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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학생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광주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남 한 중소 도시에 사는 윤아무개씨(53·보험설계사)는 광주의 동·서·남·북부 등 장소를 옮겨다니며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질러 왔다. 처음에는 인적이 없는 밤에 한적한 장소를 골라 범행을 저지르다 차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낮에 주택가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윤씨의 연쇄 범행은 지역사회에 흉흉한 소문을 낳기도 했다. 이번에 윤씨가 검거되지 않았다면 광주 시내에서 미성년자 강간사건이 수도 없이 이어졌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절도 등 전과 6범의 윤씨는 성폭행 전과가 없는 데다 장소를 옮겨다니며 범행을 저질러 그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유영철이 경찰을 따돌리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해왔던 것과 비슷한 모습인 것이다.
지난 9일 오후 8시 광주 남구 봉선동의 한 골목. 여고생 A양(16)은 집으로 가기 위해 비좁은 골목길을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길의 반대쪽 입구에서는 50대의 남자 윤씨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좁은 골목길이라 두 사람은 스치듯이 지나쳐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윤씨는 A양에게 다가선 순간 숨겨둔 칼을 꺼내 A양의 목에 갖다대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죽여서 묻어 버린다”는 말에 A양은 꼼짝도 못하고 윤씨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윤씨는 A양을 인근의 야산으로 끌고가 옷을 벗긴 뒤 몹쓸 짓을 했다.
일을 끝낸 뒤 윤씨는 A양에게 “내가 간 뒤 10분 뒤에 내려가라”는 말을 남겼다. A양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윤씨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A양의 신고를 받은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 사건의 용의자가 지난 7월 29일 광주 남구 양림동의 재건축 지역에서 일어난 여고생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같은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다시 이 곳에서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보고 8월10일부터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잠복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난 17일 오후 4시 드디어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윤씨가 나타났다. 키 162∼165cm에 다부진 근육질의 몸매, 짧은 파마머리에 팔뚝의 문신, 금시계…. 경찰은 급히 윤씨에게 다가가 검문을 시작했고 그의 몸에선 날이 선 칼이 나왔다.
경찰은 급히 윤씨를 경찰서로 연행해 왔다.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던 윤씨는 피해자인 여학생이 와서 모습을 확인하자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연쇄 성폭행 피의자 윤씨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윤씨의 범행수법으로 보아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예전에 벌어졌던 미해결 성폭행 사건 기록을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00년 12월 벌어진 사건을 시작으로 총 24건의 강간사건의 피해자로부터 나온 정액의 DNA와 윤씨의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피해자는 모두 미성년자로 대부분 중·고교 여학생들이었다. 피해자 중에는 당시 9세인 초등학생도 있었다.
2000년 12월16일 광주시 서구 화정동 중앙공원 앞에서 윤씨는 하굣길의 초등학생 B양에게 접근해 “무거운 짐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도와달라”며 골목길로 유인했다.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윤씨는 칼을 꺼내 B양의 목에 들이대고는 옷을 벗기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범행 후 윤씨는 B양에게 “이 일을 엄마나 친구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다. 어린 소녀는 이날 이후 몸도 마음도 병들고 말았다.
윤씨가 범행 대상으로 어린 여학생들만을 고른 이유는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겁을 먹어 자세한 정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가 피해 사실을 뒤늦게 집에 가서 부모에게 이야기를 하는 등 범죄 신고가 없거나 늦다는 점 때문이었다.
윤씨는 피해 소녀들에게 주로 “다친 사람이 있어 옮겨야 되니 좀 도와달라”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되는데 잠시 도와달라”는 말을 하며 골목길로 유인했다. ‘선행’에 대해 익히 교육받은 어린 여학생들은 별다른 의심없이 윤씨의 요청에 응했다.
윤씨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한 곳에서 두 번 넘게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광주시 전체를 옮겨다니며 범행을 해 경찰도 이들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윤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능란하게 범행했고 점점 대담해져 갔다. 한꺼번에 2명의 중학생을 동시에 성폭행하기도 했으며 연속으로 2건의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1건의 범행 후 다시 범행을 저지르는 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윤씨는 지나가는 여학생뿐 아니라 가정집에 숨어들어가 혼자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 여성의 경우에는 반항이 심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이후에는 다시 어린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범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경찰은 윤씨의 범행이 이미 확인된 24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다른 10여 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계속 하고 있다. 윤씨의 드러난 범행 주기로 보아 그가 2000년부터 멈추지 않고 몹쓸 짓을 계속해왔다면 이 기간 동안 수십 건의 범행을 더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검거 당시 윤씨의 차에서는 접이식 칼, 다용도 칼(맥가이버 칼)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칼과 드라이버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윤씨는 “직업상 갖고 다니는 것이다”라며 범행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경찰은 빈 집을 털기 위한 도구들이 아닌가 의심하고 여죄를 캐고 있다.
윤씨는 검거 직전까지 20대 중반의 아들 등 2명의 자녀와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윤씨가 검거된 뒤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가장의 파렴치 범행 소식에 상당히 당황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의 친형만이 경찰서로 찾아와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가 아직도 자신의 범행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윤씨를 담당한 한 수사관에 따르면 보통 피의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면 그간 저지른 사건들을 고백하고 선처를 바라는 반면 윤씨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윤씨가 경찰 조사에서 “나이도 많이 먹고 기억력도 떨어져 기억을 못하겠다”며 범행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나 경찰은 DNA 분석 결과가 명확하기 때문에 윤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