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탕! 포연과 함께 사라지고 ‘한’만 남았다
▲ 지난 2001년 12월 대전 둔산동 현금수송차량 권총강도사건 당시 TV에 보도됐던 화면들. MBC-TV 화면 캡처 | ||
실제로 한 일선 형사는 “미제사건은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와 직결된다.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면 믿겠는가”라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경찰이 해결하지 못한 또 하나의 미스터리한 사건이 있다. 한때 용의자를 검거, 영장실질심사까지 갔지만 물증을 찾지 못하고 결국 미궁 속에 빠지게 된 사건. 바로 5년 전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대전 현금수송차 권총강도사건’이 그것이다.
지난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경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1층 주차장. 인적이 없는 지하주차장 안으로 현금수송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국민은행 용전동지점에서 출발한 이 수송차량 안에는 당일 은행 영업자금으로 사용될 현금 6억 원이 들어 있었다.
이윽고 수송차량이 멈추자 현금출납을 담당하고 있던 이 은행 김 아무개 과장과 두 명의 청원경찰이 차례로 내렸다. 이들은 평소대로 현금이 3억원씩 담겨 있는 가방 두 개를 수레에 싣고 건물 4층에 있는 충청지역본부 금고로 옮기려 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난데없이 검정색 그랜저 승용차가 접근, 수송차량의 길을 막아섰다. 곧바로 권총을 들고 마스크를 쓴 괴한 두 명이 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현금가방을 노린 강도가 분명했다.
괴한들은 다짜고짜 공포탄을 쏘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 명이 권총으로 김 과장 일행을 위협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은 재빨리 돈가방 앞으로 다가갔다. 김 과장 곁에 청원경찰이 함께 있었지만 권총을 들고 있는 괴한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한 개의 돈가방을 뺏은 괴한이 나머지 돈가방에 손을 뻗치는 찰라 김 과장은 온몸으로 돈가방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예상외의 반항에 다급해진 괴한은 김 과장을 향해 실탄 4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척에서 가슴과 팔, 다리에 실탄을 맞은 김 과장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당황한 괴한들은 미리 빼앗은 가방 한 개만 들고 그랜저 승용차에 올라 황급히 달아났다. 중상을 입은 김 과장은 이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나 30여 분 만에 숨지고 말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현금수송차량 권총강도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인들이 현금수송차량이 들어오는 시각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이 은행 지하주차창을 범행장소로 택한 점 등으로 보아 은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또한 이들의 범행수법이 대담할 뿐 아니라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강도전과자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대전 둔산경찰서 삼천파출소에 전담수사본부를 설치한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범인들의 몽타주를 작성하는 한편 예상 도주로를 추정해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벌였다.
범행에 사용된 그랜저 승용차는 사건 당일 현장으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한 건물의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차적조회 결과 놀랍게도 이 승용차는 1999년 3월 평택에서 도난당한 차량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무엇보다도 범인들이 권총을 지녔던 점에 주목했다. 이들이 현금수송차량을 털 목적으로 권총을 구했다면 이번 범행은 매우 철저한 사전계획에 따라 이뤄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권총을 지닌 범인들이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도 남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현장에서 수거한 탄환은 사라진 범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실마리이기도 했다. 과학수사팀의 감식결과 문제의 탄환은 경찰이 사용하는 38구경 권총의 탄환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범인들이 권총과 실탄을 구한 경로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했다. 목격자가 있었지만 워낙 범행이 갑자기, 그것도 순식간에 벌어진 터라 당황한 나머지 범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몽타주에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사건이 발생한 은행 지하주차장에는 CCTV가 설치되지 않아 범인들의 구체적인 용모와 신상에 대해서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던 범행에 사용된 권총과 실탄의 출처에 대한 수사에서도 별다른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일단 은행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내부관계자와 동일한 범죄전과가 있는 자들을 1차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특별한 용의점이 있는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경찰은 수사인력을 보강해 그해 전국 25개 교도소에서 출소한 강도전과자 1300여 명에 대한 탐문조사까지 일제히 실시했지만 이마저 허사였다.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해 수개월간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던 경찰 수사는 사건 발생 8개월여 만인 2002년 8월 29일 송 아무개(당시 21세), 김 아무개(22), 박 아무개 씨(23·당시 현역 상병) 등 3명을 용의자로 검거,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경찰은 현역 군인이 포함된 이들 일당이 카드빚을 갚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오래 전부터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현금수송차량의 운행 시간 및 보안 상태를 체크했으며 범행 당일 보안상태가 허술해 보이는 이 은행 지하주차장에 잠복해 있다가 현금수송차를 습격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들을 상대로 권총을 손에 넣게 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그 결과 송 씨로부터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10월 중순경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신원미상의 20대 후반의 남성 두 명에게 370만 원을 주고 권총을 구입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송 씨가 범행에 사용할 목적으로 12월 1일 수원시 영통동의 외딴 갓길에 세워져 있던 그랜저 승용차를 훔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했다. 경찰의 전언에 따르면 송 씨 일당은 적어도 두 달 전부터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셈이다.
▲ 사건 직후 몽타주가 뿌려졌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연합뉴스 | ||
그러나 송 씨의 이 같은 진술은 몇 가지 의문을 남겼다. 과연 어떻게 경찰의 검문을 피해 신탄진 인근 야산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지, 또 왜 하필 3억 원 가운데 4000만 원씩만 나눠가졌는지, 그리고 나머지 1억 8000만 원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던 것.
하지만 경찰은 송 씨의 자백과 앞 뒤 정황을 종합해볼 때 이들이 범인이 확실하다고 여겼다. 특히 이들이 범행 후 버리고 달아난 그랜저 승용차에서 경유가 들어 있는 페트병 1개와 담배 3개비를 이어 만든 점화장치 4개가 발견된 뒤 이것을 유력한 증거라고 판단했다. 이들이 범행 후 차량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 같은 장치를 만든 것으로 추정했던 것.
하지만 거의 해결되는 듯 보였던 사건 앞에는 예상치도 못한 난관이 버티고 있었다. 용의자들을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정할 만한 물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일부 증거는 오히려 이들의 범행 연루 가능성을 낮추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우선 범인들이 사용한 차량과 송 씨 등의 차량이 서로 달랐다. 이들이 타고 다닌 것으로 밝혀진 차량은 ‘경기 65 러 5○○○’ 그랜저 차량이었다. 하지만 범행 당일 목격된 차량은 ‘경기 2버 5○○○’ 그랜저 차량으로 차종만 같을 뿐 다른 차량이었다. 또 경찰이 이들의 차 안에서 발견한 페트병과 점화기구 역시 사건과 직접 연관 있는 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세 번째는 용의자의 자백 부분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자백한 송 씨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애초부터 일관되게 범행사실을 부인했었다. 설상가상으로 송 씨 역시 이후 자백을 번복, 처음의 진술을 부인했다. 송 씨의 갑작스런 진술 번복은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경찰의 속을 썩였다.
가장 큰 문제는 범행에 사용된 38구경 권총과 탈취한 나머지 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었다. 한때 송 씨는 권총과 나머지 돈을 ‘공범’ 박 씨가 숨겨뒀다고 진술했으나 박 씨는 범행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결국 이들은 강도살인의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되고 만다.
8월 29일 충남경찰청이 신청한 용의자 송 씨와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대해 대전지법은 ‘범죄증거 및 소명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또 육본보통군사법원 역시 박 씨에 대한 헌병대의 영장 청구를 ‘증거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한때 송 씨의 자백이 있었던 데다가 여러 정황상 심증을 갖고 있던 경찰로서는 청천벽력과 다름없었다.
범인을 검거했다는 기쁨을 맛볼 겨를도 없이 수사는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사건 발생 5년을 코앞에 둔 현재까지도 이 사건에는 여전히 미제사건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고 있다.
현재 경찰이 보관하고 있는 사건 관련 수사자료만도 1t 트럭 한 대 분량. 경찰은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 새로운 단서를 찾아내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억울한 죽음을 당한 한 은행원의 ‘한’은 이대로 기억 너머로 파묻히고 마는 걸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