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을 스쳐간 사람들 중 한 명일 수도
▲ 경찰에서 배포한 탈주범 이낙성의 수배 전단. | ||
지난 4월7일 새벽 외치핵(치질) 치료를 위해 경북 안동의 한 병원에 입원중이던 이낙성은 교도관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도주, 서울로 잠입했다. 그러나 그후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당시 안동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한 이낙성은 감방동기 엄아무개씨(38)에게 미리 연락해 택시요금 20만원을 계산하고 엄씨가 가져온 남방과 회색콤비, 검정색 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런 후 엄씨에게 현금 8만원을 받고 사당역 근처에서 헤어진 것이 이낙성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전부다.
탈주 이틀 후 그의 청송감호소 동기 김아무개씨(44)가 “지역번호 032로 찍힌 ‘부재중 전화’가 세 차례 왔는데 누가 전화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마치 이낙성이 연락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겨 경찰이 강화도 일대를 샅샅이 뒤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김씨가 경찰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허위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경찰은 이낙성의 과거 행적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펼쳐 왔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의 ‘연고지’로 볼 만한 곳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한 수사관은 “40대 초반인 이낙성은 18년 동안이나 교도소에 있었다. 사실상 교도소가 그의 연고지인 셈이다. 결혼한 적도 없고, 깊이 연애를 한 적도 없어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감방동기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가면서 형제들과 뿔뿔이 흩어졌다. 게다가 중학생 시절 어머니마저 사망해 사실상 고아로 자란 셈이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씨의 큰형은 이낙성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었다는 것만 알 뿐 자라면서 만난 적은 없다고 하더라.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어릴 적에 헤어져 이씨의 존재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낙성이 태어난 경주, 형제들이 살고 있는 구미와 포항, 범행을 저질렀던 인천과 서울 등 이씨의 연고지가 될 만한 곳은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그의 ‘흔적’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절도와 강도 등 전과 5범인 이낙성은 이 중 네 차례 범행을 인천에서 저질렀다. 인천 동부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범행의 주무대를 인천으로 볼 수는 있으나 이낙성이 실제 인천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과거 교도소에서 출옥하고 4~6개월 정도 인천에 머문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6년 인천에서 중국집 배달원 생활을 하다 한 가정집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 카세트를 훔친 것이 이낙성의 첫 범행이었다. 그후 두 차례 범죄를 더 저질렀던 이낙성은 지난 88년 다시 인천에서 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붙잡혀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인천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낙성을 검거한 수사관들은 그를 ‘범행에 특이한 점이 없는 단순 절도범’ 내지는 ‘잡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낙성은 당시 사건으로 장기간 교도소 신세를 지다가 2001년 출소했다. 그후 그는 서울 수유동의 한 여인숙에 보름간 머물다가 다시 강도행각을 벌이고 만다. 여인숙 인근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7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털었으나 피해자의 신고로 현장 인근에서 바로 붙잡혔던 것. 10여년간이나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해온 전과자인 데다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가 마지막 택한 길은 결국 범죄였다.
이낙성이 마지막 범행으로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한동안 머물렀던 수유동의 한 여인숙은 아직도 그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되어 있다. 이 여인숙의 여주인은 “우리 여인숙에 묵고 있는 사람이 강도범이라고 해서 기억하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돈이 없으니 다른 곳은 못 가고 값싼 여인숙에 왔겠지. 보름 정도 투숙하긴 했지만 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서 뭐하고 다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여인숙에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며 더 이상 언급하길 꺼렸다.
경찰에 따르면 이낙성은 극히 평범한 범죄자였다. 흔히 장기 도피에 필요한 인맥이나 자금, 그리고 내연의 여인이 이낙성 주변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강인한 체력이나 특별한 범죄 기술도 지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이낙성이 탈주했을 때 수사 관계자들이 ‘쉽게 붙잡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탈주범’ 이낙성이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도피생활을 이어가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일각에서 거론되는 이유는 경찰과 교도당국 간의 정보교류 부재다. 이낙성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공조수사를 펴야 좀더 빨리 추적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데 경찰과 교도당국이 서로 배타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경찰은 한때 이낙성을 담당했던 교도관들의 신상과 관련해 압수수색영장을 검찰에 청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좀 색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과거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이낙성의 범행은 모두 단독 범행이었고, 범행과정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특별한 기술도 없어 범행시 담을 넘거나 열려진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면서 “어쩌면 이낙성의 범죄자로서의 이 같은 ‘평범함’이 그가 쉽게 드러나지 않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즉 이낙성이 도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어디선가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그의 인상착의·범행수법 등이 너무 평이하기 때문에 다른 사건들 속에 파묻혀 도리어 추적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낙성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부에서는 이낙성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 때문에 탈주한 이낙성이 자살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거팀의 한 수사관은 “탈주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낙성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을 것”이라면서 “치핵의 고통과 배고픔 등으로 아마 머잖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내다봤다.
청송감호소 관계자는 “이낙성은 외치핵 4기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치핵 중에서 가장 고통이 심하다는 외치핵이고, 외치핵 4기면 거동이 불편할 정도며 수술을 받지 않으면 항문 주위가 곪아 터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즉 이낙성이 쉽게 이동할 수 없어 한 곳에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낙성은 탈주 후 교도소 동기 엄씨와 사당역 근처에서 헤어질 때 수중에 8만원만을 가지고 있었다. 턱없이 모자란 도피자금은 그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무전취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짚게 하는 대목이다.
경찰은 최근 일어난 강·절도 사건의 파일을 분석하는 한편, 노숙자들이 많이 모이는 역 근처, 무료급식소, 쪽방촌, 고시원 등 이낙성이 나타날 만한 곳에도 형사들을 잠복시켜 놓고 있다.
한 수사관계자는 “도피자금이나 지병 등으로 궁지에 몰린 이낙성이 결국 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경우 시민들의 제보가 있어야 사건을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