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어린 양에 ‘성노예’ 목줄 채워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꼬박 이틀간 경기도 안양과 강원도 원주를 샅샅이 돌아다닌 끝에 피의자를 검거해온 탓도 있었지만 조사가 끝난 뒤에도 뭔가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의자의 죄질이 너무도 파렴치했던 것이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일회용 주사기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장부들. 피의자의 인면수심 행각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증거물이었다. 여경들만으로 이루어진 수사팀원들의 입에서 때때로 나지막한 한숨만 흘러나올 뿐 사무실에는 씁쓸한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수사대 실무를 이끌고 있는 김남희 경감이 천천히 입을 뗐다. “자, 일단 오늘은 눈 좀 붙입시다. 범인은 잡았지만 내일부터 더 바빠질 것 같네요. 장부에 적힌 200여 명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피해자가 10대 소녀들인 만큼 앞으로 우리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많아요.”
이번에 광주지방경찰청 여경기동수사대 김남희 경감이 전하는 사건은 미처 성숙치 못한 10대 소녀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하고 이들에게 마약을 투약한 후 강제로 성매매를 시킨 진짜 ‘나쁜 남자’에 대한 얘기다.
우선 수사 착수 배경에 대한 김남희 경감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난 5월 30일 수사팀 앞으로 한 건의 다급한 첩보가 들어왔다. 제보자는 우리 대원과 알고 지내는 한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알고 있는 동생들에 대한 얘기였다. 내용인즉 어느 나쁜 남자에게 붙들려 강제로 성매매를 해왔던 10대 소녀 두 명이 간신히 도망쳐서 광주에 와있다는 것이었다.”
여경기동수사대는 비상이 걸렸다. 가장 시급한 것은 탈출한 소녀들의 신변안전이었다. 지금쯤 피의자가 달아난 소녀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 수많은 성매매 사건을 다뤄본 수사팀의 경험상 성매매 알선 조직이 도망친 여성들을 찾아내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조금만 지체했다가는 도망친 소녀들이 언제 다시 잡혀서 끌려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럴 경우 그녀들이 당해야 할 고통은 불 보듯 뻔했다. 수사팀은 비밀리에 즉시 문제의 소녀들과 접촉했고 여경기동수사대 사무실로 데려왔다. 이들은 김다은 양(가명·13)과 이민정 양(가명·16)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자퇴한 가출소녀들이었다. 짙은 화장에 가려 있었지만 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아직 어린 외모였다. 다음은 김 경감의 얘기.
“일단 피해자들이 너무 어리다는 것에 놀랐다. 다은이와 민정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딱 보기에도 심신이 만신창이 상태였다고나 할까. 합숙생활을 하면서 남자로부터 24시간 철통같은 감시를 받아온 이들은 남자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원주에서 도망친 것이다. 소지품이고 뭐고 하나 챙길 틈도 없이 맨몸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광주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고 하더라. 원주에서 광주까지 오는 동안에도 행여나 남자가 쫓아올까봐 피가 말랐다고 한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이들은 급기야 아는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다은이와 민정이는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 애들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우리는 애들을 우리 사무실에서 재웠다.”
두 소녀가 깨어난 시간은 다음날 오후 4시경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달픈 생활을 해왔던지 그렇게 장시간 숙면을 취하고서도 이들의 말과 행동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소녀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수사팀은 아이들을 상대로 진술 녹화를 시작했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참을 망설이던 김 양 등은 수사팀의 설득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음은 김 경감의 얘기.
“이들의 증언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10대 소녀들에게 강제로 성매매 시켜왔다는 남자는 김두영(가명·36)이라는 인물이었다. 소녀들은 김 씨에게 감금당한 상태로 성매매를 해왔는데 김 씨에게도 수십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김 씨는 경기도 안양과 강원도 원주 등 3곳의 모텔에 아예 ‘아지트’를 마련해놓고 다은이와 민정이 또래의 소녀들에게 성매매를 시켰는데 모텔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려오는 등 한치의 빈틈도 없는 밀착감시를 해왔다고 하더라. 도망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셈이다. 아이들은 진술 도중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몸서리를 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10대 소녀들을 이용해 ‘성욕’과 ‘물욕’을 채워왔던 남자의 파렴치한 행각은 그것이 모두가 아니었다. 소녀들의 입에서는 차마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어지는 김 경감의 얘기.
수사팀은 즉시 김 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정황상 김 씨는 여전히 소녀들을 이용한 성매매를 하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수사팀은 김 씨의 휴대폰 통화내역을 확인하고 위치를 추적하는 통신 수사를 병행했다. 동시에 김 씨가 주무대로 활동하는 지역 일대를 오가며 잠복을 실시하는 등 다각적으로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그러기를 수일. 김 씨가 원주와 안양 군포를 오가는 정황이 포착됐고 안양 일대 모텔 밀집지역을 순찰하던 수사팀의 눈에 수상한 차량이 발견됐다. 모텔에서 나오는 흰색 차량의 번호판이 강원도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량 운전자는 수사팀이 그토록 찾아다닌 김두영이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타고 있는 여성은 딱 보기에도 어린 10대 소녀였다.
경찰이 덮치자 김 씨는 완강히 저항하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정적으로 김 씨의 차량에는 방금 전 성매매를 마치고 나온 앳된 소녀가 함께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씨를 체포한 수사팀은 방금 전에 성매매가 이뤄진 모텔 방을 수색했고 화장실 천정에서 다량의 필로폰 주사기와 성매매 고객의 명단 일지 등이 적힌 장부를 증거물로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녀들은 어떻게 김 씨의 마수에 걸려들게 된 것일까. 조사결과 드러난 사실은 이렇다. 마약사범으로 2007년 10월 출소한 김 씨는 출소 후 특별한 직업 없이 성매매 알선을 하며 생활을 꾸려오고 있었다. 다음은 김 경감의 설명.
“그러던 어느날 김두영은 자신이 과거에 성매매를 시켰던 박지희(가명·20)를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박지희 역시 가출해 특정한 직업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던 처지였다. 뭔가 돈 되는 일이 없을까 궁리하던 이들은 청소년을 이용해 전문적으로 성매매 알선을 하기로 공모하게 된다. 박지희는 인터넷 채팅으로 소녀들과 성매수남을 모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로 ID를 만든 박 양은 인터넷 상에서 성매매를 시킬 만한 소녀들을 찾아 나섰다. 박 양이 접근한 이들은 주로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뒤 취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10대 소녀들이었다. 박 양은 이들에게 ‘돈 필요하지 않냐. 성매매를 하면 쉽고 간단히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인했다. 성매매를 90번 하면 400만 원을 주겠다는 ‘특별조건’을 내걸고 돈이 급한 소녀들을 수월하게 모집했다. 나이가 어려서 취직은 할 수 없고 돈은 필요한 소녀들을 그럴싸한 조건으로 속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인한 소녀들은 즉시 김 씨에게 넘겨졌다. 김 씨는 원주와 안양에 소재한 모텔 3곳에 아예 방을 지정해놓고 고정적인 성매매 장소로 이용했다. 소녀들은 김 씨의 감시 아래 집단 합숙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해야 하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했다. 김 씨 일당에게 속아 살인적인 성매매에 강제로 투입된 소녀들은 확인된 숫자만 총 4명.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망가졌다. 게다가 김 씨의 단골 고객들과 성관계를 할 때마다 강제로 투약되는 필로폰은 소녀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들에게 약속된 돈은 지급되지 않았다. 김 씨가 약 7개월에 걸쳐 성매수남으로부터 1회에 10만~20만 원의 화대를 받고 벌어들인 돈은 무려 3000만 원에 달했지만 정작 소녀들이 받은 돈은 10원 한푼 없었다는 게 김 경감의 말이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김 씨 등은 현재 법의 엄격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