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 보이는 옆집 아저씨가 무서워’
▲ 안양 초등생 피살 사건의 용의자 정 씨의 집. 피해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정 씨는 실종 어린이들의 집과 지척거리에 살고 있던 말 그대로 ‘평범한 아저씨’였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경찰에 검거된 범인은 정 아무개 씨(39). 정 씨가 피해 어린이들과 안면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예상대로’ 정 씨는 실종 어린이들과 지척거리에 살고 있던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다.
미처 피지도 못한 두 소녀가 끔찍한 사체로 발견되자 대한민국에 때 아닌 ‘이웃아저씨 경계령’이 떨어졌다. 최근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참 예쁘네요’라는 이웃 남자의 칭찬마저 소름이 끼친다” “슈퍼마켓 문구점 아저씨, 심지어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
“혼자 걷고 있는데 예뻐보이더라.”
지난해 3월 16일, 서귀포시 서홍동 집 앞에서 사라진 양지승 양을 살해한 송 아무개 씨(49)의 말에 국민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승 양과 지척에 살고 있던 ‘이웃 아저씨’ 송 씨는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전과 23범으로 그의 범행동기는 여아의 ‘성’이었다. 어린 여아를 유인해 성추행을 시도하던 송 씨는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 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유기하는 잔악함을 드러냈다.
여아를 상대로 한 엽기범죄의 대표적인 사건은 2001년 5월 발생한 일명 ‘송정동 여아토막살인사건’이다. 집 근처에서 실종된 김윤지 양(당시 5세)이 실종 9일 만에 토막난 사체로 발견된 것. 발견 당시 사체는 냉동 상태로 열여섯 토막이 나 등산배낭에 담겨 있었는데 국부를 포함한 골반부위만 없어 의문을 더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의 골반은 경기도 광주의 한 여관 화장실 변기에서 발견됐다.
당시 범인에 대한 경찰의 프로파일링은 다음과 같았다. “실종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30~40대 독거남. 한때 냉동물건을 취급한 적이 있으며 깔끔한 성격으로 집안 정돈이 잘 되어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성과 관련된 콤플렉스가 있다. 친구가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소아기호증이 있다.”
그리고 수사팀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범인은 김 양 집 근처 반지하 월세방에서 홀로 거주하던 ‘이웃 아저씨’ 최 아무개 씨(40)였다. 수사팀의 예상대로 그는 한때 생선장사를 한 적이 있었으며 그의 방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또 그는 육체적 성적 콤플렉스와 소아기호증이 있는 인물이었다.
당시 최 씨는 “장애인이라 취직도 안되고 나이도 먹고 생활이 갈수록 어려워 돈을 요구하려고 아이를 데려왔으나 아이가 계속 울어 살해했다”며 “사체를 감추기 위해 토막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그러나 경찰 조사결과 최 씨는 아이를 납치한 후 한 번도 집에 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건 사실이 없었다. 특히 최 씨는 “절대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감식결과 아이의 사체에서는 엽기적인 성폭행 흔적까지 발견됐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한인선 경위는 “플라스틱비닐 공장에 다니며 혼자 사는 노총각이 그렇게 무서운 인물이라는 것을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순박해 보이는 얼굴로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 때까지 범행을 부인하던 파렴치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사람 탈을 쓴 악마’를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한 경위는 “여아를 상대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범행을 저지른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가 미처 성숙하지 못한 여아의 성을 탐하는 소아성기호증 기질을 보인 인물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당시 범인을 검거하게 된 것 역시 처음부터 성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범행 가능성이 다분한 ‘요주의 인물’에 대한 철저한 탐문수사를 실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지난 18일 경기도 안산의 하천에서 해병전우회원들이 피살된 어린이의 사체를 찾고 있다. 몸집이 작고 연약한 아동은 아동성범죄자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례가 많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번 사건의 범인 정 씨도 마찬가지였다. “귀여워서 쓰다듬었는데 저항하는 바람에…”가 정 씨가 사건 초기에 밝힌 살해 이유다. 하지만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귀여워 쓰다듬었다’는 말은 대다수 성폭력범에게 자주 나타나는 표현”이라며 “왜곡된 성욕구를 숨기고 성추행을 미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 씨는 성폭행 부분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하며 여러 번 진술을 번복하다가 지난 22일 “본드를 흡입해 몽롱한 상태에서 (두 어린이가 성추행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릴까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정 씨는 사건 당일인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이라 외로워서 술을 마시고 본드를 흡입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오후 6시께 담배를 사러 갔다가 혜진·예슬 양을 만났다”고 진술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정 씨는 두 어린이의 어깨를 잡았다가 반항해 조용히 하라고 위협한 뒤 집으로 데려가 환각상태에서 두 어린이의 옷을 벗겨 몸을 만지는 등 1시간가량 추행했고, 두 어린이가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릴까봐 입과 코를 막아 살해했다고 범행과정을 털어놨다는 것.
그렇다면 아동을 상대로 한 잔혹범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그간 아동을 상대로 벌어진 강력사건들을 토대로 프로파일러들이 분석한 ‘요주의 인물’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특정 기술 없이 일용직에 종사하는 30~40대 독거남. 부모의 이혼과 재혼 등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람. 성적 신체적 콤플렉스가 있음.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이웃들과 융화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조건에 상당히 부합되는 인물이 위험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남성은 성숙하지 못한 여아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아를 보는 순간부터 범행은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한 신경정신과 관계자는 “이들은 정상적인 이성관계나 혼인생활을 꾸리지 못한 인물이거나 그로 인해 만족되지 않거나 해소할 수 없는 욕구를 여아에게서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성장과정에서 겪어온 성적 정신적 충격이나 성인여성으로부터 당한 성적 모멸감, 성적 능력과 관련된 열등감 등이 비정상적인 관계를 포기하고 ‘만만한’ 여아를 탐색하게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아동 성범죄자의 상당수는 성인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이 본인의 무능력 등에 의해 좌절됐을 때 범행 대상을 아동으로 옮기는 경향이 있다”며 “정 씨 역시 이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하나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드러나고 있는 정 씨의 범죄 성향이다. 정 씨가 예슬 혜진 양 외에도 50대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확인됨에 따라 정 씨는 성인 여성과 여아를 가리지 않고 범행을 일삼는 ‘비행 교차’(크로스오버·cross-over) 범죄자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