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차버린 대가 피로 갚아주마”
▲ 동성애를 다룬 영화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 | ||
1993년 10월 2일 새벽 3시경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여관 3층에서 느닷없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조금 전 친구 5명과 함께 이 여관에 투숙했던 A 군(20)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후 친구들과 여관에 잠을 자러 왔던 A 군은 모자라는 베개를 찾아 빈방을 기웃거리던 참이었다. 비명을 듣고 놀란 친구들과 여관 주인이 달려왔을 때 A 군은 3층 복도에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A 군이 가리키는 방의 문을 열어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방 안에는 한 중년 남자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15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동성애자 치정살인사건이다. 특히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선 생소했던 시절이라 이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큰 충격을 안겨줬다는 게 김 연구관의 얘기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출동했고 서부경찰서 형사과장 등이 포함된 27명의 수사전담반이 편성됐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현장 상황이나 사체 상태로 보아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피살자의 신원확인이었다. 십자지문을 채취해서 감정을 의뢰한 결과, 피살자는 경기도 고양시 XX동에 사는 박봉수 씨(가명·54)로 밝혀졌다. 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당시 박 씨는 완전 나체 상태였는데 심한 가격을 당해 안면과 두부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사체 옆에는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피묻은 돌멩이 한 개가 있었다.”
국과수에서 부검을 실시한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드러났다. 사체 상태로 보아 누군가 돌멩이로 박 씨의 얼굴을 마구 때리고 목을 조른 것이 분명했다. 수사팀은 일차적으로 사건 당일 같은 여관에 투숙했던 사람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늦은 밤 허름한 여관방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수사결과 박 씨가 평소 차고 다니던 40돈짜리 금목걸이와 고급 시계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인 것일까.
하지만 범행이 여러 사람들이 묵는 숙박업소에서 일어났다는 점으로 볼 때 단순 강도사건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 금품을 목적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범행수법이 너무 잔인했다.
젊은 남자. 수사팀이 가장 우선적으로 주목한 용의자는 바로 사건 당일 새벽 박 씨와 함께 투숙했다는 젊은 남자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당시 여관 측에서 숙박계를 작성하지 않았던 탓에 박 씨와 함께 묵었던 사람의 신원이나 인적사항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여관 주인은 ‘박 씨가 사건 당일 새벽 2시경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한 명과 동반투숙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늦은 시간에 남자 두 명이 여관에 들어와서 방을 달라고 하니 여관 주인으로서는 조금 의아했던가보다. 더구나 얼핏보기에도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났다고 한다. 거의 아버지와 아들뻘이었는데 분위기상 부자지간은 아니고…. 오랫동안 숙박업소를 운영하면서 터득한 직감이랄까 하여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고 여관 주인은 말했다.”
함께 투숙했다가 홀연히 사라진 남자는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문제는 젊은 남자의 신원을 찾을 길이 막막하다는 점이었다.
수사팀은 우선 박 씨의 주변인물을 상대로 탐문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박 씨의 주변에는 이렇다하고 의심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또 아무리 탐문 수사를 진행해도 함께 투숙했다는 의문의 청년은 그림자도 잡히지 않았다.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서울지방청 강력계까지 수사지원에 나섰지만 수사는 좀처럼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수사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사건발생 열하루가 지난 10월 13일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수사팀원으로부터 첩보가 하나 들어왔다. 수차례 전과가 있는 김광용(가명·30)이란 남자가 40돈짜리 금목걸이를 남대문시장 노점상에게 120만 원을 받고 처분하고 그 노점상은 다시 그 목걸이를 중구 봉래동에 소재한 한 금은방 업주에게 152만 원을 받고 팔았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 첩보내용은 여관 살인사건과 무관해보였다. 하지만 수사팀은 40돈짜리 금목걸이에 주목했다. 피살된 박 씨가 평소 40돈짜리 금목걸이를 차고 다녔고 사건 이후 그 목걸이의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이었다. 수사팀은 장물알선과 장물취득 혐의로 김광용 등을 구속하고 김광용을 상대로 추궁을 시작했다.”
안 씨의 인적사항 등을 파악한 수사팀은 안 씨의 주소지 관할 경찰서와 공개 공조수사를 벌였다. 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지방경찰청 수사팀과 관할서 수사팀 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연고지 동선 수사를 진행하면서 수사팀 간에 중복이 생겨 검거 경쟁이 과열되기도 했던 것이다.
끈질긴 탐문 수사와 잠복을 통해 안 씨의 신병과 동선을 확보한 수사팀은 11월 8일 밤 10시경 서울 성북구 XX동에 있는 한 지인의 집에 은신해 있던 안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안 씨로부터 사건 당일 함께 여관에 투숙한 박 씨를 살해하고 현금 8만 원과 40돈짜리 금목걸이, 패물시계 등을 훔쳐간 사실 등을 자백받았다. 안 씨는 훔친 박 씨의 시계를 아버지에게 건네줬다고 했다. 수사팀은 안 씨의 아버지가 차고 있는 시계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사건 발생 38일 만이었다.
수사팀을 가장 궁금하게 만든 것은 범행 동기였다. 그리고 25세의 청년이 50대 중반의 박 씨와 여관에 투숙한 이유도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조사결과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 밝혀졌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박봉수 씨와 안재필은 한마디로 애인관계였다.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박 씨의 직업은 박수무당이었다. 서른 살쯤부터 신내림을 받고 무당생활을 해오던 박 씨는 역시 같은 일을 하는 여성과 결혼을 해서 당시 장성한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겉보기에 박 씨는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지만 그는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즉 게이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아이까지 낳고 20년 넘게 살아오고 있었지만 부부사이가 좋을리 없었다. 박 씨는 동성애 문제로 아내와 심한 갈등을 빚다 결국 10여 년 전부터 별거를 해오고 있었다.”
조사결과 박 씨는 동성애자 애인과 동거를 한 경력이 여러 번 있었다. 특히 80년대 중반경부터는 30대 동성 애인과 일산에 아파트를 얻어 동거생활을 해오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안 씨가 애인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사결과 안 씨의 범행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치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범행이 발생하기 약 한 달 전인 그해 9월 서울 중구에 소재한 한 허름한 극장에서 만났다. 동성애자들이 자주 찾는, 그들 사이에선 알려진 곳이었다.
그 후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소재한 동성애자 전문주점에 자주 출입하며 ‘사랑’을 키워오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급격히 빠져들었다. 30년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는 거침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10월 1일 종로의 한 술집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술을 마신 뒤 그날 밤 11시경 은평구에 소재한 여관에 투숙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처음 주점에서 만날 때부터 안재필은 박 씨가 값나가는 금목걸이 등 귀금속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을 보고 상당히 돈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꾸 만나다보니 박 씨의 금품에 욕심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재필의 범행목적은 금품이 다가 아니었다. 살해동기에는 치정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무렵 박 씨는 안재필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씨는 당시 오랫동안 사귄 애인과 동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박 씨에게 안 씨는 일종의 세컨드였던 셈이다. 박 씨가 절교선언을 하자 박 씨가 변심했다고 생각한 안재필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었다. 사건 당일 성관계를 가진 후 박 씨가 깊이 잠들자 안재필은 객실에서 나와 여관 출입구에 있는 대형 화분에서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들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에 빠져있는 박 씨의 얼굴을 돌멩이로 내리치고 목을 눌러 살해하고 만다.”
치정에 눈이 멀어 애인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안 씨는 ‘정말 죽일 생각은 없었다’며 뒤늦게 회한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진다. 질투와 배신감이 불러온 참극이었다. 실제로 안 씨의 모습은 이성 간에 발생하는 수많은 치정 사건 주인공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특히 검거된 후 안 씨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특별한 범행을 저지르는 게 아니고 우리가 일반인과 똑같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똑같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동성애자의 사랑도 이성애자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남녀 간에 느끼는 사랑과 질투, 증오와 배신의 감정 등은 동성끼리의 관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진술, 수사팀원들로 하여금 동성애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