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날 만진 대가 내놔”
▲ 영화 <후회하지 않아> | ||
서울 관악경찰서 측 관계자에 의하면 A 씨는 성추행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 전화에 한 달여간 시달리다가 결국 이를 참지 못하고 지난 8월 31일 피해사실을 경찰에 신고했고, 협박범 S 씨는 9월 8일 검찰에 구속됐다.
수사결과 협박을 당해왔던 A 씨가 S 씨에게 건넨 돈은 약 8000만 원. 그런데 A 씨는 경찰에서 “성추행은 하지 않았지만 협박 때문에 할 수 없이 돈을 줬다”고 진술하고 있어 의문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A 씨는 왜 한 달 동안이나 협박 속에 살아야 했고, 수천만 원의 돈을 줬던 것일까. 유명 무용가 공갈협박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현재 서울의 B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A 씨는 국제행사 책임자까지 지낼 정도로 무용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방송 출연도 빈번히 하면서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알려져 있다.
그런 A 씨가 낯선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7월 초. 무심코 전화를 받았던 A 씨는 이 남성과의 통화 이후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년 전 사우나에서 나를 성추행한 사실을 언론에 유포하겠다”는 협박 전화였기 때문이다.
A 씨에게 협박전화를 건 사람은 S 씨(34·무직)였다. 경찰에 따르면 S 씨는 “1999년도쯤 사우나에 들렀다가 동성인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그 사람이 A 씨였다”고 진술했다.
S 씨의 진술에 따르면 1999년 여름 사우나 수면실에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한 낯선 남성이 자신의 성기와 몸을 더듬고 있었다고 한다.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서 A 씨를 붙잡은 S 씨는 그 길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A 씨를 다그쳤다.
이에 A 씨는 합의해달라며 S 씨에게 당시 400만 원을 건넸다고 한다.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던 S 씨에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S 씨는 며칠 후 A 씨와 구두합의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까마득히 잊고 있던 S 씨가 10여 년 전 불쾌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 7월경 한 방송프로그램을 보면서였다. 바로 자신을 성추행했던 A 씨가 한 교양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왔던 것이다. 방송에서는 A 씨를 저명한 인사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날 방송을 본 직후 S 씨는 범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직업이 없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던 그는 “협박을 해 돈을 뜯어내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A 씨의 사회적 위치 때문인지 몰라도 S 씨는 손쉽게 목적을 달성했다. A 씨는 S 씨를 단 한 번 만난 뒤 7월 중순경 3000여만 원을 송금해줬던 것이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자 S 씨는 더 욕심이 났다. 그는 A 씨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해서 협박했다.
수사결과 S 씨의 협박에 시달려온 A 씨는 그에게 약 8000만 원의 돈을 건네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거액을 받은 이후에도 S 씨는 계속 협박했다. 오히려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졌다. S 씨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며 “가족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이를 참다못한 A 씨가 경찰에 ‘공갈 협박’ 혐의로 S 씨를 고발했다.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10여 년 전 S 씨에게 400만 원의 합의금을 줬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성추행은 하지도 않았지만 업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두려워 돈을 건네줬던 것뿐”이라며 “어렵게 상당한 위치까지 올라섰는데 명성에 먹칠을 할까봐 준 것뿐이지 결코 성추행을 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 씨는 “성추행이 없었다면 그렇게 큰돈을 건네줬을 리가 있겠느냐. 성추행당한 사실만은 확실하다”며 “합의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성추행 여부의 진위를 떠나서 공소시효상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합의금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S 씨의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