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종차별로 마음의 상처”
▲ MSNBC 홈페이지 화면 캡처. | ||
일단 조 씨가 1차 범행 직후 미국 NBC방송에 보낸 본인의 섬뜩한 사진과 저주를 퍼붓는 동영상 등이 공개되면서 ‘사회에 대한 반항’과 ‘무차별적인 적개심’이 원인이 된 계획적인 범행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지 언론 보도 내용이 주로 조 씨의 과대 망상적 사고와 돌출 행적을 부각시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경찰도 사건 당시의 상황과 조 씨 범행의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증거를 매우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있어 본질적인 범행 동기를 가늠해보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NBC는 지난 4월 19일 조 씨가 1차 범행 직후 보낸 글과 동영상, 사진 등을 공개했다. 조 씨는 이 글과 동영상을 통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고, 특히 부유층(권력층)과 쾌락주의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또한 미국 현지 언론들은 조 씨를 지도했던 교수와 동료들의 말을 인용 보도하면서도 조 씨가 별난 외톨이었으며 2005년에는 여학생에 대한 스토킹으로 경찰 조사와 신경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받았던 ‘문제아’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NBC방송에 보낸 사진과 동영상 속의 조씨,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 교수와 학생들이 떠올리는 기억 속의 조 씨는 분명 ‘정상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이번 ‘참극’이 극단적인 심리상태에서 벌어진 행위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미국 현지 언론의 보도와 경찰의 발표에는 조 씨가 왜 이러한 병적인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별다른 정보가 없다. 조 씨가 비극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 직접적인 동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소극적이던 한 학생이 ‘학살자’로 변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다. 제2, 제3의 조승희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는 조 씨가 삐뚤어진 분노와 복수심을 가슴에 하나둘 쌓아 놓게 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선결과제다.
그렇다면 조 씨의 학살극 저 너머엔 과연 어떤 불행의 씨앗이 숨어 있었던 걸까.
<일요신문>은 조 씨 부모와 사고 직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절친하게 지냈던 한국 교민 A 씨를 통해 조 씨 주변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10여 년간 조 씨 부모와 가까이 살면서 교회까지 함께 다니던 가까운 이웃사촌이다.
A 씨는 최근 몇 차례 가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과거 조 씨 및 조 씨의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 내용과 자신이 지켜본 가족사 등을 전했다.
먼저 A 씨는 “(조 씨가) 유난히 말이 없고 친구가 없는 아이였지만 누나처럼 천재 소리를 들은 아이였는데…”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을 밝혔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에 온 이민 1.5세들이 현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톨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조 씨의 경우) 병적인 이상심리의 뿌리가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인종차별적 대우로 입게 된 마음의 상처와 맞닿아 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A 씨는 “(조)승희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백인아이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해 1년 동안 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다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자기를 ‘칭챙총’(보통 중국인을 비꼬는 현지 비속어)이라고 부르며 눈이 찢어지고 코도 낮다면서 무시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들을 전학시키지 않고 달래면서 학교에 억지로 보냈는데 그때부터 아이가 아예 집에서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어머니가 상당히 걱정을 했었다”고 말했다.
또한 A 씨는 “지난해 여름 교회 수련회에서도 (조)승희를 만났는데 그 때도 인종차별 문제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었다”면서 “어릴 때부터 외국 학생들로부터 고립되면서 하나둘 쌓인 응어리가 점차 가슴에서 일그러진 원한으로 자라난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A 씨는 조 씨가 NBC방송에 보낸 동영상에서 부유층을 강력하게 증오한 부분에 대해선 조 씨로부터 부자에 대해 특별히 악감정을 가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승희네 가정 형편이 어렵긴 했다. 초기의 미국 언론 보도와는 달리 조 씨 부모는 세탁소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한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특히 조 씨 어머니는 세탁소에서 힘든 일을 많이 해 어깨가 다 망가질 정도로 상했지만 (가족을 위해) 최근에는 학교 구내식당에서까지 일을 했었다. 미국 ○○○대를 졸업한 누나도 의대에 다시 진학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래도 승희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얼마 전 어머니와 만난 자리에서 승희가 ‘올해 지나면 졸업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 씨가 어머니에게 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당시(올초)만 해도 그가 극단적인 살인극을 계획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조 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는 대목이다.
한편 A 씨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 과정에서 조 씨의 돌출 행동과 사고의 수위가 너무 과장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언론의 보도 내용대로 라면 조 씨가 학생의 선발 심사가 무척 까다로운 버지니아 공대를 어떻게 진학할 수 있었으며, 더구나 대학이 문제투성이인 조 씨를 왜 계속 방치했던 것인지 쉬이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공대의 장학생’, ‘한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에서 ‘잔인한 학살자’로 전락하고 만 조 씨. 과연 그가 극과 극의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