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고소인 지씨가 경찰에 고소장과 함께 제출한 것이다. 그는 고씨에게 맡긴 도자기(위)와 고씨한테서 돌려받은 도자기(아래)가 달랐다고 그림을 통해 주장했다. | ||
서울 금천구에 사는 지아무개씨(57·부동산중개업)가 이웃주민인 고아무개씨(66)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것. 지씨는 소장에서 “고씨가 대신 팔아주겠다고 가져간 1억5천만원 상당의 고려청자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골동품 때문에 깨진 10년 바둑 우정’ 식으로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몇몇 언론에서는 “고소를 당한 고씨가 잠적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과 달랐다.
언론 보도를 본 직후 고씨는 지씨의 변호사에게 전화해 “누가 잠적했다고 그러느냐. 경찰에서 모든 걸 밝히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고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지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맞고소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골치 아파진 쪽은 경찰. 한 경찰 관계자는 “고씨와 지씨 둘 중 누군가는 완벽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이 없어 고민”이라며 수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오랜 세월 정겨운 이웃사촌이던 고씨와 지씨 사이에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먼저 고소인인 지씨의 주장을 살펴보자.
고씨와 지씨는 한 동네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이웃지간. 고씨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지씨의 사무실에 자주 찾아가 바둑을 두면서 서로 알게 됐다. 특히 고씨와 지씨는 고향이 같아 향우회도 같이 나가는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던 지난 1월 초순, 여느 때처럼 지씨의 부동산 사무실에서 고씨와 지씨가 함께 바둑을 두었다. 이때 지씨는 고씨에게 “우리 집에 도자기가 하나 있는데 가져가서 팔아보고 값이 나가면 각각 절반씩 나누자”라고 제안했다. 이 도자기는 지난해 12월 지씨의 아내가 길에서 주워온 것으로 도자기 전체에 푸른 기운이 돌고 손잡이 부분에 원숭이 모양이 붙어 있는 것이라고 지씨의 설명이다.
며칠 뒤 고씨가 지씨를 찾아와 “인사동에 알아보니 그 도자기 감정가가 1억5천만원이다”라고 전했고 처음에 지씨는 “누가 1억5천만원짜리 도자기를 길에다 버렸겠나”라며 고씨의 말을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고씨는 ‘청자호리병’이라고 쓰인 감정 쪽지를 지씨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겼다는 것.
당시 지씨는 그 쪽지를 자세히 보려 했으나 고씨는 감정쪽지를 보여주지 않고 “이건 내가 가지고 있겠다. 인사동의 한 골동품가게에 판매를 위탁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 후 고씨가 “일본사람과 부산사람이 사려고 하는데 1억원밖에 안 준다고 해서 안 팔았다”고 전하자 지씨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 팔겠다”며 도자기 반환을 요구했다는 것.
그러나 고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씨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고씨는 “인사동에서 도자기 감정을 한 적도 없고 지씨가 도자기를 돌려달라고 해서 바로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도자기는 지씨의 옆집사람이 이사 가면서 마당에 두고 간 것을 지씨가 화분에 쓰라고 나에게 준 것이다”며 “지씨가 도자기 판매를 위탁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씨가 전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월 초순 지씨의 사무실에서 바둑을 두다가 지씨가 “옆집에서 이사 가면서 도자기를 두고 갔다. 집에 가져가 써라”며 도자기를 건넸다. 이때 고씨는 도자기 색깔이 푸르스름한 것을 보고 “이거 고려상감청자 아니냐. 1억5천만원 정도 하겠다”고 농담으로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도자기를 집에 가지고 왔다는 것.
고씨는 지씨가 준 도자기를 화분으로 쓰려고 했으나 도자기 밑에 물 빠지는 구멍도 없고 도자기가 볼품도 없어 그냥 마당에 방치해 두었다고 한다. 그는 “마땅히 쓸 데가 없어 버리려고 하다가 도자기는 깨서 버려야 하기에 성가셔서 그냥 마당에 놔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씨가 도자기를 집에 가지고 온 이후부터 지씨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 고씨의 주장이다.
고씨는 “도자기를 집에 가지고 온 이후부터 지씨는 나만 보면 도자기 얘기를 꺼냈다. ‘도자기 잘 있느냐’, ‘도자기 팔았나’, ‘도자기 간수 잘해라’ 등 귀찮을 정도로 물어봤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씨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씨가 “일본에 있는 친척이 50만엔에 그 도자기를 사겠다고 하니 돌려달라”고 해서 바로 돌려줬다는 것.
고씨는 “당시 지씨가 도자기가 바뀌었다며 경찰까지 데리고 와 진짜를 돌려달라고 생떼를 쓰더라”며 “고소하겠다며 난리를 부렸다”고 전했다. 그후 이번 고소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경찰 관계자는 “불륜사건처럼 물증 없이 당사자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며 사건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고씨와 지씨 둘의 진술 모두 구체적이어서 솔직히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한 지씨가 사무실에서 고씨에게 도자기를 건넬 때 같이 있었던 목격자가 둘이나 있으나 이들의 진술 태도도 차이가 있어 수사는 더욱 어려움에 처해 있다. 목격자 중 한 명은 지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진술을 하고 있으나 또 다른 목격자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어 경찰도 난감해 하고 있다.
만약 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고씨는 횡령죄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설사 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유실물법에 따르면 지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도자기를 처분하려한 것은 불법이다. 또한 나중에 도자기의 원주인이 나타나게 되면 지씨는 원주인에게 도자기를 돌려줘야 한다. 물론 이때 지씨는 5~20%의 법정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씨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지씨는 고씨를 무고한 죄로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말 지씨의 주장대로 고씨가 고려청자를 빼돌린 것일까, 아니면 고씨의 주장대로 지씨가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