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내연남도 마녀의 ‘도구’였다
“어, 저거 사람 아냐?”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물체는 분명 사람이었다. 술에 취해 야산에서 잠을 자다가 밤새 동사하는 노숙자들이 종종 있었기에 이 씨는 서둘러 가까이 갔다. 하지만 잠시 후 이 씨는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 사람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경찰청 김원배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약 30년 전 내연남과 공모해 남편을 청부살해한 ‘나쁜 아내’에 대한 얘기다.
신원조회 결과 피살된 남자는 부산시 진구 동평동에 사는 장길수 씨(가명·39)로 드러났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장 씨는 예리한 흉기로 흉부 등 10여 곳을 찔린 상태로 외진 계곡에 쳐 박혀 있었다. 경찰은 비탈진 산길에 혈흔이 낭자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 장 씨를 살해한 후 계곡으로 밀어뜨린 것으로 추정했다. 사체의 상태로 볼 때 장 씨가 사망한 지는 이미 5~7시간 정도가 지난 것으로 보였다.”
지난밤 장 씨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사팀은 우선 장 씨의 전날 행적을 훑기 시작했다.
○○화학공업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장 씨는 사건 전날인 2월 14일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 동료들에 따르면 이날 장 씨의 행동은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으며 이상한 낌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사건 당일이 장 씨의 월급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2월 16일 설날을 앞두고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상여금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장 씨는 유독 기분이 좋아보였다고 한다. 동료들은 퇴근 후인 7시경 장 씨와 함께 회사 인근의 한 식당에 들러 술을 마셨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만취될 만큼은 아니었다. 동료들은 장 씨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찌감치 술자리에서 일어섰다고 증언했다. 만류하는 동료들에게 장 씨는 “일찍 집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 씨가 식당을 나온 시각은 대략 8시경. 따라서 장 씨는 동료들과 헤어져 식당을 나와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피살된 것으로 추정됐다.
수사팀은 장 씨가 온몸이 난자당한 채 잔혹하게 살해됐다는 점을 감안, 원한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1남 2녀를 두고 있던 장 씨는 집에서는 성실한 가장이었고 오랜 기간 근무한 직장에서도 상당히 평판이 좋았다.
수사팀은 장 씨가 피살된 장소가 장 씨의 집에서 400여m 떨어진 곳인 데다가 사건 당일이 월급날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장 씨는 월급을 타서 귀가하던 길에 금품을 노린 강도에 의해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수사팀은 목격자를 찾는 동시에 장 씨의 주변인물과 인근 지역 우범자, 동일수법 전과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장 씨의 주변사람들을 상대로 탐문하던 수사팀은 제법 솔깃한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바로 장 씨의 부인 임순애 씨(가명·35)에 대한 얘기였다. 임 여인은 장 씨와 달리 평판이 무척 안 좋았다. 임 여인은 춤바람이 나서 바깥으로 나돌면서부터 가정에 소홀했는데, 특히 남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얘기였다. 당연히 부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주변사람들에 따르면 임 여인의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이들 부부는 잦은 불화를 겪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 임 여인에게서는 이렇다할 수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슬픔에 잠겨있는 젊은 미망인일 뿐이었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임 여인은 사건 발생 직후 누구보다 슬퍼했으며 통곡하다 심지어 실신까지 해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런 임 여인을 상대로 대놓고 조사를 진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으로서는 장 씨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 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었다. 수사팀은 임 여인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수년 전부터 이들 부부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점에 의문을 갖고 수사를 시작했다. 공장 공원이었던 임 여인은 공장 작업반장으로 있던 장 씨를 알게 됐고 두 사람은 연애 끝에 1960년대 중반 부부의 연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 셋을 낳은 이들 부부는 초기에는 여느 가정 부럽지 않게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임 여인이 춤바람이 난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임 여인이 사교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부사이는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재미삼아 사교춤을 배우던 임 여인은 수년 전부터 사교춤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수시로 카바레 출입을 하게 됐다. 임 여인은 나아가 아예 비밀 댄스홀까지 차려놓고 생활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편 장 씨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로 인해 부부는 자주 다퉜다고 했다.”
“행상을 하는 김 씨와 임 여인은 10여 개월 동안 서로의 배우자 몰래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슬아슬한 불륜관계를 이어오던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임 여인이 김 씨에게 사업자금조로 200만 원을 빌려줬으나 김 씨가 돈을 갚지 않은 채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화가 난 임 여인은 김 씨를 경찰에 고소해버렸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임 여인의 남편 장 씨가 알게 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임 여인이 가정을 등한시한 채 카바레를 들락거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오던 장 씨는 이 사건 이후 임 씨를 더욱 닦달하기 시작했고 부부사이는 더욱 나빠졌다.”
더욱 수상한 것은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난 직후 보인 임 여인의 행동이었다. 조사결과 임 여인은 1979년 11월과 12월에 남편 명의로 종신보험과 재해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이 사망할 경우 총 5000여 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이었다.
불륜 갈등 이후 각방을 쓸 정도로 심한 불화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임 여인이 남편 명의로 두 건의 보험에 연달아 가입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심스러운 대목이었다. 특히 수사팀이 임 여인의 주변인물을 상대로 은밀히 내사를 진행한 결과 임 여인은 수년 전부터 일곱살 연하의 내연남 신정우 씨(가명·28)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였다. 더욱 이상한 점은 장 씨가 살해된 후 임 여인의 내연남 신 씨의 행방도 묘연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쯤되니 수사팀으로서는 대강의 윤곽이 그려졌다. 수사팀은 임 여인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고 결국 임 여인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기에 이른다. 조사결과 드러난 사실은 이렇다.
자신의 불륜 사실이 들통난 후에도 임 여인은 방탕한 생활을 멈추지 못했다. 임 여인은 계속 카바레를 드나들었고 부부 사이는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다. 남편과 심한 불화를 겪던 임 여인은 결국 남편을 살해해야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임 여인은 1979년 11월 10일과 12월 9일에 사망시 각각 2000만 원과 3000만 원을 수령할 수 있는 보험에 남편 몰래 가입하고 두세 달 동안 보험료도 납부해왔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임 여인은 자기 손으로 직접 남편을 살해할 자신은 없었던 것 같다. 임 여인은 내연남 신정우를 끌어들였다. 신정우는 임 여인에게 춤을 가르쳐주던 인물이었는데 약 3년 전부터 불륜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1979년 12월 임 여인은 신정우에게 ‘12월 31일에 부산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부산에 온 신정우에게 임 여인은 ‘남편을 살해하고 강도를 당해 죽은 것처럼 위장해달라. 그럼 300만 원을 주겠다’고 살인을 청부했다.”
임 여인의 부탁을 승낙한 신 씨는 같이 범행을 할 인물로 친구 박재만 씨(가명·26)을 끌어들였다. 임 여인과 이들이 애초에 정한 범행날짜는 1980년 2월 3일이었다. 그동안 서로 떨어져서 연락을 취해오던 임 여인은 범행 하루 전날 신 씨를 만나 여관에서 밀애를 즐기면서 범행 계획을 점검했다. 이날 임 여인은 범행 후 도주할 때 쓰라며 신 씨에게 20만 원을 주고 오토바이를 사주기도 했다.
그날 신 씨는 공범 박 씨와 함께 범행에 사용할 흉기 두 개를 준비하고 임 여인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 여인이 늦은 밤 남편 장 씨를 유인해 집 인근 초등학교 노상으로 나오면 살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차 범행은 손발이 맞지 않아 포기하게 된다.
적절한 범행날짜를 두고 며칠 동안 고민하던 임 여인은 “남편 월급날이 2월 14일인데 그날 범행을 하면 월급을 노린 강도의 소행으로 꾸밀 수 있다”며 신 씨 등에게 범행날짜를 정해주고 살해를 교사했다. 이들은 사건 당일 오전 범일동의 다방에 모여 범행계획을 점검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2월 14일 오후 5시경 임 여인은 장 씨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저녁 8시에 서면에 있는 지하다방에서 만나 간만에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고 말했다. 식사자리에서 임 여인은 의도적으로 장 씨가 술을 많이 마시게 만들었다. 결국 장 씨가 만취하자 임 여인은 ‘잠깐 쉬었다 가자’며 인근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든 장 씨의 주머니에 있는 월급봉투를 꺼낸 임 여인은 밤 10시 30분경 ‘그만 집에 가자’고 남편을 깨워 데리고 나왔다. 술이 덜 깬 장 씨를 부축하며 인근 야산으로 향한 임 여인은 그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신 씨 등에게 ‘빨리 찔러’라는 눈치를 줬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정작 신 씨 등이 떨면서 멈칫거리자 다급해진 임 여인은 ‘이 병신들아!’라고 소리치며 흉기를 쥐고 있는 신정우의 손을 잡아 끌어 남편을 찌르게 한다. 장 씨가 고꾸라지자 신정우와 박재만은 그제사 장 씨에게 달려들어 흉기로 마구 찔렀다. 범행 후 이들이 흉기를 버리고 달아난 후에도 임 여인은 흉기를 다시 주워 남편을 수차례 더 찌르고 비탈진 계곡으로 떨어뜨리는 잔인함을 보였다.”
신 씨 등은 범행 다음날 새벽 예매해둔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잠적했다. 수사팀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2월 18일 전남 완도에 은신해 있던 신 씨 등을 검거, 범행 일체를 자백받음으로써 사건을 종결지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