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악마는 ‘애들’이었다
“그 세무서 다닌다던 청년말인가?”
“강도가 들었대. 형은 살고 동생만 죽었다나봐.”
지난 4월 17일 새벽 1시경.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XX 원룸건물 앞에는 노란 폴리스라인이 설치됐다. 늦은 밤 갑작스런 경찰차와 구급대의 출현에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잠시 후 한 젊은 청년이 실려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오열하며 따르는 또 한 명의 젊은 남자. 이내 사태를 파악한 동네 주민들은 손으로 입을 막거나 못 볼 것을 본 듯 고개를 돌렸다. 동생을 잃은 남자의 절규는 온 동네 구석구석을 찌를 만큼 처절했다.
살인사건이었다. 살해된 사람은 원룸건물 1층에 세들어 살고 있던 김재석 씨(가명·31)였고 뒤를 따르는 이는 그의 형이었다. 자고 있다가 집으로 침입한 괴한들에 저항하다 동생은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고 형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 원룸을 침입한 괴한들은 누구일까. 수사 결과 범인들은 놀랍게도 10대 청소년들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성장기 때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이제부터 광주서부경찰서 이형규 팀장(강력5팀)이 전하는 ‘광천동 원룸 강도살인사건’ 속으로 들어가보자.
신고한 사람은 살해된 김 씨의 형 김태석 씨(가명·35)이었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이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다급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 씨의 형은 우선 119로 강도신고를 했다고 한다. 112를 통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1시경이었다. 출동해보니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동생은 흉기에 가슴 부위를 찔려 숨져 있었고 형 역시 범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온몸이 성치 않았다. 집안 집기들이 온통 흐트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형제가 반항을 했으며 범인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였음이 분명했다.”
살아남은 형에 따르면 범인들이 집안에 침입한 것은 이날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바닥에서 자고 있던 그는 베란다 문을 통해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집안에 침입한 낯선 사람들을 발견한 그는 ‘누구냐!’고 소리친 뒤 서랍장을 밀치며 대항했다. 이 과정에서 형은 범인이 휘두른 주먹을 맞고 쓰러졌으며 이 소리를 들은 동생이 잠에서 깨어났다. 갑작스런 상황에 동생은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고 범인 중 한 명이 흉기를 꺼내 동생의 가슴부위를 찔렀다. 동생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순식간에 집안은 피바다로 변했다. 하지만 범인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쓰러진 김 씨 형제의 얼굴과 머리를 발로 차는 등 폭행을 수차례 가한 뒤 집안에 있는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늦은 밤 외진 곳에 위치한 원룸에서 발생한 사건인지라 목격자도 없었다. 또 사건이 발생한 원룸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수사팀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탐문수사밖에 없었다. 다음은 이 팀장의 얘기.
“너무도 급박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저항하기 바빴던 형은 범인들의 인상착의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형한테서 들은 얘기는 범인들이 성인 남자인 형제를 단숨에 제압할 정도로 체격이 좋았으며 서너 명이었다는 것, 나이가 많지 않은 것 같았다는 점, 그리고 그들에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점 등이었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한 오피스텔이 외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한밤중에 형제를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난 범인들은 누구일까. 단순 강도일까. 그러나 그렇게 단정짓기엔 피해액이 미미했다. 조사 결과 범인들이 가져간 금품은 현금 10만여 원과 제화 상품권, 양담배 여섯 갑 등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혹시 원한에 의한 계획된 살인일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희박했다. 두 형제는 성실해 주변의 평판이 무척 좋았으며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수사팀은 주변 거주자들을 상대로 과거에 이 부근에서 살다가 이사간 사람과 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 행방이 묘연한 사람, 어떤 목적으로든 이 일대를 자주 찾아왔던 사람 등을 탐문했다.
수사팀은 두 형제의 주변인물들을 조사하는 한편 그 지역 일대의 동일수법 전과자 2500여 명에 대해서도 일제조사에 들어갔다. 사건발생 전후 광천동 및 인접지역에서 발신된 약 6000건에 달하는 휴대전화도 동시에 체크했다. 또 혼자 잠을 자는 여성을 노린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관내 성범죄 전과자 50여 명을 상대로 개별 확인작업을 실시했다. 뿐만 아니라 범인들에게서 심한 술냄새가 났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광천동 주변 편의점 및 슈퍼마켓 등을 일일이 방문해 사건 당일 술을 사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을 특징지을 만한 단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 팀장의 얘기.
“탐문수사를 계속하던 중 수사팀은 이곳에서 살다가 지난해 여름 다른 곳으로 이사 간 A 군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A 군은 평소 행동이 불량스러워 동네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이사 간 후에도 가끔씩 광천동에 나타나곤 했다는 것이었다. 또 A 군이 이 동네에 살고 있을 당시 그의 자취방에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는데 하나같이 행실이 매우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들이었다고 했다. A 군과 그의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소위 ‘불량아’들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들의 주변 인물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계속 벌이던 수사팀은 이들이 돈이 없어 평소 안주도 없이 ‘깡술’을 마시곤 했으며 술을 마시면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수사팀은 이들이 몰려다니는 지역, 생활패턴, 이전의 범행 수법 등을 토대로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징짓고 이들의 소재파악에 총력전을 폈으나 이들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이들의 행방이 묘연했던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음은 이 팀장의 얘기.
“편부슬하에서 사랑을 못받고 자란 박민혁은 방황하다 올 4월 중순경 가출해 부산과 목포, 안양 등을 떠돌아 다니다 특수절도 혐의로 검거돼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명수 등과 함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시기를 따져보니 이들이 광천동 사건을 저지른 후 또 다른 범행을 하다가 검거된 것일 수도 있었다. 이에 수사팀은 구치소를 찾아가 박민혁 등 3명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은 펄쩍 뛰며 범행을 부인했다. ‘광천동이라는 동네도 모른다. 그곳에 간 사실 자체가 없다’고 우겼다. 하지만 수사팀은 A 군이 광천동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 박민혁 일행이 광천동에 자주 놀러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던 중 수사팀은 이들 일행과 같은 혐의로 검거됐다가 풀려난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어지는 이 팀장의 얘기.
“일명 ‘퍽치기’를 해서 검거된 사람은 박민혁, 이명수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하지만 구치소에 수감 중인 사람은 3명뿐이었다. 확인해보니 일당 중 한 명인 최성재(가명·15)는 나이가 어린 데다가 재범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풀려나 있었다. 최성재 역시 편부슬하에서 자랐고 가정 및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수시로 가출, 박민혁 등과 어울려 다니던 아이였다. 같이 어울려 다니던 무리들이 구속되고 혼자 풀려난 최성재는 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는 충남 ○○군에 갔다가 하루 만에 다시 가출, 인천과 안산 등지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수사팀은 경기도 안양의 한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최 군을 검거, 추궁한 끝에 결국 그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나머지 3명에게 최 군이 검거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이들 역시 순순히 범행사실을 자백했다. 수사팀은 피해자의 집에서 훔친 지갑 등을 증거로 확보하는 동시에 최 군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6일 만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난 사건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가정과 학교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최성재 군은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해 종합버스터미널 등을 무대로 앵벌이를 하며 찜질방과 PC방 등을 전전하던 중 비슷한 처지에 있던 박민혁, 이명수 군 등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앵벌이 수입으로는 생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들은 위험한 범행을 공모하게 된다. 이들은 “맨 정신으로는 남의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니 술을 마시고 하자”고 뜻을 모은 뒤 한 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공원에서 술을 마시며 범행장소 및 각자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범행장소는 박 군의 제안으로 결정됐다. ‘전에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광천동에 살았는데 그 부근은 인적이 드물어 괜찮을 것 같다’는 박민혁의 말에 나머지 애들도 동의한 것. 모의가 끝난 뒤 이들은 그 일대를 돌아다니다 마침 불이 꺼져 있는 집을 보고 베란다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 빈집일 거라고 생각하고 별 경계없이 들어갔는데 성인 남성 두 명이 자고 있었다.
이들도 적잖이 놀랐지만 이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뜬 형 김태석 씨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저항하는 김 씨를 폭행해 쓰러뜨렸다. 그런데 그 소리에 놀라 동생 김재석 씨가 또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저항하자 당황한 최성재 군이 평소 소지하고 다니던 ‘공업용 커터’ 칼로 김재석 씨의 가슴을 찔러 살해하고 만 것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