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수사관계자는 숨진 손씨의 부인 고아무개씨(55)와 딸 손아무개씨(26)가 “유영철을 흉내 내 사체를 토막 내고 지문을 지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 사건이 유영철의 모방범죄라는 점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더욱이 고씨와 딸 손씨는 범행 후 완전범죄를 노리고 태연히 실종신고를 하는 등 그 수법이 치밀하고 대담해 경찰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살인은 우발적이었지만 은폐극은 치밀했던 이번 사건의 처음과 끝을 따라가 보았다.
지난 1일 경남 마산시 산호동 등산로 주변에서 지나가던 시민에 의해 토막 난 한 변사체가 발견됐다. 사체는 지문이 훼손된 상태여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틀 후인 지난 3일 마산 동부경찰서에 한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택시기사 손아무개씨의 부인 고아무개씨. 고씨는 경찰서에 찾아가 “남편 손씨가 지난달 29일 집을 나간 후 연락이 없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당시 실종신고를 접한 경찰 관계자는 “남편의 실종신고를 내면서 고씨의 태도가 어색했고 남편을 찾으려는 의지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고씨의 실종신고와 토막 난 변사체 발견 사이에 그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여 일이 흐른 지난 10일 경찰은 앞서 발견된 토막 난 사체에서 지문의 일부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곧 이어 실종자 등의 지문과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변사체의 신원이 고씨의 남편 손씨임이 확인됐다. 통상 사체의 지문이 훼손된 경우는 변사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수사의 경험칙. 이 점에 착안해 경찰은 고씨와 딸 손씨를 경찰서로 따로 불러 추궁한 끝에 범행일체를 자백받을 수 있었다.
경찰 수사결과 딸 손씨는 아버지에 대해 쌓인 감정이 우발적으로 폭발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존속 살인과 그후 사체 처리 과정은 무척 집요하고 또 치밀했다.
숨진 택시기사 손씨가 화를 당한 것은 지난달 29일 오후 8시께. 피의자들의 전언대로라면 당시 그는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망치를 들고 ‘죽여버리겠다’며 아내 고씨를 찾았다. 집에 혼자 있던 딸 손씨는 두려움에 떨다가 아버지 손씨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망치를 빼앗아 아버지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머리와 팔을 크게 다친 손씨가 몸을 못 가누고 있을 때, 마침 집으로 들어온 고씨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남편과 딸을 말렸다.
그러나 고씨가 둘을 떼어놓고 상황이 잠잠해진다고 싶었을 때 딸 손씨가 과도를 들고 등 뒤에서 아버지 손씨의 옆구리를 2회 찔러버렸다. 살해위협을 느낀 손씨는 안방으로 도망갔고 고씨도 일이 커짐을 직감하고 딸을 거실에 남겨둔 채 손씨가 피신한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어 고씨는 딸이 못 들어오도록 문을 잠그고 남편 손씨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잠시 후 방 밖에서 딸 손씨는 어머니 고씨에게 “조용히 아버지에게 할 말이 있으니 문 좀 열어달라”고 했고 고씨도 이젠 딸이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이것이 또 다른 비극으로 향하는 문이 되고 말았다.
손씨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버지 손씨는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하려는 듯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하려 했다. 이것을 본 손씨는 다시 격분해 아버지 손씨의 휴대폰을 뺏고 이미 부상을 당해 항거 불능 상태였던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 손씨는 안방의 창문을 깨고 필사적으로 밖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라 딸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손씨는 방바닥에 주저앉힌 아버지의 입과 코를 손수건으로 틀어막았고 이미 깊은 부상을 입었던 아버지 손씨는 결국 과다출혈과 질식으로 숨지고 말았다.
광란의 살인극이 끝나고 이내 제정신을 차렸던 것일까. 당황한 아내 고씨와 딸 손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가 이윽고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토막 살인’ 범행을 생각해 냈다. 고씨와 딸 손씨는 남편과 아버지였던 택시기사 손씨의 사체를 칼과 톱으로 토막내고 신원이 드러날 것을 염려해 지문을 지워버렸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딸 손씨에게 ‘네 아버지는 이미 숨졌으니 조용히 처리하자’며 사체유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유영철이 했던 대로 사체를 토막 내 유기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손씨를 살해한 후 고씨와 딸 손씨는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어둠을 틈 타 사체 일부를 집 주변 등산로에 내다버렸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자 이들은 렌터카를 빌려 나머지 사체를 멀리 내다 버릴 것을 생각해낸다. 하지만 마침 휴가철이라 마산 시내에는 빌려탈 만한 렌터카가 없었다.
범행 다음날 오전 10시께 딸 손씨는 버스를 타고 창원까지 가서 렌터카를 빌려왔다. 그리고 손씨는 어머니 고씨와 함께 아버지의 남은 사체 토막을 찜통에 담아 렌터카에 싣고 집에서 30km 떨어진 야산에 파묻었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엽기적 존속 살인극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처음에는 여자 둘이서 성인 남자를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 내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제3의 공범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경찰은 딸 손씨의 직업이 인체의 해부지식과 경험이 많은 정형외과 간호사라는 사실을 파악한 뒤에는 공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자신들의 범행이 드러나자 고씨와 딸 손씨는 서로를 보호하려는 듯 모든 범행을 자신이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머니 고씨는 딸이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나이임을 감안해 선처를 호소했다.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끝까지 딸을 보호하려는 모습에 연민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편 딸 손씨는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면서도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한 관계자는 “딸 손씨가 평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경찰은 지난 13일 딸 손씨에 대해서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아내 고씨에 대해선 사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만약 이 즈음 유영철 사건이 나지만 않았더라도 사체를 토막 내서 아내 고씨까지 처벌받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