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챙긴 부당이득은 밝혀진 것만 3억여원. 그러나 이들이 수년간 시립 화장장 직원으로 근무해 오면서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실제 ‘뒷돈’의 총액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은 남의 저승길에서 뜯어낸 돈으로 전형적인 부유층 생활을 해왔다. 특히 박씨는 이 같은 ‘재력’을 바탕으로 S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고 지역 명망가들의 모임에 나가는 등 이른바 상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애써온 것으로 드러나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박씨가 제천시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6년. 일용직 직원으로 교통 순시 등의 외근 일을 해오다 기능직 10급 공무원으로 특채돼 지난 98년부터 화장장 관리업무를 맡아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가 화장장 업무를 맡을 당시만 하더라도 화장장 관리직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였다. 화장장 일이 시청 내에서 대표적인 3D 업무 중의 하나여서 일종의 기피 부서였다는 것.
그러나 박씨가 화장장에서 근무하면서 상황은 백팔십도 변했다. 박씨 등이 영안실 관계자나 유족들로부터 ‘수고비’ ‘급행료’ 등의 명목으로 하루 1백만원 안팎의 돈을 벌어들이자 이 자리는 한순간에 노른자위 보직이 됐다. 박씨와 화장장 화부(火夫)로 일하던 이씨는 윤달이 낀 달의 경우 이장(移葬)이 많아 하루 3백만원 이상을 챙기기도 했다.
떡고물이 많이 떨어지던 자리인지라 박씨는 보직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다. 제천시청은 2002년 5월 화장장 업무를 위생직렬 공무원만이 맡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이에 박씨는 미련없이 자신의 직렬을 위생직으로 변경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한 수사관은 “보통 일반 공무원 중 위생직렬로 전환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위생직렬이 특수직렬인 데다 흔히 공무원 중에서도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씨는 화장장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 규정이 바뀌자마자 자원해서 위생직렬로 전환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제천시청에서 위생직렬 공무원은 시청 청소부 아주머니와 박씨 단 2명에 불과하다. 즉 실질적으로 시청에서 화장장 업무를 볼 사람은 박씨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화장장 업무를 독점한 박씨는 병원 영안실 관계자나 영구차 운전기사와 유착관계를 맺고 뒷돈을 챙겨 왔다. 경찰이 전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뇌물 수수 수법은 다음과 같다.
‘흉사’를 당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유족들이 빨리 시신을 화장하게 해 달라고 병원 영안실에 부탁하면 영안실에서는 “현행법에는 사망 이후 24시간 이내에 화장이나 매장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급행료’를 내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 유족들이 영구차 운전기사를 통해 20만~30만원을 박씨에게 건넸다. 돈만 받으면 박씨는 사망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곧바로 시신을 화장하도록 이씨에게 지시하고 뇌물로 받은 돈은 둘이서 나눠가졌다.
경찰은 “자살이나 사고사 즉 악상(惡喪)을 당한 유족, 특히 형편이 어려운 유족의 경우 장례를 되도록 빨리 끝내기를 바라는 게 보통이다. 부대비용 등으로 이문을 남기는 영안실 입장에서도 가난한 유족들이 하루 이틀 더 영안실을 사용하는 것보다 돈 좀 있는 유족들을 받는 것이 더 낫다. 그러니 유족이나 영안실 입장에서는 사체를 빨리 화장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인 셈이다. 또 박씨와 이씨는 ‘급행 화장’을 하면 더 많은 뒷돈이 생기니까 규정을 자꾸 어긴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씨의 아내 권아무개씨(50)는 허가도 없이 화장장 내에서 독점적으로 유골함 판매를 해왔다. 유골함은 원가에 30~40%의 이윤을 붙여 파는 게 보통이나 권씨는 원가의 5~6배 가격을 매겨 유골함 1개에 30만~60만원을 받는 등 폭리를 취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골함은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에서도 팔 수 있는 용품이나 이 지역에선 시립 화장장에서만 독점적으로 판매해 왔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경찰은 “영안실이나 장례식장 관계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유골함 판매는 화장장 몫이다’라고 말하더라. 괜히 박씨와 이씨에게 미운 털 박혀 좋을 리 없으니까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박씨와 이씨의 비위를 맞춰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온 박씨와 이씨는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행세했다. 특히 박씨는 지방 S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하고 지역 명망가들의 모임에서 회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상류층에 편입하려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검거 당시 박씨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골프용품과 테니스용품은 모두 최고급품으로 테니스 라켓만 하더라도 1백만원이 넘는 것이었다.
박씨는 화장장 업무가 남들 보기에 창피했던지 대외적으로는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행세를 해왔다. 또한 지역 유지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최고급 식당과 술집만을 이용하고 골프장을 단골로 출입했다. 이 같은 박씨의 처신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상당수 주변 사람들도 그의 비위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화부인 이씨는 어찌 보면 박씨보다 훨씬 더 ‘실속파’였다. 그는 화장장에서 번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서울과 제천에 상가건물, 주택 등을 구입했고 여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청은 올초 일용직인 이씨가 고생한다며 월급을 10만원 올려줬다. 박씨와 이씨의 월급은 각각 1백70만원, 1백1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에겐 월급이 이틀치 뒷돈 규모에 불과했던 셈이다.
화장장 근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리는 일이라 약간의 문제점은 묵인해주던 게 과거의 관행. 그래서인지 정작 박씨와 이씨는 자신들의 혐의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소한 걸로 문제 삼느냐. 공무원 때려치우면 되지 않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건물만 팔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라고 말해 수사팀을 허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나 이씨 모두 자신의 죄를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다”며 어이없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