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애걸해서 도와주는 셈치고…”
▲ 사진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이 사건은 가장 작은 규모의 지역사회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종의 단일 사건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단 두 명의 미성년 여종업원이 한 마을 남성 대부분과 관계를 맺은 셈인데 어떻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걸까. 지금까지 이뤄진 경찰 조사를 바탕으로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자.
지난 9월 중순 어느 날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평온한 한 시골 마을에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마을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경찰이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들을 연행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다방 업주 추 씨로부터 압수한 고객장부에 따르면 이 마을에 거주하는 남성 가운데 무려 53명이 이 다방의 미성년 여종업원과 성매매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모두 한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다 보니 이들 중에는 친인척간인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부자지간이거나 형제지간인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의 한가운데엔 ○○다방의 종업원 김 아무개 양(16)과 차 아무개 양(19)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양과 차 양은 이 다방에서 이른바 ‘티켓걸’로 일하면서 다방 업주 추 씨로부터 하루 매상 20만 원을 채우도록 강요받았으며 이 때문에 노예처럼 마구잡이식 성매매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양과 차 양은 ○○다방에서 일하기에 앞서 대구에 거주하며 현지의 학교에 다니다 가출하면서 전남 구례군까지 흘러들어가게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 양과 차 양이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대구의 한 분식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두 사람은 각자의 고민을 나눈 끝에 가출을 감행한 뒤 같은 해 10월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았다.
이들이 일하게 된 곳은 구례군 △△마을에 위치한 ○○다방. 김 양 등이 멀리 구례로까지 흘러들어온 것은 자신들과 연고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다방에서 일하더라도 소문 날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을은 전체 가구 수도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로 대도시에서 온 두 소녀는 마을 규모를 보고 일이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방을 포함해 무려 13개나 되는 티켓다방이 이 작은 마을 주변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방은 김 양과 차 양이 애초 생각했던 일반적인 다방과도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시골 다방이라고는 하지만 7평 남짓한 공간에 손님을 맞을 테이블도 없이 싱크대와 커피 물 끓일 가스레인지만 달랑 놓여 있었다.
이처럼 다방이 허름하기 짝이 없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겉으로만 다방 간판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티켓걸’을 통한 성매매를 주업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업주 추 씨는 처음에 김 양 등이 가출소녀라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각자 올리는 매상의 40%를 주겠다고 사탕발림을 했다.
하지만 추 씨가 제시한 계약조건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루 16시간 근무에 1인당 매일 20만 원씩 입금’ 등 무리한 조건을 내건 데다 지각을 하면 시간당 3만 원, 결근은 35만 원, 외박은 2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양 등은 손에 쥐는 돈 없이 빚만 늘어났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추 씨가 시키는 대로 티켓을 팔아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추 씨 부부와 함께 다방을 운영한 종업원 김 씨는 이 부부의 양아들로 여학생들을 고객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는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주로 아침에 김 양 등이 머무는 숙소로 찾아가 두 소녀를 수시로 성추행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양은 “아침에 김 씨가 숙소로 찾아와 여기저기 만지고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자주 했다”며 “이 때문에 아침만 되면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치를 떨었다.
김 양과 차 양은 ○○다방에서 일하는 동안 무수한 남성들과 성매매를 해야 했다. 경찰이 조사한 업주 추 씨의 고객장부에는 무려 53명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김 양 등은 경찰 진술에서 더욱 충격적인 말을 했다. 실제 자신들이 성매매를 한 남성의 수가 추 씨의 고객장부에 기재된 53명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 분위기가 워낙 흉흉하고 주민들이 이웃에 대해 입 열기를 주저하고 있어 추가 혐의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한 상태다.
김 양 등과 성관계를 가진 주민들은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자 53명에게 물어보니 성매매가 이루어진 장소는 모두 제각각이었다”며 “집으로 불러들인 경우도 있었고 자신의 차 안에서 성관계를 가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성매매 혐의로 적발된 주민들의 직업은 자영업자, 농민, 건설업자, 회사원, 택시기사, 배달원 등 다양했는데 주로 자신의 직장으로 커피배달을 시킨 뒤 성매매를 한 경우가 많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성매매를 한 남성들 가운데는 70세가 넘은 노인도 있었고 지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도 있었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성매매를 했다고 보면 된다”며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김 양 등이 절박하게 ‘성매매를 해 달라’고 애걸해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셈치고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업주 추 씨가 김 양 등으로부터 1억 원이 넘는 돈을 갈취했지만 눈에 띄게 돈을 쓴 흔적이 없었다”며 “어린 소녀들을 유린해 자신의 주머니만 채워왔던 셈”이라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양 등은 우여곡절 끝에 이 티켓 다방에서 탈출해 멀리 부산까지 도망,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관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당시 두 여학생을 발견한 경찰 관계자는 “김 양 등이 얼굴은 어린데 차림새가 너무 야해서 불러 확인해 보니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연이 숨어 있었다”고 밝혔다.
김 양과 차 양이 티켓을 팔았던 △△마을은 현재 발칵 뒤집힌 상태다(관련기사 68면). 대다수의 마을 남자들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집집마다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는 후문. 한 주민은 창피해서 읍내로 외출도 못할 지경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김 양 등은 한 마을을 초토화시킨 성매매의 당사자지만 미성년자는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성매매특별법에 따라 별도의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