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용의자는 수감 중 ‘도대체 넌 누구냐’
이번에 인천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이병철 형사가 전하는 사건은 7년여 전 인천 일대를 들끓게 했던 자매살인사건에 대한 것이다. 수사 결과 범인은 자매 중 언니와 과거 애인관계였던 중년남성으로 밝혀졌는데 이 남성은 또 다른 살인사건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같은 경찰서 강력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이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한집에서 살던 자매가 동시에 살해됐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물론 수사팀까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매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또 다른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컸다. 자칫하면 범인이 용의선상에서 배제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수사팀 모두의 노력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잔혹한 살인범을 검거하게 돼 보람도 느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현장에서 발견한 명함 한 장이 용의자를 특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사건 해결의 단서는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 작은 단서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수사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한 잔악한 남성에 의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죽어갔을 젊은 자매와 또 다른 여성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선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한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피살된 여성들은 유인애 씨(가명·당시 21세)와 그녀의 여동생(당시 19세)이었다. 유 씨 자매는 각각 목과 가슴 부분이 10여 군데 이상 찔린 채 처참하게 죽어 있었는데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현장은 온통 피바다를 방불케 했다. 사체 상태로 추측컨대 발견 당시는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정도 지난 것으로 판단됐다. 특히 자매는 옷이 벗겨진 채 신체 일부가 테이프로 결박된 상태였으며 머리에는 스타킹까지 씌워져 있었다.”
집 안은 사건 당시의 급박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구석구석까지 온통 엉망이었다. 또 범인이 이곳저곳을 뒤진 흔적도 역력했다. 수사팀을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것은 조사결과 자매에게서 성폭행 흔적까지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 이 사건은 젊은 여성들만 사는 집에 침입해 저지른 전형적인 강도강간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이 사건은 단순 강간살인이나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일단 범행 수법이 너무 잔혹했다. 단순히 금품을 노렸거나 강간이 목적이었다면 두 사람을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살해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또 집 안은 어지럽혀진 상태였지만 특별히 사라진 금품은 없었다. 금품이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피해자들을 결박한 것, 집안을 어질러놓은 것, 성폭행까지 한 것은 단순 강도강간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한 범인의 속임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유 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상황이었고 그녀의 여동생은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범인을 특징지을 만한 작은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수사팀은 즉시 유 씨 자매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사건 당일의 목격자를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자매가 살고 있던 아파트의 이웃 주민으로부터 ‘범행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어떤 남자가 이들 자매 집에서 커튼을 치는 것을 봤다’는 증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유 씨 자매의 주변 인물 중에는 살인을 저지를 만큼 자매에게 원한을 품고 있거나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서는 항상 현장에서 나오는 법. 유 씨의 집에서 한 장의 명함이 발견됨으로써 수사는 이내 활기를 띠게 된다.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유 씨의 집에서 인천 중부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는 형사의 명함이 발견됐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일반 사람이 형사 명함을 갖고 있다는 점이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해당 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랬더니 그 형사가 자매 중 언니인 유인애 씨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형사의 말에 따르면 유 씨와 관련된 사건을 처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유 씨를 수년간 따라다니며 수시로 돈을 뜯어내고 폭행하며 괴롭히던 중년남자를 몇 달 전 구속시킨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유 씨를 오랫동안 지독하게 괴롭혀왔다는 남자는 오용호(가명·당시 40세)라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당시 사건으로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오 씨는 여전히 모 구치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 씨가 유 씨를 집요하게 괴롭혀왔다는 정황상으로 볼 때 그는 충분히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전산자료상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나온 오 씨가 범행을 저질렀을 리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나 오류가 생길 수 있는 법. 당시 수사과정 또한 그랬다고 한다.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오용호는 (전산자료상) 구속돼 있는 상태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오 씨 사진이나 한 장 확보해 놓을까 해서 그의 거주지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직원이 대뜸 ‘이 사람(오 씨) 잡으러 오셨냐’고 묻는 게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에도 오 씨가 찾아와서는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국고보조금을 내 통장으로 넣어달라’며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갔다는 거였다. 수감 중인 오 씨가 그럴 리 있겠나 싶어서 몇 번이나 되물었다. 심지어 사진까지 확인했는데 직원은 ‘틀림없다. 나 말고 다른 직원들도 봤다’고 하는 것이었다.”
전산자료상으로 구속 상태인 사람이 버젓이 돌아다니며 관할 동사무소에 와서 직원들을 상대로 난리를 치고 갔다는 말에 수사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팀은 즉시 추가 수사를 벌였고 그 결과 엄청난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오 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중 지병인 결핵으로 지방의 한 결핵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얼마 후 그곳의 간호사를 성폭행하고 도망을 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 그러나 결핵원 측에서 당시 이 사건에 대해 통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구치소 측에서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건지 전산자료상으로 오 씨는 여전히 구속 상태로 돼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사 초기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있던 오 씨는 다시 유 씨 자매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된다. 조사 결과 오 씨는 자매의 언니인 유 씨와 한때 애인관계로 지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혼인 오 씨는 특정한 직업도 고정수입도 없이 어머니와 같이 살던 상태였는데 절도·강간 등 전과가 무려 18범에 달하는 인물이었다.
수사팀은 잠적한 오 씨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 씨를 뒤쫓는 과정에서 유 씨 자매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 일어났던 또 한 건의 끔찍한 살인사건을 접하게 된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7월 27일 부천 원미구의 한 허름한 여인숙에서 한 여인이 처참한 사체로 발견됐다. 피살된 이는 고인숙 씨(가명·당시 37세)였는데 사체 상태가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특히 수사팀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범인의 엽기행각이었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후 고 여인의 은밀한 부위에 기다란 우산을 꽂아놓았는가 하면 심지어 엉덩이에도 여러 개의 옷핀을 꽂아 놓았다. 정말 기가 막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사팀은 고 여인 살인사건이 자매살인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돼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수상쩍은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유 씨 자매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올려놓은 오 씨가 고 씨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그 시각 부천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수사 결과 오 씨는 그날 부천의 한 PC방에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 씨가 살해된 날은 오 씨가 결핵원에서 간호사를 강간하고 도망친 지 나흘째 되던 날로 오 씨의 범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사팀은 여인숙 주인을 상대로 탐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사건 당일 피살된 고 씨와 함께 투숙했던 남성이 바로 오 씨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오 씨의 행방을 끈질기게 추적하던 수사팀은 마침내 며칠 후 천안의 한 PC방에서 오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오 씨는 면도칼을 소지하고 있어서 검거과정에서 형사들이 상당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오 씨는 조사과정에서 좀처럼 혐의를 인정하지 않아 적잖이 애를 먹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팀이 수집한 각종 증거들 앞에서 그는 결국 범행 일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오 씨는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오 씨는 유인애 씨가 일하던 업소에 손님으로 와서 한때 연인관계로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유인애 씨는 당시 오용호가 자신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주자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나중엔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나보더라. 하지만 오용호는 얼마 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정 직업이 없었던 오용호는 유 씨에게 온갖 협박을 해가며 돈을 뜯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러다 유 씨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급기야 주먹까지 휘둘렀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은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고 그간의 내막을 조사한 한 형사에 의해 오 씨는 1999년 4월 구속되기에 이른다. 이어지는 이 형사의 얘기.
“당시 오용호는 유 씨에게 판사 앞으로 석방탄원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금품 갈취 등 자신의 죄목으로 인정된 그간의 일들이 연인관계에서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며 결코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언해달라는 요구였던 것 같다. 하지만 유 씨는 오용호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 결과 오용호는 유 씨 때문에 실형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원한을 품게 된 것이었다. 특히 오용호는 결핵원에서 도망 나온 직후 유 씨를 찾아가서 생활비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유 씨는 그를 문전박대했고 이에 오용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결핵원을 탈출한 뒤 복수심에 들끓던 오 씨는 인천으로 올라온다. 한동안 PC방을 전전하며 여성들과 채팅을 하던 그는 부천으로 이동, 시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고인숙 씨를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심곡동의 한 여인숙에 함께 투숙했다가 고 씨를 목 졸라 살해하게 된다.
하지만 오 씨의 살인극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오 씨의 ‘표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옛 애인인 유인애 씨였다. 그녀가 탄원서를 써주지 않아 실형을 살았다는 생각에 극도의 복수심을 불태워오던 오 씨는 고 씨를 살해한 며칠 후 유 씨의 집으로 찾아간다. 유 씨를 성폭행하고 무참히 살해한 오 씨는 비명소리를 듣고 방에서 뛰쳐나온 유 씨의 동생까지 같은 방법으로 살해하고 만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무려 3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오 씨는 검거 후에도 이렇다 할 죄책감도 보이지 않은 채 추가 살인계획에 대해 담담히 언급해 형사들을 경악케 만들었다고 한다. 오 씨는 심지어 앞으로 범행을 행할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살생부’까지 만들어놓았을 정도로 사회를 향한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오 씨는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