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한 달’ 아귀 안 맞아
▲ 지난 11일 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전남 화순의 한 공동묘지. 연합뉴스 | ||
경찰이 “이 씨가 (살해된) 김 씨로부터 수차례 채무변제를 독촉받자 저지른 단독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음에도 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경찰의 수사 결과 하나씩 드러나는 이 씨의 행적 및 주변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사망한 탓에 사건을 둘러싼 의혹들이 완전히 풀릴지에 대해서는 경찰조차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호성이 내연의 여인에게 남긴 마지막 말처럼 그도 어쩔 수 없었던 또다른 진상이 숨어있는 것일까. 사건 이후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문들을 미스터리를 푸는 형식으로 접근해봤다.
과연 단독범행인가?
경찰은 일단 이번 사건을 이 씨의 단독범행으로 잠정결론을 내렸지만 공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경찰이 채취한 15개 지문 중 이 씨의 것으로 확인된 것은 한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제3자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또 아파트 CCTV에 찍힌 남자의 정체도 “이 씨인 것 같다”는 김 씨 가게 종업원의 진술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뿐만 아니라 김 씨의 살해추정일 사흘 전인 지난달 15일, 은행에서 현금 1억 7000만 원을 인출할 당시 차량 안에서 대기했던 인물이 누구인지도 미스터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이 씨가 김 씨에게 받은 1억 7000만 원 중 7000만 원의 행방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이에 경찰은 나머지 돈이 공범에게 범행의 대가로 건네졌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특히 이 씨가 당시 7건의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임에도 2년 동안이나 도피생활을 해왔던 점 등으로 볼 때 이 씨를 도와준 사람이 있으며 동일인물이 이 사건에도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또 이 씨가 한때 스크린경마장 사업에 손을 댔던 점으로 보아 그 당시 알게 된 조직폭력배들의 개입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줄 가장 중요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는 내연녀 A 씨가 경찰에서 “이 씨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죽여놓고 자신에게 덮어씌운 것이라고 했다”고 진술한 점도 또 다른 연루자가 존재할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범행동기 정말 돈?
경찰은 이 씨가 돈을 노리고 저지른 사건이라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스크린 경마사업 등으로 이미 270억 원의 빚을 지고 평소 거액의 돈을 만져온 이 씨가 자신에게는 사실상 ‘푼돈’에 불과한 1억 7000만 원이라는 돈 때문에 4명을 살해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이 씨가 자살 직전까지 동행한 A 여인은 경찰에 “이 씨의 채권채무 관계가 복잡하기는 했지만 생활이 궁핍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진술, 경찰이 발표한 범행동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이 씨의 범행이 돈문제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김 씨로부터 돈을 받아놓고도 이 씨가 김 씨를 살해할 필요까지 있었느냐 하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히는 것도 사실이다.
▲ 해태의 잘나가던 4번타자였던 이호성. 무엇이 그를 살인자로 내몰았을까. | ||
단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어린 자녀들까지 살해했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주변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김 씨의 세 딸들은 이 씨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의지하는 김 씨의 딸들을 죽일 만한 극단의 동기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죽은 상황에서 이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밝혀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재 ‘아이들이 자살한 아버지의 죽음에 이 씨가 개입했을지 모른다며 의심하기 시작해서’ ‘어머니 김 씨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 ‘어머니와 싸우는 이 씨를 말리다가 우발적으로’ 라는 식의 다양한 추측성 루머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시 밖에 나가 있던 큰딸까지 유인해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으로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씨의 진짜 여인은
살해된 김 씨 모녀들은 이 씨를 믿고 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김 씨는 이 씨를 남편 혹은 곧 재혼할 사람으로 소개하고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녔으며 큰딸은 변을 당하기 전 친구에게 ‘새 아빠 될 아저씨와 가족여행을 떠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씨는 범행 직전까지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왔다. 경찰은 “이 씨는 김 씨 모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와중에도 상당히 복잡한 여자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애초부터 김 여인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 씨에게는 지난해 8월부터 만나오던 여인 A 씨(40)가 있었고, 이 씨는 숨진 김 씨와 부부 행세를 하는 등 가깝게 지내는 와중에도 일산에서 이 여인과 동거해 왔다. 또 A 씨는 이 씨가 도피하는 과정에도 수차례 만남을 가지며 자살 직전까지 호텔에 투숙하며 함께 있었던 인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씨는 피살자 김 씨의 1억 7000만 원 중 일부를 A 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 범행 있나 없나
일가족 4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 씨의 범행이 드러나면서 이 씨는 또 다른 추가범행 의혹도 받고 있다. 경찰은 살해된 김 씨 남편의 자살에 이 씨가 관여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 씨의 남편은 우울증으로 지난해 7월 용산구의 여관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씨는 남편이 자살하기 전부터 이 씨와 만나온 것으로 드러났으며 신용불량자인 이 씨에게 휴대전화를 개통해주고 남편 자살 후 같이 살 아파트를 보러다닐 만큼 가까운 관계였음이 확인된 바 있다. 경찰은 자살로 위장한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추가 수사를 실시할 계획이지만 진상이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또 이 씨는 2005년 실종된 동업자 조 아무개 씨 사건에도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조 씨는 이 씨를 만나러 나간 후 사라져 의문을 자아냈지만 수사결과 조 씨의 잠적으로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이번 창전동 일가족 살인사건을 계기로 조 씨 실종사건도 재수사를 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