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보다 못한 부부 ‘외도 허용’ 각서
이 재판의 주인공은 서울의 한 유명 사립 여대에 재직중인 남편 A 교수와 모 사이버대학에 재직중인 아내 B 교수. 이들이 작성한 각서에는 △B 씨가 아이를 기르는 대신 양육비와 아파트 관리비는 A 씨가 내고 △서로 부부관계를 요구하지 않으며 △귀가 여부와 귀가 시간, 다른 이성과의 교제 및 성관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체결했다. 최고 지성인인 이들 교수 부부가 이처럼 상식을 깨는 각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2년 결혼한 A 씨와 B 씨는 결혼 직후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96년경 학업을 마치고 귀국, 각각 다른 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슬하에 자녀 한 명을 둔 이들 부부는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쌓아가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나 부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내 B 씨가 전에 사귀던 애인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된 것이다.
2000년 11월경 A 씨는 문득 아내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채고 아내의 이메일 계정을 몰래 열어 보았다. A 씨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의 메일함에는 낯선 남자의 편지가 여러 통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아내도 그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나자 A 씨는 본격적으로 아내의 이메일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연애편지나 다름없었다. 사소한 일과를 주고받는가 하면 연인들끼리 나누는 진한 감정의 표현도 직·간접적으로 묘사돼 있었다. A 씨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지만 경과를 두고 보기 위해 일단 참았다. 대신 아내가 전 애인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두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B 씨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전 애인과 이메일 교환을 계속했고 횟수가 늘어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예전의 연인관계로 돌아가 있었다. 참다못한 A 씨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그동안 저장해둔 발신 및 수신 편지들을 들이밀며 아내를 추궁했다.
그러나 B 씨는 잘못했다고 빌기는커녕 오히려 A 씨에게 “사생활을 침해했다. 의처증이 아니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없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남편의 폭력에 화가 난 B 씨는 A 씨와 대화를 단절한 것은 물론 집안일에도 신경을 끊었다. 한발 더 나아가 B 씨는 전 애인뿐 아니라 2001년 12월까지 다른 중학교 남자 동창들과도 보란 듯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B 씨는 학창시절부터 이른바 ‘예쁘고 똑똑한 여자’였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비록 유부녀가 되었지만 그녀의 인기는 여전했던 셈이다.
다툼이 잦아지면서 B 씨의 귀가 시간도 늦어지기 일쑤였다. 이에 A 씨는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B 씨를 의심하며 추궁했고 이는 곧바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다는 것도 잦은 다툼의 원인 중 하나였다.
이처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두 부부는 한집에 살아도 도저히 같이 사는 부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갔다. 모든 것을 각자 해결하고 일절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대화할 때는 싸울 때뿐이었다.
상황은 계속 악화돼 갔고 결국 2003년 6월 두 사람은 문제의 각서를 쓰게 됐다. 각서를 쓴 후에도 B 씨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변호사 C 씨를 찾아가 이혼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남편이 각서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귀가 시간과 불륜 여부를 따지며 손찌검을 하자 C 씨의 조언에 따라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오기에 이른다. 집을 나온 B 씨가 이혼을 준비하자 A 씨는 자신의 폭행을 사과했지만 이미 틀어진 B 씨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A 씨는 아내와 이혼까지 할 생각은 없었으나 소송을 진행하면서 이혼결심을 굳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30대 후반의 젊은 변호사인 C 씨가 문제였던 것. C 씨와 아내가 수상한 관계라는 것을 눈치 챈 A 씨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했고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A 씨는 재판에서 “아내와 C 변호사는 이혼 청구 소송을 진행하면서 ‘특별한 사이’로 발전했으며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현장을 적발하지 못했을 뿐 둘이 불륜을 저지른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내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들은 나름대로 철저한 조사를 거쳐서 알아낸 사실들이다”며 “나는 그것의 사실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B 씨는 기자에게 “일부 언론에 알려진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할 말도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한편 재판부는 “아내가 변호사와 함께 비행기를 탄 것은 인정되지만 이를 놓고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설사 남편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른 이성과의 교제 및 성관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으므로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A 씨는 B 씨에게 재산분할로 4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혼의 책임은 양측 모두에게 있으므로 아내의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