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승객에 못된 욕망 불끈
이런 사건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유독 이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범행 장소가 수원이라는 점과 범행 대상이 40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용의자가 택시기사라는 점 때문이었다. 화성과 수원 일대의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화성부녀자연쇄실종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이 경찰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지난 6월 14일 밤 10시경 김 아무개 씨(여·44·주부)는 친구 부부와 함께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K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 김 씨는 나이트클럽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밤 11시 40분경 집으로 가기 위해 친구 부부와 헤어져 나이트클럽을 빠져나왔다.
영업용 택시기사 이 아무개 씨(29)는 K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김 씨를 자신의 택시에 태웠다. 이 씨는 김 씨와 택시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김 씨에게 호감을 느꼈다. 이 씨는 김 씨에게 자신과 다른 나이트클럽에 가서 좀 더 놀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김 씨는 이 씨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 씨는 A 나이트클럽 앞에 무작정 차를 세웠다.
결국 김 씨는 “잠시만 놀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이 씨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A 나이트클럽에 들어갔다. 현재 이를 두고 피해자인 김 씨는 “강제로 A 나이트클럽에 끌려갔다”고 진술한 반면 가해자인 이 씨는 “김 씨가 자발적으로 함께 술을 마시러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는 A 나이트클럽에서 자신의 친동생(27)에게 전화를 걸어 “술 한잔 하자”며 불러냈다. 동생 역시 택시기사를 하고 있었다. 동생이 나이트클럽에 온 잠시 뒤 김 씨는 “늦었으니 먼저 집에 가겠다”고 가게에서 나왔다. 이 씨는 동생과 함께 김 씨를 따라 나와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택시에 태웠다.
잠시 후 택시가 가는 방향이 자신의 집 방향과 다른 것을 눈치 챈 김 씨는 이 씨에게 “우리 집은 이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이 씨 형제의 태도는 돌변했다. 이 씨는 수원시 평동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차를 몰아 동생과 함께 김 씨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김 씨는 두 형제의 행동에 강하게 저항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저수지에 던져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에 결국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씨 형제는 번갈아 김 씨를 성폭행하고 현금 18만 원과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성폭행 후 김 씨를 다시 차에 태운 이 씨 형제는 어딘가를 향해 택시를 몰았다. 순간 김 씨의 머릿속에는 ‘화성부녀자연쇄실종사건’이 떠올랐다. 두려움에 떨던 김 씨는 택시의 속력이 줄어든 틈을 타 차문을 열고 도로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김 씨는 이 씨의 택시를 뒤따르던 또 다른 택시의 운전기사에 의해 발견됐다. 이 씨 형제는 택시를 몰고 황급히 달아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김 씨는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 냈다. 경찰은 김 씨가 기억하고 있는 범인의 인상착의와 택시번호를 토대로 수사를 펴 사건발생 19일 만인 지난 2일 이 씨 형제를 손쉽게 검거했다.
사건을 맡은 수원남부경찰서 조사 결과 이 씨 형제는 다수의 폭력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성폭행이나 강도 등의 동종 전과는 없었다. 이 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김 씨가) 이상형에 가까운 스타일이라서’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단순히 우발적으로 동생과 함께 성폭행을 범했고 그 과정에서 돈을 갈취하게 된 것일 뿐,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전혀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우선 이 씨의 말처럼 단순히 김 씨에 대한 호감이 지나친 나머지 성폭행까지 저지르게 됐다면 왜 그 전에 자신의 친동생을 불러냈는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여성 승객과의 밀회를 꿈꿨다면 굳이 동생을 따로 불러내야 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밀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것. 경찰 역시 이 점에 의문을 갖고 추궁했지만 이 씨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가 김 씨를 성폭행한 후 어디로 끌고 가려 했는지 역시 의문이다. 자신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김 씨를 순순히 집에까지 데려다 줬을 리가 없다는 게 경찰 주변의 시각이다.
경찰은 이 씨 형제의 범행 수법으로 보아 추가 범행이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당초 경찰 측이 언론에 발표했던 ‘화성부녀자연쇄실종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판명이 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유란 것이 단지 “범행 장소가 전혀 다르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명쾌한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추가 범죄에 대해서도 아직은 뚜렷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발표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 화성연쇄사건의 공포는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8일 안산의 한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된 박 아무개 씨(여·36) 사건의 경우에도 범행이 택시기사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찰이 당초 이번 사건의 범인들이 ‘택시기사’라는 점을 들어 ‘화성연쇄실종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범인이 화성 및 그 인근 지리를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과, 여성 실종자들이 한밤중에 일면식도 없는 일반 차량에 쉽게 탑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일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녀자연쇄실종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일어난 택시기사 강도 및 성폭행 사건으로 화성 주민들은 불안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