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 중인 참고인 압수물 넘겨받은 혐의로 피고발…수사 지연 모양새 뚜렷, 경찰 “통상적 절차 따라”
[일요신문]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주장해 온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피의자로 입건된 사건에서 1년 가까이 경찰 조사 한 번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해당 사안을 주요 사건으로 분류하고도, 정작 핵심 피의자인 추 지사에게는 출석 자체를 요구하지 않아서다. 유력 정치인 앞에서 경찰이 몸을 사리며 사실상 수사를 미뤄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수사"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26일 추미애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이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추 위원장은 "8월 14일 '순직해병 특검팀'의 송호종 씨 등에 대한 고발의뢰가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박은숙 기자#1년째 수사 '질질'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2025년 8월 추 지사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사건은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 채수근 상병 순직사건을 수사한 이명현 특별검사(특검)팀의 수사 자료를 넘겨 받은 게 핵심이다.
같은 해 이명현 특검팀은 참고인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기기에 저장된 각종 개인자료를 추 의원실에 넘겼다. 이어 추 의원실은 언론에 이를 배포했다.
그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도 고질적 악습으로 꼽혀 왔는데,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의 압수물을 특정 정치인 측에 제공한 행위는 더욱 중대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휴대전화 포렌식이 끝나기도 전에 관련 자료가 추 의원실에 넘어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압수물 분석과 외부 제공이 사실상 실시간으로 이뤄진 셈이다.
이에 휴대전화 주인이자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이관형 씨가 추 지사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 씨는 순직해병 사건 직후 논란이 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 '멋쟁해병' 몇몇 구성원들의 지인이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 사진=최준필 기자#수사규칙 먼 나라 얘기
서초경찰서는 사건을 접수한 지 약 1년 지난 현재까지 추 지사를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안 자체를 무겁게 바라보고 주요사건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수사에 전력은 다하지 못했다. 추 지사가 피고발인으로 적시된 사건인데도 피의자 특정마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실제 피의자가 추 지사 당사자인지 의원실 관계자인지 등도 식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는 경찰이 유력 정치인 수사에 부담을 느껴 초동 단계부터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법리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핵심 피고발인에게 출석 요구조차 하지 않은 채 1년 가까이 지난 경우는 이례적이다. 2025년 기준 경찰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이 54.4일이다. 추 지사 사건은 2025년 8월 14일 접수돼 이미 300일도 훌쩍 넘겼다.
또 경찰 수사규칙 제24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찰은 고소·고발을 수리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 외 11조는 "수사개시, 수사개시 후 1개월, 3개월 때마다 수사 상황을 고소·고발인에 통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 고발인 이 씨는 사건 진행 상황은 물론, 접수 여부도 알림을 받지 못해 사건번호조차 모르는 상태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로 인한 경찰의 권한과 책임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치열한 가운데, 경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독립적으로 수사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로선 '수사 지연'이 뚜렷한 모양새다. 수사 지연은 추 지사가 직접 비판한 사안이기도 하다. 추 지사는 지난 7월 11일 본인 페이스북에 "검찰이 수사 지연으로 공소시효를 도과시키는 법 기술로 정의를 훼손해 왔다"며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서초서 관계자는 "정치적 부담 등 특별한 사정 때문은 결코 아니다"라며 "다른 사건도 워낙 많아 바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정도 늦어지는 일은 자주 있다"면서 "통상적인 절차대로 수사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고발 의뢰 위한 조치? 순직해병 특검팀 꼬이는 해명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직권남용 혐의 고발 사건은 지난해 8월 한 인터넷매체 보도로 촉발됐다. '멋쟁해병' 구성원 송호종 씨가 2023년 7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과 통화를 나눴다는 기사였다. 송 씨는 앞선 국회 국정감사에서 임 전 사단장과 통화한 적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이게 위증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병대원 순직사건 관련 의혹을 수사한 특검팀의 이명현 특별검사가 2025년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150일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관련 통화 내용은 송 씨 지인 이관형 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됐다. 순직해병 특검팀이 참고인이었던 이 씨한테서 압수한 휴대폰의 내용물이었다.
당시 순직해병 특검팀은 '참고인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일자 "송호종·이관형에 대한 고발을 의뢰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더 커졌다. 고발의뢰 일자가 8월 14일이었기 때문이다. 송 씨와 이 씨 두 사람 휴대폰 포렌식이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결국 이 씨는 추 지사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그 후 순직해병 특검팀은 "실수로 잘못 설명했다"며 "고발의뢰는 8월 14일이 아니라 포렌식 마지막 날인 8월 18일이었다"고 재차 반론했다. 그렇지만 정작 추 지사도 2025년 8월 26일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주관하며 "지난 '8월 14일' 순직해병 특검팀의 송호종 씨 등에 대한 고발의뢰가 있었다"고 밝혔다.
설령 8월 18일이 맞더라도 의문은 이어진다. 그대로라면 순직해병 특검팀은 포렌식을 끝내자마자 90분짜리 통화파일 등을 분석하고, 83쪽 분량의 고발의뢰 자료를 작성해 당일 오후 국회에 넘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물리적으로 가능한지가 물음으로 남아 있다. 당시 고발의뢰 절차에 관여한 전 순직해병 특검팀 관계자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