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남편에 사채업자까지 투입 합의금 짜내기
▲ 꽃뱀 사기행각을 펼치다 검거된 염아무개씨와 강아무개씨가 순천경찰서에서 점퍼를 뒤집어쓰고 있다. | ||
경찰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들 일당이 돈이 필요할 때마다 특정 지역에 모여서 ‘공동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범행을 주도한 유씨는 이 세계의 ‘전국구급’ 인물로 추정된다. 순천경찰서 강력 1팀 김옥빈 반장은 “유씨는 전국적으로 연락책을 두고 각 지역마다 활동할 ‘선수’들을 그때 그때 확보해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가 진행될수록 추가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전하는 유씨 일당의 수법은 한 편의 범죄 영화를 연상케 했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서로를 ‘1번 선수’(꽃뱀) ‘2번 선수’(알선책) ‘3번 선수’(가짜 남편) 등으로 구분한 뒤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두목 격인 유씨는 스크린경마장이나 도박장 등지에서 돈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포섭해 범행에 끌어들이고 ‘작업 대상’도 직접 소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이번에 공범으로 붙잡힌 염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꽃뱀 일당의 일원이 됐다.
애초 유씨와 염씨는 스크린 경마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이. 유씨는 지난해 10월께 염씨에게 “잘 아는 남자 중 ‘물 좋은’(부유한) 사람을 한 명 추천해 주면, 불륜을 가장해 위자료를 뜯어내 나눠주겠다”면서 은밀히 범행을 제안했다. 염씨는 2년 동안 도박으로 많은 돈을 탕진한 데다 수천만원의 빚까지 지고 있던 터라 이 같은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염씨는 유씨의 제안에 따라 대학교수인 초등학교 동창생 오아무개씨(49)를 범행대상, 즉 ‘물주’로 찍어줬다.
범행대상이 선정되자 유씨는 미리 교육시켜 놓은 ‘1번 선수’ 꽃뱀 김아무개씨(여·45)를 ‘2번 선수’(알선책)가 된 염씨에게 붙여줬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언니, 동생인 것처럼 각본을 짠 뒤 곧이어 ‘작업’에 들어갔다.
염씨는 “같이 식사나 하자”며 오씨를 불러냈고 이 자리에 ‘1번 선수’ 김씨와 함께 나왔다. 그런 후 염씨는 자연스럽게 오씨와 김씨를 소개시켜주고 “다른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이후 유씨 일당의 계획에 따라 김씨는 오씨에게 호감을 드러냈고 결국 감쪽같이 속은 오씨는 김씨와 몇 차례 성관계를 맺고 내연의 관계가 됐다.
그러던 지난해 11월1일 저녁,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유씨는 꽃뱀의 가짜 남편 행세를 할 ‘3번 선수’를 데리고 ‘현장’에 출동했다. 전남 보성의 한 모텔에서 성관계를 맺은 뒤 함께 나오던 오씨와 김씨를 덮쳤던 것.
예의 가짜 남편은 “불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오씨를 협박하고, 오씨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꽃뱀’ 김씨에게 심한 손찌검을 하는 등 각본에 따라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때 유씨가 가짜 남편의 선배로 나서서 “조용히 해결하라”며 바람을 잡았고, 당황한 오씨가 오히려 “고소는 하지 말고 합의하자”는 얘기를 꺼내도록 유도했다.
유씨 일당이 오씨에게 요구한 돈은 무려 5천만원. 당장 그런 큰돈을 구하기 어려웠던 오씨가 전전긍긍하자 염씨는 “내가 잘 아는 사채업자에게 부탁하면 돈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4번 선수’인 사채업자(신원미상)를 소개시켜줬다. 결국 오씨는 사채업자에게 채무각서를 써주고 빌린 돈 5천만원을 가짜 남편에게 주고 가까스로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사기극에 놀아난 오씨는 경찰이 유씨 일당을 검거할 때까지도 자신이 꽃뱀 조직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결과 유씨 일당은 오씨 사건에 앞서 지난해 6월 전남 광양에서도 자영업자 박아무개씨(52)에게 같은 수법으로 수천만원을 뜯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알선책은 피해자 박씨 부인의 사촌여동생인 강아무개씨(45)였다. 강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박씨를 범행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수사관은 “유씨 일당은 알선책이 잘 아는 주변 지인이나 친인척 중 지역에서 이름 있는 사람만을 범행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래야 타깃의 생활이나 행동반경 등을 유씨 일당이 훤히 알 수 있고, 또 체면상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씨 일당은 피해 남성 중 한 명이 꽃뱀 사기를 당한 후 사전에 맞춘 듯 일이 착착 진행돼 가는 것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면서 결국 덜미를 잡혔다.
수사결과 유씨는 한 ‘팀’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피해남성으로부터 받은 돈을 일당에게 배분하고 다시 새로운 ‘팀’을 꾸려 제2, 제3의 사기극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까닭에 유씨를 빼고는, 일당 중 이 같은 사기 행각의 전모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한 수사관은 “압수한 유씨의 통장과 장부에 최근 2~3년 동안 수천만원씩 뭉칫돈이 주기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아 이번에 적발된 사건 말고도 피해자가 여럿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러나 사기극 전모를 알고 있는 유씨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어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사례는 2건에 1억여원. 그러나 경찰이 압수한 유씨의 장부에는 3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온 것으로 기록돼 있고, 추가로 3장의 또 다른 간통 합의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전국적 연락망을 지닌 유씨가 수시로 ‘꽃뱀 사기단’을 소집해 무대를 옮겨가며 범행해온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