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들 ‘구글’ 접속에 외국 학자들 깜짝 놀라”
박찬모 명예총장은 북한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기자에게 안드로이드 기반의 북한 태블릿PC ‘삼지연’을 보여줬다. 외국인용 모델은 TV 수신이 가능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북한 당국의 협조와 교직원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내가 직접 지도한 대학원생 3명이 있다. 두 명은 좋은 직장에 취업을 했고, 한 명은 우리학교 박사과정에 들어왔다. 교육자로서 무척 뿌듯하다. 또 안도감과 확신이 든다. 처음에 세울 때 난관이 많았다. 나도 내심 걱정이 많았다. 주변에선 ‘건물 다 지어놓고, 장비 들어가면 북한이 접수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무사히 졸업생을 배출했다. 주변에선 기적이라고 하더라. 그런 면에선 이제 북한 당국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역시 재원 부분과 교원 문제다. 무엇보다 5·24 조치가 문제다. 재원은 북에서 전혀 안 들어온다. 우리 쪽에서 해결해야 한다. 해당 조치로 인해 남쪽의 민간단체들도 학교를 지원할 수 없다. 이러한 사정 탓에 현재 해외 교수들은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숙식을 제외하곤 봉사다. 또 해당 조치만 풀려도 한국의 교수들이 투입될 수 있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을 포함해 북에서 후학을 양성하고자 오고 싶은 한국 교수들 많다. 북한에서도 환영한다. 지금 해외 국적을 소지한 한국인들은 북한을 다녀갈 수 있지만, 순수 한국 국적자는 어렵다.”
―전략물자 반입 규정에 따라 각종 실험기기들도 북한에 들이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다. 각종 제약으로 인해 실험기기 반입에 문제점이 있다. 많은 경우는 중국에서 사온다. 다행히 지금 북한에서 컴퓨터는 구하기 쉽다. 다만 앞서의 문제점 때문에 기기들이 열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열악한 하드웨어 탓에 오히려 소프트웨어는 굉장히 잘 만들더라. 열악한 하드웨어를 만회하기 위해 수준 높은 소프트웨어가 나오는 것 같다.”
―올해 의학대학이 개교한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인가.
“그렇다. 다행히 미국에서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 일부를 펀딩했다. 올해에는 일단 보건과 치의학 분야에서 각각 20명씩 대학원생들을 선발할 계획이다. 실습은 김만유병원(북한 유수 종합병원)에서 하게 됐다. 또 다행인 것은 의료기기는 인도주의적 차원이기 때문에 반입이 수월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단체를 통해 의료기기를 지원 받기로 했다. 또 치과의자 100개를 5·24 조치 이전에 한국 소망교회에서 지원해 줬다.”
―직접 현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떤가.
“내가 가르쳤던 포항공대 학생들과 비교해 봐도 열심히 하고 뒤처지지 않는다. 자원이 우수하다. 원래 입학생들이 북한 명문대에서 수학한 친구들을 선발한 것이다. 영어와 전공과목 모두 우수하다. 올해 유럽으로 유학 갈 친구들 모두 IELTS(영국의 공인 영어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또 교내에서 시장경제도 교육받기 때문에 국제화돼 있다.”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 박찬모 명예총장은 기자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그것은 인터넷이 접속되는 컴퓨터실이었다. 컴퓨터실 안에는 PC 30대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진짜 인터넷인가.
“우리처럼 구글이나 유튜브에 접속할 수 있는 진짜 인터넷이다. 이것 보면 외국에서 온 학자들이 다 놀라더라. 이를 통해 학생들이 학습 자료로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을 본다. 현재는 우리 학교밖에 없지만, 곧 김일성대학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컴퓨터실을 도입한다고 하더라. 우리 학교가 곧 시험의 장인 셈이다.”
―오랜 기간 북한을 드나들었다. 실제 북한이 변화하고 있나.
이 질문을 받은 박찬모 총장은 북한의 태블릿PC ‘삼지연’을 기자에 보여줬다. 박 총장이 직접 시연한 삼지연은 내국인용과 외국인용 등 두 가지였다. 외국인용은 TV수신 기능이 추가된 모델이었다.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제작된 삼지연은 국내 여느 모델과 언뜻 비교해 봐도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난 2000년부터 북한을 드나들었다. 지금 북한은 과거와 비교해 많이 변했다. 처음 북에 들어갔을 때는 카메라 필름조차 일일이 조사할 정도였다. 지금은 휴대폰도 들고 다닌다. 현재 북한 내 개통된 휴대폰이 300만 대다. 이전 김정일 시대와 비교해 김정은 시대는 또 다르다. 활기차졌다. 백화점을 가면 예전엔 점원들이 멀뚱히 서있었지만, 이제는 호객을 한다. 택시도 많이 늘었다. (본인 지갑에 있는 북한 내 직불카드를 보여주며) 이제는 이것으로 찍고 다닌다. 북한 당국 스스로 직접 표현은 안하지만, 서서히 시장경제로 변화 중이다.”
―앞서 5·24 조치를 언급했다. 현 정부에 바라는 점은.
“미국만 해도 지금 많은 과학자들을 북한에 보내고 있다. 과거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도 과학자에겐 비자를 내줬다.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에 있어서 과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통일준비위원회에 과학자가 딱 한 명 있다고 들었다. 원로 과학자들이 많이 화났다. 정치와 무관한 과학은 북과 교류하고 화합하기 좋다. 5·24 조치가 문제인데, 제발 과학기술만은 예외로 했으면 좋겠다.”
―평양과기대의 역할과 목표가 뭔가.
“국제화가 우선이다. 이미 국제학술대회 등을 통해 외부에서도 북한 학생들이 유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통해 우리 학교가 북한과 서방 세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고, 북한을 서방세계의 한 멤버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작년 첫 졸업생 배출 ‘평양과기대’ 어떤 곳? 남북합작 ‘실험 모델’ 전세계가 주목 지난 2009년 개교한 최초 남북합작 고등교육기관인 평양과학기술대학(PUST·평양과기대)이 지난해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다. 2001년 설립을 추진한 이래, 무려 13년 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물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쩌면 이제 막 첫 졸업생을 배출한 평양과기대는 교육 분야뿐 아니라 남북합작의 전 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모델로 주목받게 됐다. 그 시험대에 선 평양과기대의 현재를 <일요신문>이 집중 조명했다. 평양과학기술대학 전경. 사진제공=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시작은 200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남한의 민간단체인 동북아문화교육협력재단(협력재단)이 북한 교육성과 건립계약을 체결하고 합작 설립의 첫 삽을 떴다. 통일부 역시 곧바로 사업을 승인했다. 협력재단은 이미 지난 1993년 중국 연변(延邊)에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하여 성공적인 성과를 낸 경험이 있는 민간단체다. 연변과기대는 현재 ‘중국 100대 대학’으로 거듭났다. 남과 북 모두 이러한 기관의 경험을 높이 샀고, 북측은 평양 낙랑구역 승리동 부지 100만㎡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높은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개교와 학생 배출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엇보다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된 남북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학교 설립 작업은 순전히 재단을 통한 외부의 지원에 의해 이뤄져야 했다. 공동으로 참여하는 총장, 부총장, 학부장, 교수진 등 인적 지원을 제외한 북측의 물적 지원은 전무했다. 애초 기획하고 예상했던 외부 지원이 불안한 남북관계 탓에 더뎌졌다. 이 때문에 실제 계획했던 2007년 개교는 2년간 늦춰졌다. 2008년에야 건물 17개동을 완공했고, 2009년 9월 남북한 공동총장 체제로 학교는 문을 열게 된다. 정보통신공학부, 농생명공학부, 국제금융경영학부, 3개 학부가 설치됐다. 하지만 2010년 5·24 조치에 따라 개교 이후에도 학교는 물적·인적 지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평양과기대는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해 5월 21일 대학원생 44명, 그리고 11월 19일 학부생 99명이 석·학사모를 쓰게 된 것. 뿐만 아니다. 개교 이래 16명의 학생이 유럽과 중국의 명문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 중 2명은 여전히 스위스에서 유학중이다. 또 올해에도 16명의 학생이 해외 명문대학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고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오히려 남한보다 서방 국가들의 관심이 더 뜨겁다. 평양과기대는 지난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1차 학술대회엔 200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피터 아그레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영국 데이비드 알톤 상원의원이 참석해 기조연설에 나섰다. 2차 학술대회에서도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 소속의 전직 우주인인 데이비드 힐머스와 영국의 저명한 신경학자 닐 스콜딩 브리스톨 대학 교수 등이 초대됐다. 교원들의 구성도 다국적이다.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5개 내외 국가의 교수들이 초빙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초빙된 교수들은 학교 자금 사정상 숙식만을 제공받고 있지만, 전공과목의 경우 대다수 박사학위 소지자들이다. 이러한 외부의 관심과 지원은 결국 재학생들의 높은 수준을 기반으로 한다. 재학생들은 전부 김일성대학, 김책공대 등 북한의 일류대학에서 1~2년간 수학한 학생들 가운데 선발한다.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일류대학 학부의 졸업생들이다. 또 학부와 대학원생들은 각각 1년과 6개월간 영어 수업만을 받게 되며, 재학기간 동안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전공분야에 대한 수준은 물론 어학실력 역시 뛰어난 셈이다. 오랜 기간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남북관계가 올해 들어 순풍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제 막 졸업생을 배출하며 결실을 맺기 시작한 평양과기대는 하나의 실험으로서 중요한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이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