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형사] 장승우 형사

“술 마신 상태서 죄책감 마비”

“수없이 많은 살인사건을 담당해왔지만 이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박용수가 저지른 범행이 워낙 엽기적이기도 했지만 검거 후 박용수가 너무도 태연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박용수는 ‘오히려 잘됐다. 잡히지 않았더라면 계속 살인·강간 등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말했죠. 박용수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간담이 서늘하더라고요. 살인전과가 없던 박용수가 불과 한 달여 사이에 무고한 두 생명을 서슴없이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범행에 무감각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더구나 범행 전 박용수는 소주를 한 병씩 마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일말의 가책은 있었던지 이성적인 판단이 무뎌지도록 술을 마신 거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시간’을 한 것에 대해서도 술을 마신 상태라 무섭거나 찜찜하거나 죄책감 같은 것들을 느낄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97년 경찰에 투신한 장승우 형사(38·경사)는 박 씨를 조사하면서 여느 피의자를 다룰 때보다 더욱 착잡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유는 박 씨가 10대 시절 한 번 어긋난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첫발을 잘 내딛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잖습니까. 교과서적인 얘기긴 하지만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첫걸음을 딛는 시기가 청소년기입니다. 그때 한 번 삐끗했다가 평생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숱하게 봤습니다. 물어보면 범행도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고 하더군요. 과연 무엇이 23세에 불과한 박용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살인마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은 해결했지만 끝내 범죄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한 청년을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더군요.”

이수향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