양한 여성들이 있었다. 홍콩의 <핑궈일보>는 지금까지 밝혀진 저우융캉의 내연녀가 최소 28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복수의 중국 언론들은 그가 베이징에 6곳의 ‘행궁’을 마련해 이곳에서 여성들을 거느리고 파티를 즐겼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감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그가 외도를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은 이미 1985년 랴오닝성 판진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부터였다.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그는 1998년에는 선량, 다롄, 우한, 난징, 청두, 창사, 톈진 등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27명의 여성들을 범하기도 했다.
성상납 대가로 그가 여성들에게 제공했던 것은 대부분 일자리나 승진이었다. 그와 하룻밤을 보낸 여성들은 대부분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분한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서 성상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1999년 쓰촨성 당서기 재직 시절부터였다. 지방 관리들로부터 여성들을 제공 받았던 그는 그것도 모자라 호텔의 여종업원과 부하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기도 했으며, 사무실로 매춘부를 불러 성관계를 맺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주색잡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의 일부 매체는 심지어 그가 공산당 동료 및 부하 관리들의 아내와 스와핑 행각을 벌였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이 가운데는 보시라이의 아내인 구카이라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홍콩의 <청밍 매거진>은 그가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2005년부터 성병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저우융캉이 28세 연하의 두 번째 부인인 CCTV 아나운서 출신의 자샤오예(44)를 만난 것도 리둥성을 통해서였다. 장쩌민 전 주석의 부인 왕예핑의 외질녀인 자샤오예는 빼어난 미모로 CCTV 수습기자 시절부터 리둥성의 눈에 띄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서는 리둥성이 원래는 자신의 내연녀였던 자샤오예를 저우융캉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물했다’는 설도 있다.
1999년 저우융캉을 처음 만났던 자샤오예는 얼마 지나지 않아 CCTV 경제채널의 편집인으로 승진했으며, 2000년 저우융캉의 부인인 왕수화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6개월 후 저우융캉과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저우융캉의 나이는 58세, 자샤오예는 31세였다.
저우융캉의 아내가 된 후 CCTV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자샤오예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인터넷에서도 그녀에 대한 사진이나 정보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이와 관련, 홍콩의 <애플 데일리>는 저우융캉이 권력을 이용해서 인터넷에서 자샤오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왼쪽부터 예잉춘, 선빙, 리샤오멍, 탕찬.
저우융캉의 또 다른 내연녀로 거론되고 있는 CCTV 아나운서로는 예잉춘(40)과 선빙(38)이 있다. 둘 모두 미모를 겸비한 스타급 아나운서들로, 역시 리둥성의 소개로 저우융캉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생방송 뉴스 시간에 브래지어 끈이 흘러내리는 방송 사고로 더욱 유명했던 예잉춘은 언제부턴가 갑자기 중국어 국제방송인 CCTV-4 채널의 아나운서로 초고속 승진했는가 하면,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직에 오르면서 공직에도 진출했다.
그녀의 이런 승진의 배후에는 저우융캉이 있었으며, 이는 지난 2013년 11월, 베이징의 한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저우융캉과 성관계를 맺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설로 굳어진 상태다.
CCTV에서 경제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던 선빙은 2012년 CCTV를 퇴사한 후 중앙정법위원회 정보센터 부주임으로 승진하면서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그녀의 승진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가 바로 저우융캉이었던 것이다.
또한 선빙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남편의 사업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저우융캉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그때마다 저우융캉은 지역의 공산당 간부들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예잉춘과 선빙은 모두 행방이 묘연한 상태며, 당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전 중국군 예술단 소속 가수인 탕찬(39)의 경우에는 공산당 간부들의 ‘공동의 정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탕찬을 공유한 간부들로는 저우융캉, 보시라이,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 국장, 리둥성 등이 있었으며, 심지어 저우융캉의 비서였던 위강과는 동거까지 했다는 소문도 파다한 상태다.
하지만 탕찬은 2011년부터 실종 상태며, 현재 간첩죄를 선고 받고 후베이성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죄목은 고위 간부들과 잠자리를 가지면서 군사 및 경제 정보를 수집한 후 외국 정보기관에 팔아넘긴 혐의였다.
이밖에 저우융캉의 첩으로 지목된 CCTV 아나운서들로는 리샤오멍(41), 어우양샤단(37), 라오춘옌(42) 등이 있지만 모두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2008년 쓰촨성 지진 보도 당시 눈물을 흘리면서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리샤오멍은 온갖 소문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방송을 계속하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처음 불거졌던 이 소문은 사실 여부를 떠나 빠른 속도로 확산됐으며, 당시 이 소문으로 인해 장쯔이 측은 75만 달러(약 8억 원) 상당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보쉰>에 따르면 장쯔이는 보시라이를 비롯한 공산당 간부들에게 성접대를 하면서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장쯔이는 <보쉰>을 비롯한 해당 언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링지화 역시 여러 명의 CCTV 아나운서들을 첩으로 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이름이 거론된 아나운서로는 펑줘(40)가 있다. 1998년 CCTV 기자로 입사했던 펑줘는 2000년 시사뉴스부로 자리를 옮기더니 2008년에는 부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으로 고위직에 올랐다. 또한 평사원 시절에도 개인 분장실을 제공받는 등 CCTV 측으로부터 일찌감치 ‘특별대우’를 받아왔었다.
이 모든 것이 링지화의 입김 때문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2005년부터 CCTV 내부에서는 펑줘가 링지화의 내연녀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며, CCTV 직원들은 당시 공산당 중앙판공주임이었던 링지화가 후진타오 주석과 관련된 보도 때문에 CCTV 사무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중 펑줘와 눈이 맞았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펑줘는 지난해 9월부터 행방불명이 된 상태며, 현재 감찰당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성이 개방된 중국은 전통적으로 ‘첩문화’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또한 형법상 간통죄란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불륜을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다. 단지 공산당원의 경우에는 ‘불륜으로 인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에 한해 처벌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처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감찰당국이 저우융캉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직접적으로 ‘간통’을 언급한 것 역시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저우융캉 조강지처 사고사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징역 10년 가해자 1년 만에 풀려나… 저우융캉 회사 취직 지난 2000년 베이징 인근에서 저우융캉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왕수화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왕수화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6개월 후 저우융캉은 내연녀였던 자샤오예와 재혼했다. 저우융캉은 첫 번째 부인 왕수화(원 안)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진 지 6개월 만에 내연녀였던 자샤오예(오른쪽)와 재혼했다. 이에 곧 중국 전역에서는 이런저런 의혹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저우융캉이 자샤오예와 결혼하기 위해서 조강지처를 청부살해 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이런 의혹은 당시 사고를 일으킨 차량에 군용 번호판이 부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짙어졌다. 실제 당시 체포된 운전기사 두 명은 준군사부대인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 경찰관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더욱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던 가해자들은 불과 12개월 만에 석방됐으며, 그 후 저우융캉의 석유기업에 보란 듯이 취직했다. 이처럼 의문투성이었건만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했던 언론사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의 최고위급 ‘호랑이’였던 저우융캉의 코털을 건드리는 용감한 언론사들도 없었을뿐더러 저우융캉이 인터넷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해도 이렇다 할 사생활 정보는 나오지 않았으며, 왕수화에 대한 정보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저우융캉이 ‘죽은 호랑이’가 되면서 사정은 급격히 달라졌다. 빗장이 풀린 언론사들은 저우융캉의 가족사에 대해 앞다퉈 파헤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왕수화의 의문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 <차이신>지는 왕수화를 “소박하고 순박한 여성이었다”라고 묘사하면서 랴오허 원전에서 근무할 당시 동료였던 한 지인의 입을 통해 “왕수화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가며 두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좋은 아내였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홍콩의 피닉스 방송은 “왕수화가 어느 날 저우융캉의 집무실 안으로 쳐들어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고위층 간부들 부인들이 모여 왕수화의 기분을 북돋아주기 위해 소풍을 갈 계획을 세웠다. 소풍을 가기로 한 그 주말에 왕수화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라고 의혹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수화의 죽음과 관련된 정보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워낙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꾸며내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상 자극적인 이야기가 그대로 정설로 굳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쓰촨성의 한 소식통 역시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면서 정색을 했다. 그는 “저우융캉을 궁지에 몰기 위해서 감찰반이 꾸민 이야기다. 쓰촨성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이 떠돈다. 저우융캉의 전임자였던 양루다이의 아내도 1993년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때도 사람들은 양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수군댔다”라고 말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