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좋고 매부 좋으려면…‘냉전모드’ 유지하라!
올 들어 18만~19만 원 사이를 오르내리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지난 1월 28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급등한다. 27일 단일 최대주주인 넥슨이 투자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를 경영권 다툼의 신호로 해석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29일 주가는 4% 넘게 급락한다. 실제 지분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게임업계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엔씨소프트(왼쪽)와 넥슨 전경.
엔씨소프트의 지배구조를 살펴보자. 단일 최대주주는 15.08%를 보유한 넥슨이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지분율은 9.9%에 불과하다. 엔씨소프트가 발행주식의 8.93%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금 우호세력에 넘긴다고 해도 이미 주주명부가 확정돼 올 3월 주총에서는 의결권이 없다.
그렇다고 넥슨이 15.08% 지분율로 이사회를 장악하리라 장담하기도 어렵다. 김택진 사장이 창업자인 만큼 엔씨소프트에 우호적인 주주들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주총을 무사히 넘긴다면 김택진 대표가 우호세력을 찾아 자사주 의결권을 되살려 넥슨에 대한 대항력을 키울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경우에든 양측이 시장에서 지분매입 경쟁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넥슨의 현금성 자산은 1조 2600억 원이 넘는다. 엔씨소프트의 이익잉여금도 지난해 9월 말 기준 1조 1718억 원이나 된다.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28일 종가기준)은 무려 4조 7586억 원이다. 넥슨이 50%를 확보하려면 34.92%의 추가지분이 필요하다. 시가로 1조 6711억 원이다. 엔씨소프트가 지분율을 50%까지 끌어올리려면 1조 4916억 원의 돈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두 회사의 자금력이 탄탄하다지만 지분경쟁에 따른 주가 상승분까지 감안하면 시장에서 주식을 사서 지분율 50%를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문제의 발단은 넥슨이 보유한 엔씨소프트 주가가 매입 당시보다 현저히 낮아진 데 있다”면서 “투자수익이 문제인데, 다시 돈을 투입해 지분을 매입하기보다는 경영에라도 참여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8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인수할 때 치른 돈은 주당 25만 원씩 총 8045억 원이다. 분명 현재 주가보다 낮다. 다만 인수 당시 100엔당 1500원에 육박했던 원-엔 환율이 9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넥슨 장부에 기록된 지분가치는 투자 당시보다 1000억 원 이상 높다는 게 엔씨소프트 측 주장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책은 결국 주가상승이다. 넥슨은 돈을 벌고, 앤씨소프트는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올 들어 발간된 증권사들의 분석보고서를 보면 엔씨소프트 목표주가는 주당 18만~22만 원 사이가 가장 많다. 24만 원, 25만 원을 제시한 증권사도 있지만 극소수다. 결국 경영권 프리미엄을 끌어내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주가 견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번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엔씨소프트 주가는 주당 21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양측이 바라는 방향으로 주가가 움직인 셈이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듯한 상황이 연출되면 주가가 올랐지만, 분쟁 가능성이 사라지면 주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며 “결국 양측이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어떤 묘책을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넥슨 측이 지분매각 가능성을 언급할 경우 주가는 하락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넥슨 쪽이나 엔씨소프트 쪽 모두 갑자기 기업가치를 높일 만한 재료를 내놓을 가능성도 낮다. 따라서 일단 양측이 팽팽한 긴장 상황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넥슨 입장으로써는 현재의 지분율도 엔씨소프트 경영진을 충분히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지시키면서, 사모펀드 등에게 지분을 블록딜로 넘기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