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사건은 공장 화재에 대한 관계기관의 처리과정에 의문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다음은 이 사건을 맡은 서울 방배경찰서가 밝혀낸 사건 개요다.
사건이 처음 모의된 것은 97년 4월이었다. 당시 극심한 경기침체로 경영난에 허덕이던 금산화학 정아무개 사장(67)은 친구 정아무개씨(67)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이렇게 넉두리를 했다.
“회사가 너무 어렵다. 보험금이나 타게 누가 불이라도 질러줬으면 좋겠다.”
때마침 친구 정씨는 사업을 하다 실패해 특정한 직업도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정 사장의 말이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고 판단, 정 사장과 함께 범행을 모의했다. 정 사장은 정씨에게 보험금을 받으면 노후생활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범행을 모의한 두 사람은 97년 쌍십절인 10월10일을 범행일로 잡고 같은해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공장을 사전답사를 하는 등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 관계자는 “이들의 범행계획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정 사장이 들어가는 위치를 가르쳐주고 시너는 어느 위치에, 얼마만큼 뿌릴지 계산하고 방화 후 어느 문으로 빠져 나올지 등 세세하게 계획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범행 후 3개월 동안은 서로 연락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범행에 앞서 정 사장은 자신의 공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수십억의 대출을 받은 뒤 그중 40억원을 미리 빼돌렸다. 그리고 더 많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범행(방화)을 하기 한달 전 보험가입금을 4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증액했다.
사건 직후 이 부분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보험금을 지급했던 D화재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 부분은 고의적인 방화의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재는 방화 흔적도 태워버리기 때문에 방화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 사건 역시 방화를 입증하지 못했다.
게다가 경찰 수사 결과 이 공장의 화재원인이 누전으로 결론지어져 보험사는 계약된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보험사 관계자는 “나중에 해당 지역에서 정 사장이 지역유지라는 점을 이용해 해당 소방서나 경찰서에 압력을 넣어 실화로 위장한 것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었지만, 소문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고 전했다.
어쨌든 D보험사는 사건 발생 2개월 뒤인 97년 12월 금산화학측에 42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했고, 보험금 지급과 함께 사건은 종결됐다.
그러나 묻혀질 뻔했던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2004년 3월 초였다.
공범 정씨가 자신의 또다른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7년 전 자신이 저질렀던 방화에 대해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는 친구에게 “당시 정 사장의 요청에 의해 그같은 일(방화)를 저질렀음에도 5백만원만 주고 입을 닦았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사건을 방배경찰서가 맡게 된 것은 제보를 받은 D화재의 담당 직원이 방배경찰서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신고받은 방배경찰서는 즉각 수사에 나섰고, 금산화학 정아무개 사장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됐다.
문제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의 발생 당시 처리과정에서도 많은 의문점이 드러나 파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당시 소방서측이 추정한 피해액은 9억원이었다. 그러나 실제 보험 지급액은 42억원에 이르러 손해사정 과정에서 피해액이 부풀려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경찰은 “손해사정 담당자와의 공모 가능성도 제기할 수 있으나 정 사장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현재 추가적인 사실을 밝혀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D화재의 한 관계자는 “피해액 산정 시 소방서와 보험사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소방서의 산정액은 그냥 참고용일 뿐이며 보험사 자체적으로 피해액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소방서와 보험사 모두 건물과 재고자산에 대해 재조달가액을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어 보험사의 설명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경찰은 일사천리로 진행된 보험금 지급 절차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은 “화재보험에서 42억원의 보험금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이렇게 큰 돈이 화재 발생 두 달 만에 전액 지급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현재 이같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히 그는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밝혀진 친구 정씨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배경찰서 수사관은 “정 사장과 친구 정씨는 모두 목포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특히 공범으로 지목된 정씨는 한때 광주에서 제일 유명한 S호텔 사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둘 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일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동갑내기로 한 고장에서 반평생을 친구처럼 지내온 두 사람은 결국 돈을 위해 보험사기라는 사건을 저질렀다가 황혼의 인생을 망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