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싸전다리 앞은 전주 도박꾼들의 근거지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은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도박판을 벌여 돈을 뜯어내는 일당들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런 사기도박의 근거지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타짜의 시신이 발견된 것.
이 범행을 두고 지역민 사이에선 ‘사기도박에 대한 사회적 경고’라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경찰도 사기도박에 얽힌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총력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사건은 한 달이 넘도록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한 달여 만인 지난 3월22일 이 사건의 피의자인 송아무개씨(68)가 붙잡혔다.
경찰은 송씨를 조사하다 새로운 사실을 몇 가지 더 밝혀냈다. 그동안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 쓰였던 둔기가 망치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도끼였던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피해자를 도끼로 머리 뒤를 내리쳐 잔인하게 살해해 버린 것. 피해자가 저항한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아 그간 경찰은 노인보다는 젊은 사람을 중심으로 수사를 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송씨는 늙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을 순식간에 살해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전주 중부경찰서는 송씨가 지난해에도 사기도박꾼을 같은 수법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를 밝혀냈다. 그 사건의 피해자 또한 싸전다리 주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소위 ‘야바위’ 등을 해오던 도박꾼이었다.
도대체 송씨는 무슨 원한이 있었기에 이처럼 잔인한 연쇄 도끼살해를 저지른 것일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 10년간 자신의 돈을 빼앗아간 사기도박에 대한 원한이 깊게 맺혀있었던 걸로 전해진다.
송씨의 손에 살해된 인물들은 송씨와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살해된 두 사람은 전주 싸전다리 일대에선 제법 유명하던 인물이다. 전주시 전동에 위치한 싸전다리는, 서울의 종로3가 탑골공원 같은 곳이었다. 전주에서 유일하게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지난 2월 두 번째 사체가 발견될 무렵 이곳을 기자가 찾았을 때 추운 날씨에도 다리 아래에는 노인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합판으로 바람을 피할 수 있게 만든 칸막이 안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소위 ‘야바위꾼’이 주사위 숫자를 맞추는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다리 주변의 공터에도 노인들이 군데군데 모여 화투를 치고 있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커피나 술을 파는 중년 여인들까지 있었다. 일종의 ‘전주판 파고다 공원’이라 할 수 있는 것.
당시 송씨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거의 날리다시피 했다. 심지어 송씨는 아내가 앓아누웠을 때에도 병원비를 도박으로 다 날리기까지 했다. 송씨가 자신이 사기도박을 당했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송씨의 부인이 죽은 뒤였다. 이런 일로 사기도박꾼에 대한 송씨의 원한이 깊어진 것.
그럼에도 송씨는 자신의 도박중독을 끊지 못했다. 결국 가산을 모두 탕진했고 자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마침내 2003년 1월24일 송씨는 예전에 자신에게 사기도박을 했던 정아무개씨(66)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사기도박꾼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송씨는 정씨에게 “돈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같이 화투나 치자”며 전화를 해 집으로 끌어들인 것.
정씨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송씨는 정씨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화투장을 건네줬다. 정씨는 담요를 펼쳐놓고 혼자 화투짝을 맞춰보고 있었다. 이때 송씨는 다락에 숨겨둔 도끼를 꺼내들고 순식간에 정씨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정씨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을 사이도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송씨는 “한 번에 숨이 멎지 않아 쓰러진 정씨의 얼굴을 몇 차례 더 도끼로 내리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정씨의 시체를 쌀포대에 넣은 뒤 전주 송천동 비행장 근처 농수로의 갈대밭에 버렸다. 이 첫 번째 도끼 살해 사건 범인은 발생 1년여가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1년 뒤인 올해 2월15일 송씨는 또다시 범행에 나선다. 자신을 사기도박으로 속여 돈을 뺏어간 장아무개씨(39)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이번에도 똑같이 화투패를 건네주고 장씨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도끼로 뒤통수를 내리쳤다.
피가 계속 쏟아지자 송씨는 시신의 머리를 비닐봉지로 싼 뒤 장씨가 타고 온 무쏘 자동차 트렁크에 넣었다. 사흘 뒤 자정 무렵 송씨는 장씨의 차를 몰고 싸전다리 앞의 공터에 버려두고 온 것이다.
두 번째 사체 발견 뒤부터 사건을 담당한 전주 중부경찰서는 모든 부서가 총동원되어 탐문수사를 벌여 나갔다. 그러던 중 피의자 송씨의 집에서 시체를 덮어두었던 종이박스와 똑같은 박스를 발견하게 되면서 용의자 윤곽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특히 사건 당시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끼가 송씨 집에서 발견된 것은 결정적인 증거였다.
게다가 무쏘 차량 안에 있던 종이박스는 예전 송천동 비행장 변사사건에서 발견된 시체를 덮은 박스와 같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진전됐다. 결국 송씨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고 경찰은 한 달 넘게 걸린 긴 수사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1년 동안 미궁에 빠졌던 미제 사건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경찰 조사에서 송씨는 살해 동기에 대해 “돈이 떨어지자 그들이 사기도박으로 뺏어간 돈을 되찾아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담당한 전주 중부경찰서의 한 형사는 “사기도박으로 돈을 챙긴 사람이나 돈을 잃은 사람이나 그 말로가 편치 않은 것을 보니 도박이라는 것은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