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대생 아이디로 누가 접속했나
▲ 이 씨가 다니던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목격자를 찾는 글. | ||
사건 초기만 해도 가출이나 납치 등 생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경찰과 가족 측은 언론사의 취재 요구도 따돌린 채 비공개 수사로 일관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 보도가 나갔음에도 주변 목격자나 제보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자 수사 방향도 급선회하고 있다. 이례적인 의문의 실종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2주일 동안 취재진과 가족 경찰 간에 답답한 숨바꼭질만 전개되는 동안 사건은 점차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지에서 기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실종 당시 이 씨의 행적은 이렇다. 4학년 졸업반인 이 씨는 실종 하루 전날인 5일 학교의 실습조 팀원들이 모인 술자리에 참석했다. 이날 술자리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6일 새벽 술자리가 파한 후 이 씨는 학교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원룸으로 귀가했다. 동석했던 한 남학생이 늦은 시간에 혼자 빈 집에 귀가하는 것을 우려해 집 앞까지 데려다 준 것을 마지막으로 이 씨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 씨는 경기도 안산에 본가를 두고 혼자 학교 근처의 원룸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을 다니다가 현재의 학교에 편입한 관계로 동기생들에 비해 나이가 비교적 많았다.
이 씨의 실종을 처음 경찰에 신고한 것은 학교 과동기생들이었다. 실종 직전 휴대폰을 잃어버려 동기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던 이 씨가 학교에도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자 경찰에 신고한 것. 이 씨의 실종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현재 이 씨가 머물던 원룸으로 내려와 조그마한 단서라도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애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주 덕진경찰서 측은 가족 측의 뜻에 따라 처음 비공개 수사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제대로 된 정확한 확인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보도된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게 나오기도 했다. 오히려 혼선만 가중시킨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실종된 지 1주일이 지나면서 경찰은 본격적으로 전단지 등을 작성해서 배포하는 등 공개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 측은 이 씨의 실종에 대해 스스로의 잠적과 납치 등 두 가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씨가 6일 새벽 귀가 후 한 시간가량 인터넷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실종 직전 집에 머물렀던 것을 알 수 있었고 신고를 받은 이후 경찰이 이 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침입이나 반항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현관문 또한 밖에서 잠겨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이 씨는 일단 집에 귀가한 후 언젠지 알 수 없는 시간에 다시 집을 나서 제3의 장소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발적인 가출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어딘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당했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가족 측은 스스로의 잠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그럴 만한 일도 없고 평소 성격상 그럴 리가 없다는 것.
사건 초기 경찰은 이 씨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처음 비공개 수사로 접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실종 나흘째인 9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모 호텔에서 누군가 이 씨의 계정으로 인터넷 메일과 음악사이트를 접속한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씨나 혹은 이 씨의 비밀번호를 아는 누군가가 인터넷 메일에 접속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 현재 보름이 되도록 이 씨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자 수사 방향도 급선회되는 분위기다.
실종 이전부터 이 씨의 신변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하는 추정도 낳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 씨의 실종 직전 상황에 대해 ‘술자리에서 전에 없이 우울해 보였다’거나 ‘실종 며칠 전 휴대폰과 지갑이 든 핸드백을 잃어버렸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씨가 실종 직전 인터넷에서 ‘강제추행’이란 단어를 검색했다’는 얘기도 떠돌고 있어 갖가지 추측을 무성케 했다.
학교 주변에서는 전국의 원룸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발바리 사건’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학교 학생회 게시판에는 실종사건 발생 즈음 인근 원룸촌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는 글이 두 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는 어렵사리 이 씨 가족을 접촉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언론에 거론되는 것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며 여전히 사건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이 씨의 신변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문인지 학교 주변에서 이 씨의 과동기생들을 여러 명 만났지만 그들 역시 초기의 적극적인 모습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반응으로 일관했다.
경찰 측은 “이 씨가 예전에 다니던 서울의 대학까지 올라가서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납치나 범죄에 연루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예금 인출이나 통화기록 조회 등 해볼 만한 것은 다 했지만 나오는 게 없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갈수록 의문만 가중되는 이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으로 전주 주변에는 지금도 계속 확인되지 않은 ‘괴담’만 흉흉하게 떠돌고 있다.
전주=최윤지 프리랜서 woxl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