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마약상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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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엄씨는 첫째 남편 이아무개씨(2002년 사망·당시 26세)와의 사이에 둔 세 살배기 딸이 사고로 계단에서 굴러 사망하면서 정신적 충격 때문에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엄씨는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약에 손을 대게 됐다. 마약에 점점 빠져들던 엄씨는 ‘약값’으로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했고, 전직 보험설계사였던 엄씨가 선택한 길은 결국 보험사기극이었다.
그 첫 번째 희생양은 첫 남편 이씨. 엄씨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씨와 결혼한 데다 이씨가 알코올 중독에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어 가정불화가 끊이질 않았다.
엄씨는 2000년 5월13일 이씨에게 수면제가 함유된 정신과 치료약을 음료수에 듬뿍 타서 먹여 정신을 잃게 한 후 남편의 눈을 침으로 찔러 오른쪽 눈을 실명케 했다. 경찰 관계자는 “바늘이나 침 등으로 눈을 찌르면 바로 실명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시력을 잃어간다. 또 실명하게 되면 확실한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어 보험금도 많이 타게 되는 점을 노렸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엄씨는 같은 방법으로 남편 이씨의 정신을 잃게 한 후 끓는 기름을 얼굴에 붓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이씨의 배에 흉기를 찔렀다. 남편 이씨는 한번 정신을 잃으면 보통 24시간 내지 36시간이 지난 후 깨어났고, 그 사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엄씨는 그때마다 이씨를 병원으로 데려가 “정신질환자인 남편이 계속 자해행위를 한다”고 말했고 병원측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2002년 2월3일 입원치료 중이던 남편 이씨가 사망하자 엄씨는 이를 보험회사에 신고해 보험금 2억8천만원을 타냈다.
엄씨는 남편 이씨가 사망한 일주일 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임아무개씨(2003년 사망·당시 31세)와 동거를 시작해 결혼했고 두 번째 남편 임씨는 엄씨의 두 번째 희생양이 됐다.
2002년 11월13일 엄씨는 전과 같은 방법으로 남편 임씨의 정신을 잃게 한 후 핀으로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시켰다. 엄씨는 ‘남편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가 생긴 사고’라고 보험회사에 신고해 보험금 3천9백만원을 탔다. 그후 임씨는 치료 중 석연치 않은 합병증으로 2003년 사망했다.
마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엄씨는 계속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야 했다. 그 다음 희생양은 자신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해줬던 엄씨의 어머니(55)와 오빠(31), 그리고 남동생(27)이었다. 엄씨는 2003년 7월26일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탄 주스를 마시게 한 후 양쪽 눈을 주사기 바늘로 찔러 실명케 했고, 석달 뒤에는 오빠도 같은 방법으로 정신을 잃게 하고 눈에 염산을 넣어 양 눈을 실명시켰다.
특히 엄씨는 오빠가 치료받던 병원에서 병수발을 하는 척하며 오빠의 링거액 호스에 독극물을 주사기로 투여,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또 지난 1월에는 화재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이 사는 집에 불을 질러 실명한 어머니, 오빠 및 동생에게 화상을 입혔다. 엄씨는 가족들에게 행한 일련의 상해, 화재로 보험금 2억4백만원을 탔다. 이런 식으로 엄씨가 수령한 보험금은 모두 5억9천만원에 이른다.
엄씨가 집에 불을 질러 살 곳이 없어지자 엄씨 가족은 과거 자신들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던 강아무개씨(46)의 집에 얹혀 지냈다. 그러나 엄씨는 마약 금단증세로 정서가 불안한 가운데 죽은 딸의 모습을 보고 싶어 강씨의 집에 불을 지르고 만다. 당시 자고 있던 강씨의 남편은 사망했고 강씨와 강씨의 딸, 그리고 엄씨의 어머니는 화상을 입었다.
경찰 수사로 엄씨의 엽기적인 범행이 드러났지만 수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엄씨의 첫 번째 남편과 두 번째 남편의 사인(死因)이 명쾌하지 않고,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얻은 세 살 난 아들이 한 달여 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치료 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한 수사관은 “첫 번째 남편 이씨는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지 석 달 만에 사망했는데 입원 기록에 이씨의 진술은 거의 없고 엄씨의 진술만 있는 점이 수상하다”면서 “이씨가 사망한 후 엄씨는 부검도 하지 않고 화장시켰다”고 전했다. 두 번째 남편 임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실명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엄씨의 세 살 난 아들의 죽음도 의문의 대상. 당시 사인은 ‘가와사키’라는 일종의 일본 독감이었는데 이 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1% 미만에 불과하다는 것. 수사관계자는 “죽은 세 사람의 사인이 확실치 않아 엄씨와의 연관성을 밝히기가 무척 어려워 보인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한편 엄씨의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은 경찰 수사결과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엄씨의 오빠는 “동생이 주는 음료수만 마시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깨어나면 꼭 실명을 하는 등 사고가 있어 어렴풋이 ‘혹시 동생이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나’ 하고 한번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밝혔다.
엄씨는 지난 4년 동안 지속적으로 가족들에게 소량의 수면제를 넣은 음식이나 음료수를 먹게 만들어 가족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범행 직전엔 다량의 수면제를 넣어 거의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가족들이 모두 실명을 한 후 저지른 방화에 대해선 엄씨의 행동을 목격할 수도 없어 엄씨의 이 같은 행각은 자칫 영원히 숨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엄씨는 지난 2월 세 살배기 아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제3의 방화를 지르려다 붙잡혔고, 결국 범행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비정한 ‘엽기녀’에게도 마지막 양심이 남아 있었던 걸까. 엄씨는 경찰에서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