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수사대 모집해 활동할 것”
‘크림빵 뺑소니’ 사건 블랙박스를 판독해 유명세를 탄 김두호 씨. 김 씨는 컴퓨터 판매 사업을 하면서도 대가 없이 뺑소니 차량 동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컴퓨터 판매 사업을 하는 김 씨가 하루 종일 영상판독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법. 김 씨는 아침과 퇴근 후 시간을 쪼개 하루 20~30건의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 CCTV는 3일 밤을 새며 4000번을 돌려보기도 했다. 김 씨가 영상판독을 하면서 받는 대가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김 씨는 무료로 영상판독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3년 전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김 씨는 “3년 전 크게 대물사고가 났다. 거의 폐차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그렇게 2개월을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국과수에서도 가해자를 찾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가해차량을 찾지 못해 억울해 하는 대신 영상판독과 장비에 관한 공부를 했다. 2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장비를 구비하고 블랙박스 판독을 시작했다. 물론 장비만 갖춘다고 해서 가해차량의 차종과 번호판을 짧은 시간 내에 특정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김 씨는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덕에 차종을 구분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차종 구분이 어려울 때는 차량 종사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영상판독을 시작한 지 2년, 김 씨는 웬만한 차종은 한눈에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영상판독 의뢰는 이메일이나 김 씨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받고 있다. 전문가 수준의 네티즌이 모이는 자동차 커뮤니티와 달리 김 씨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자동차 사고 피해자들이 주로 모인다. 이 때문에 카페에 올라오는 의뢰 영상 대부분은 김 씨가 판독해야 한다. 김 씨가 판독하는 영상은 하루 20~30건 수준이다.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하루가 급한 피해자 입장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
김 씨는 “생업에 지장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웃음). 하루 20~30건씩 본다. 하루 밀리면 다음날은 60개를 봐야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 노력한다”며 “30건 중에서 10~15건 정도는 못 잡는다. 대가를 받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독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간혹 짜증을 내시는 분이 있지만 극히 소수일 뿐 다들 고마움을 많이 표해 주신다”고 말했다.
영상을 통해 가해차량을 특정하는 김 씨의 노하우와 성실함은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준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김 씨는 “화질이 나쁘면 적어도 100번 정도 돌려 봐야한다”며 “처음에 명암조절부터 시작해 노이즈를 처리하고, 여러번 스크린샷을 한 다음 겹치는 방법을 쓴다. 그렇게 하면 번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번호마다 형태가 있기 때문에 제일 근접한 숫자로 판독한다. 보통 20분 정도가 걸린다. 어려운 작업은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김 씨를 찾는 사람도 점점 늘어났다. 자동차 사고 피해자가 대부분이지만 놀랍게도 현직경찰도 가끔 찾아온다고 한다. 김 씨는 “남편이 처음으로 사준 차가 바로 다음날 폐차할 정도의 사고가 나서 속상해 하던 분을 도와드렸던 적이 있다. 가끔 현직에 계신 경찰분이 살인 용의자의 귀 모양 등을 특정해달라며 CCTV 분석을 의뢰해 오기도 한다. 내가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능력도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조금의 도움만 드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커뮤니티서 이미 유명인이었던 김 씨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크림빵 뺑소니’ 사건 때문이었다.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아 미궁에 빠진 경찰 수사를 지켜보다 김 씨는 보배드림 사이트를 통해 가해차량 추적에 나섰다. 김 씨는 처음 공개된 CCTV 자료를 분석해 의심차량의 차종(BMW 5시리즈)과 번호판 일부를 추정했다. 당시 경찰이 언론에 공개한 CCTV가 잘못 유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씨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김 씨의 노력에서 비롯된 보배드림 네티즌들의 움직임에 언론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두호 씨가 분석한 ‘크림빵 뺑소니’ CCTV는 애당초 경찰이 언론에 잘못 유포한 자료였다고. 어쨌든 김 씨의 노력으로 이 사건이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청주 흥덕경찰서는 지난 1월 28일 이례적으로 수사본부를 발족하고 강력계 형사들을 대거 뺑소니 사건 수사에 투입했다. 3명이던 뺑소니 전담반은 수사인력이 29명까지 늘어났다. 결국 이때 추가 투입된 강력계 형사들이 결정적 CCTV 영상을 찾아냈다. 이것을 감안하면 여론을 환기시킨 김 씨와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이 작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 잘못 유포된 영상으로 가해차량을 추정한 탓에 몇몇 BMW 차주들은 신상이 공개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어 한 경찰관계자가 “보배드림에서 저희한테 도움을 준 부분도 있고 억측해서 오히려 수사에 지장을 초래한 부분도 있다”고 한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네티즌 수사대가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나는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수사할 정도의 능력도 안 되고, 엄청난 전문적인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억울한 피해자를 도와주기 위한 ‘재능기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씨는 조만간 ‘네티즌 수사대’를 본격적으로 모집해 함께 활동할 계획이다. 이번 ‘크림빵 뺑소니’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김 씨는 “차량 종사자, 사진 관련자, 언론기자, 영상 관련자, 차량에 관심이 있는 사람 누구든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여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판독을 모르는 분, 배우고 싶으신 분 모두 모임을 통해 노하우를 전달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10명 내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블랙박스 판독을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량의 형태, 차종, 특징 및 어느 정도의 예상번호를 드리는 것뿐이다.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거나 스타가 되고 싶지도 않다. 내가 하는 영상 판독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도움을 받는 분들이 또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것으로 만족한다”고 웃어 보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 미소가 순수해보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네티즌 수사대 명과 암 마녀사냥·신상털기 이건 아니잖아~ 정보의 바다에서 특정 정보를 추출해내는 인터넷 활용능력, 의문이 생기면 연이어 밤을 새는 집중력과 체력, 만족할 만한 답을 얻어내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그리고 ‘키보드 워리어’나 ‘잉여’라는 조롱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 이상은 일명 ‘네티즌 수사대’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손꼽히는 것들이다. 최근에는 중고차 거래사이트 보배드림의 사용자들이 이른바 ‘크림빵 뺑소니’ 사건과 관련한 여론을 환기시켜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하면서 네티즌 수사대의 집단지성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네티즌 수사대의 과도한 의욕이 ‘마녀사냥’이나 ‘신상털기’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땅콩 회항’ 사건 당시, 교수직 제안을 받고 위증을 했다는 대한항공 여승무원의 실명과 사진 등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당사자가 억울하다며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또 지난 1월 ‘인천 어린이집 유아 폭행 사건’ 당시에는 가해자인 보육교사의 이름과 얼굴, SNS 계정 등이 네티즌에 의해 공개됐으나 애먼 사람이 가해자 남편으로 오해 받아 ‘문자테러’와 ‘전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크림빵 뺑소니 사건에서 보여준 네티즌 수사대의 역할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고 시민의식이 발달한 사회라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도 “다만, 네티즌 수사대의 과도한 신상털기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또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이 공권력의 불신으로 이어져 네티즌과 경찰의 대결구도로 비춰지는 것도 옳지 않다. 각 분야 전문지식을 가진 시민들의 의견을 적절히 활용해 경찰 수사에 조력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