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이들이라면 한 번 쯤을 꼭 들리는 곳이 바로 ‘해운대 비프빌리지(BIFF Village)’다. 요즘엔 너무 기업체 홍보 부스가 늘어나 아쉬움도 있지만, 해운대 해변 백사장에 마련된 영화 마을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영화배우들이 참여하는 행사도 많이 열리는 터라 늘 영화제 기간 내내 비프빌리지엔 엄청난 인파가 오간다. 개인적으로 기자가 기억하는 지난 해 해운대 비프빌리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꽃분이네’ 부스로 또 한 번의 1000만 관객 신화를 쓴 영화 <국제시장>의 홍보 부스였다. 그때 이미 영화팬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유발한 <국제시장> 꽃분이네 부스는 이후 1000만 관객 신화릐 첫걸음이 됐다.
또 하나는 비프빌리지 모래사장에 있던 실제 사이즈 탱크였다. ‘Fury’라는 이름의 이 탱크는 길이 7미터, 무게 34톤의 ‘M4A3 셔먼 탱크’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활용된 이 탱크는 한국전쟁에도 활용돼 한국과 인연이 깊다. 비프빌리지에 전시된 전차 역시 할리우드에서 직접 공수한 것이 아닌 대구 낙동강승전기념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이던 유물을 가져온 것이었다.
한 달 뒤인 지난 해 11월 개봉한 영화 <퓨리>는 136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요즘 극장가 흥행 추세만 놓고 볼 때 대박은 아니지만 그리 나쁜 흥행 성적도 아니었다. 꽤 괜찮은 영화임에도 극장 관객수가 10만 명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으로 영화 <퓨리>는 전쟁 영화다. 주인공은 타이틀롤인 탱크인 퓨리다. 그리고 퓨리와 함께 생사를 함께 한 대원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물론 리더인 ‘워 대디’ 역할의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브래드 피트보다는 신입 대원 ‘노먼 앨리슨’ 역의 로건 레먼이 더 주인공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미 탱크 퓨리와 함께 영웅 대접을 받는 워와 기존 대원들 보다는 전장에 막 투입돼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는 노먼의 시선이 영화의 중심에 더 가깝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퓨리>는 어떤 승리를 위해, 주어진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기 위해 싸우는 전쟁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2차 대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사실상 승전이 굳어진 상황에서 독일 본토를 공격 중인 연합군의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일군은 맹렬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마을이 하나 둘 연합군에게 점령당하고 독일 국민은 이제 패전국의 국민으로 신음하고 있다.
물론 ‘퓨리’에 탑승한 대원들에게도 막중한 임무가 주어지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 빼어난 전투 능력 등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 더욱 주력한다. 그러다 보니 작전 수행 능력과 전투력이 빼어난 워와 기존 팀원들보단 이제 막 전장에 투입된 노먼의 시선이 중요해진다.
어찌 보면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 해운대 비프 빌리지에서 가장 눈에 띈 두 영화 <퓨리>와 <국제시장>은 살짝 맞닿아 있기도 하다. <퓨리>가 전쟁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며 전쟁의 실상을 그려냈다면, <국제시장>은 한국 전쟁으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이야기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퓨리’라 불린 M4A3 셔먼 탱크도 두 영화의 접점이다. <퓨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탱크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주요 탱크였으며 한국 전쟁 당시에도 미군이 활용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전쟁 당시 쓰이던 M4A3 셔먼 탱크가 대구 낙동강승전기념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돼 있다가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도 전시된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 메인 예고편 캡쳐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은 유명한 흥남철수다. 미군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더 많은 피란민을 구출하기 위해 탱크 등 무기와 장비를 흥남부두에 두고 떠난다. 만약 메러디스 빅토리아호가 피란민 구출 대신 본래 작전에 충실해 무기와 장비 등을 수송했다면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 가족은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 국제시장에서 꽃분이네 가게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덕수 대신 흥남부두에 남겨진 미군 탱크 가운데에는 ‘퓨리’라 불린 M4A3 셔먼 탱크도 포함돼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흥남철수 작전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퓨리’를 버리고 ‘덕수’를 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피란민들이 부산에 정착해 오늘날 국제시장의 기초가 됐으며 영화 <국제시장>의 개봉으로 이어졌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