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서울의 한 문화센터에서 살풀이춤에 몰입한 모습이 <일요신문>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의 춤추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던 곳은 서울의 한 문화센터. 최근 그가 이 문화센터의 ‘전통무용 전문가반’ 강좌에 간간이 나와 전통무용 교습에 열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취재진은 이곳을 두 번째 방문했던 지난 10월28일 정오께 강 전 장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 전 정관은 흰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강사인 S교수의 지도에 따라 한창 춤사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동작 한 동작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춤사위와 함께 최근의 어지러운 정국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행정수도 이전 위헌 가능성’ 등 향후 정국의 난맥상을 미리 예견하고서도 전격적 경질이라는 아쉬움 속에 물러나야 했던 그였다. 최근 악화일로를 치닫는 정국을 애써 태연하게 외면할 수밖에 없는 그의 복잡다단한 심경이 몸짓과 손짓, 그리고 너울지는 흰 수건의 물결 끝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오늘날 대치 정국 속에서 죽음과 고난의 ‘살(煞)’을 푼다는 뜻의 살풀이춤을 추는 강 전 장관의 몸짓은 그래서 더욱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슬픔을 품어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 감정을 표현해 낸다는 이 춤은 ‘분출’과 ‘절제’로 대표되는 요즘 강 전 장관의 처지와 묘한 일치감을 이루는 듯하다.
이곳 문화센터에서 강 전 장관은 이미 ‘스타’였다. 가끔씩 이곳에서 전통무용을 배우고 간다는 입소문이 퍼져 있었고, 때마침 이곳을 찾은 수강생들은 강의실 문 유리창 너머로 강 전 장관을 보기 위해 기웃거리기도 했다.
취재진은 지난 9월에 한 차례 강 전 장관의 지인을 통해서 전통무용을 추는 현장을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인터뷰 요청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은 “아직은 인터뷰에 나설 생각이 없으며, 천천히 하겠다. 다른 수강생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정중한 거절의 뜻을 전해왔다. 취재진은 강 전 장관의 뜻에 따라 인터뷰는 하지 않은 채 전통무용에 열중인 모습만 카메라에 담았고, 주변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취재를 마무리 지었다.
최근 그가 열중하고 있는 춤은 살풀이춤과 승무. 이와 함께 전통무 중에서는 가장 고난이도로 알려져 있는 고무(북춤)도 시작했다고 한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전문가반에서 배울 정도로 수준 높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80년대 판사 재직 시절부터 인간문화재 김수악 이흥구 선생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사받을 정도로 전통무용에 상당한 관심과 함께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 전 장관은 지난해 장관 취임 후에도 “법조인이 안됐으면 전통무용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바쁜 업무 탓에 평소 배우고 있던 전통무용을 할 수 없지만, 장관직을 물러나고 나면 다시 배우고 싶다. 전통무용을 특히 좋아하는 것은 정신이 몰입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오래 추면 호흡도 깊어지고 명상하는 효과도 있다”고 전통무용 예찬론을 적극적으로 펼친 바 있다.
강 전 장관을 직접 가르쳤던 전통무 스승들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강 전 장관이 전통무에 대한 자질을 타고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관에 임명되기 전 개인 발표회까지 고려했던 강 전 장관은 실제 지난 90년대 초 한 차례 단체공연의 일원으로 무대에 선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S교수는 “강 전 장관이 이미 유명인사가 돼버린 탓에 무대에 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강 전 장관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수양을 위해 전통무용에 열심이다. 그가 갖는 전통무용에 대한 애착과 열정은 전문가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라고 전했다.
“딱딱한 법조계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강 전 장관의 멋은 아마도 오랫동안 전통무용을 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는 한 법조계 후배의 평가처럼,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춤사위에 몰입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는 바라보는 이들에게 푸근함과 편안함을 전달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