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발 ‘엑소더스’ 전세난민 어디로 갈까나
강동구를 비롯한 강남4구의 재건축 이주 수요로 인근 지역의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동남권에 위치한 강동구. 연초 들어 이 지역은 전국 시·군·구에서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이 됐다. 한국감정원 시세 조사에 따르면 강동구는 1월에만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이 1.62%에 달했다.
1월 전국 평균 전세가격 변동률 0.37%, 서울 0.40%와 비교해 보면 무서울 정도다. 지난해 8월부터 6개월간을 비교해도 강동구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은 5.47%로 같은 기간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상승률 2.38%의 두 배가 넘는다. 강동구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이 지난 연말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오는 3월부터 입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강동구에서는 약 5670가구가 재건축으로 인한 이주를 시작한다. 고덕주공 4단지(410가구)와 2단지(2600가구), 명일동 삼익1차(1560가구)는 이주 시기가 확정됐고, 고덕주공 3단지 등도 올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하반기 이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해 12월 이주를 시작한 고덕주공 4단지는 3월 20일까지 입주민들이 모두 집을 비워야 한다. 삼익1차도 2월 말부터 7월 말까지 5개월간 이주가 진행된다. 고덕주공 2단지도 3월 2일 이주를 시작해 10월 2일까지 7개월간 입주민들이 새 집을 얻어 옮겨야 한다.
이들이 인근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다보니 물량이 부족해 전셋값이 급상승하고 있다. 인근 명일동 삼익그린2차 전용면적 99㎡짜리 아파트는 전셋값이 2월 들어 3000만 원 올라 3억 4000만~3억 80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강동구 암사동 롯데캐슬퍼스트 전용 84㎡형도 전셋값이 지난해 말 4억 원대에서 이달 5억 원으로 상승했다. 상일동 고덕주공 5·6·7단지도 연초부터 최근까지 최고 2000만 원까지 뛰었고, 강일동 리버파크 4단지 전용 84㎡형도 3000만~5000만 원까지 올랐다.
고덕동 K 공인 관계자는 “고덕주공 4단지를 시작으로 올해 고덕 3단지까지 이주가 진행되면 1년 내내 이사를 하기 때문에 전셋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며 “아파트뿐 아니라 주변 단독주택이나 연립도 물건이 동이 날 지경”이라고 전했다.
이는 강동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강남4구에서는 아파트 1만 2732가구가 재건축사업으로 입주민들이 이사를 가야 한다. 강남구가 4060가구, 서초구 2602가구, 송파구 400가구가 예정돼 있다. 내년에도 강남4구에선 약 9000가구가 추가로 이주한다. 하지만 올해 새로 입주하는 주택물량은 1만 1000가구로 없어지는 멸실주택보다 적다.
강남4구 전셋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오름폭이 큰 것은 이처럼 재건축 영향이다. 문제는 재건축으로 인근 주택 전셋값이 급등해 임차인들이 강남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도권 외곽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강남권 재건축 사업 추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임차인들은 대부분 서민층이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고 오래돼 낡은 것들이어서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싼 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건축 사업으로 이사를 하지만 인근 전셋집뿐 아니라 월셋집도 너무 비싸 그 지역에 정착이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1월 현재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은 수도권 아파트가 68%, 서울이 66.1%다. 하지만 강남4구 재건축 이주단지 평균 전세가율은 약 30%로 평균치의 절반에도 안 된다. 개포주공 4단지의 경우 전용면적 43㎡짜리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6억 4000만 원이지만 전세가는 9250만 원으로 1억 원이 채 안 된다. 서초 우성2차 128㎡도 매매가격은 11억 2000만 원이지만 전셋값은 3억 7500만 원 정도다.
이미 강남권 임차인들의 수도권 외곽 이주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강남권 인근인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 주택 거래량이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평균 전세 거래량은 32% 늘었지만, 성남시와 하남시는 평균 60% 정도 급증했다. 1월 거래량도 비슷한 수준이다. 강남권 재건축 이주에 따른 전셋값 급등으로 그 지역에 재정착하지 못한 임차인들이 수도권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강남권 전세난민들의 이동은 올해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감정원 박기석 부동산연구개발실장은 “1980년대 강남개발로 집중 입주한 강남권 아파트 단지들이 올해 재건축으로 대거 이주한다”며 “강남4구 전세 이주 수요 중 강남과 서초 등 약 5000가구는 인근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로 유입되겠지만, 나머지는 주변 전·월셋값이 너무 올라 같은 지역에 머물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도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강남4구 재건축 임차인은 다시 재진입을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수도권 외곽에 임대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경기도·인천시와 면밀히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중 일부는 그나마 다른 지역에 매매로 이동하고 있다. 전셋값 부담이 커지자 이를 견디지 못한 수요자들이 하나둘 월세로 돌아서고 있지만, 주거비 부담에 최근에는 아예 집을 사버리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 올 1월 주택매매 거래량(7만 9320건)이 2006년 주택거래량 집계를 시작한 이후 1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집주인들이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전세물량 부족에 따른 전셋값 급등 현상은 앞으로도 막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매매수요의 세금부담이나 월세 수요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중장기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기석 실장은 “단기적으로는 인근 연립·다세대 주택의 공실 및 시세정보 제공을 실시간으로 할 필요가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임차인 특성에 맞는 다양한 주택공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