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검사 통해 발견했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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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문제의 박스를 국내로 들여온 당사자는 필로폰을 적발하게 된 과정이 당국의 발표와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아니었다면 마약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허술한 통관시스템’을 고발, 적잖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속초와 중국 훈춘을 선박으로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는 A 씨는 지난해 7월 25일 평소 거래하는 조선족으로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한테 택배로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 개의 실리콘 박스를 건네받았다. 그후 A 씨는 밀봉된 박스를 동춘호 전용 컨테이너에 싣고 한국 속초항으로 왔고 박스는 세관에서 1차 기탁화물 엑스레이 투시기를 거쳐 A 씨에게 건네졌다.
A 씨는 같은 주소지(동일 수취인)로 배달될 똑같은 박스 두 개를 동료와 하나씩 나눠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A 씨의 동료는 아무 제지 없이 검역 및 검색대를 통과했고 실리콘 박스는 곧바로 세관 밖에 있는 택배회사에 맡겨졌다. A 씨도 자기가 맡은 나머지 한 개를 들고 검색대에 섰다. 그런데 A 씨는 박스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외관상 실리콘박스는 모양이 동일해야 되는데 들쑥날쑥한 데다 실리콘 찌꺼기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A 씨는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세관직원에게 엑스레이를 2차, 3차로 더 돌려보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세관 직원은 판독 결과 아무 문제없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세관직원은 실리콘이 약간 굳은 것 같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밀폐돼 있어야 할 공산품이 굳었다면 누가 미리 개봉했거나 손을 댔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한 A 씨는 박스를 완전히 해체한 후 낱개의 작은 박스들에 대해 네 번째 엑스레이 검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세관에선 “문제없으니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A 씨는 ‘박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거듭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담당자는 ‘정 그러면 샘플 두 개만 두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샘플 중에서 필로폰이 발견됐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세관 측은 나머지도 A 씨에게 물어서 회수했고 곧 바로 실리콘 박스 전체를 절단해 검사했다. 그 결과 전체 24개의 작은 박스 중 7개에서 무려 416그램의 필로폰이 발견됐다. 이는 시가 13억 원이 넘는 것으로 1만 3000명에게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A 씨는 마약밀수 운반 혐의자로 긴급체포돼 조사를 받았으나 그날 석방된다. 세관과 검찰은 박스에 기재된 주소지 등을 토대로 긴급수사에 착수, 중간 유통책과 마약상 등 일당 3명을 검거하는 공을 세운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A 씨는 “세관 측에서 두겹의 비닐로 포장돼 실리콘박스에 담겨있던 필로폰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그대로 반입시키는 대형사고를 저지를 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 박스는 자체에서 나는 강한 식초냄새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마약견조차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당시 네 차례에 걸친 재조사 요청에 대해 세관 측에서는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응했고 결국 직접 뜯어보고 나서야 필로폰을 발견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요청해서 뜯어보지 않았더라면 필로폰은 고스란히 국내로 반입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 씨는 이와 같은 필로폰 적발과정을 알리고 ‘포상금 지급’과 관련, 관세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관세청에서는 “A 씨가 엑스레이 검색을 요청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1차 검색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돼 해당 물품에 대한 조치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고 밝히고, A 씨에게 “문제없다. 그냥 가져가라”고 말한 것도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해 보안 유지 차원에서 조치한 이른바 ‘통제배달기법’ 때문에 그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 씨는 “세관 측의 말대로 애초부터 필로폰 반출을 의심했다면 그 자리에서 해당 물품을 조사하고 자신과 동료를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A 씨에 따르면 필로폰이 발견된 후 세관 측은 “박스가 이거 한 개뿐이냐?”고 물었고 이에 A 씨는 “같이 묶여있던 박스 한 개는 2시간 전에 동료가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관세청 관계자들은 당황하며 “누가, 어디로 가져갔느냐?”고 물었고 A 씨는 “택배회사로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세관 측의 주장대로 통제배달기법 때문에 감추고 있었다면 그 박스가 어디로 갔는지도 몰랐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A 씨의 주장이다. A 씨는 “그날 상황을 지켜본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특히 내 박스에서 필로폰이 발견되고 나서 이미 반출된 박스를 찾기 위해 뒤늦게 허둥지둥하던 모습까지 다들 지켜봤는데 실수를 인정하기는커녕 변명만 늘어놓는 관세청의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불쾌해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