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4월2일 오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직 및 진급 신고식에서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등(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삼정도에 수취를 달아주고 있다. | ||
이번 군 인사 비리 문제가 불거진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참여정부의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온 군에 대해 여권이 본격적으로 ‘손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관측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청와대 일부 인사가 남재준 총장에게 인사 청탁을 했는데 거절당하자 남 총장을 괘씸죄로 걸어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다음으로는 군 검찰이 이번 기회에 검찰 독립의 명분을 확실히 쌓기 위해 ‘한 걸음 더 나갔다’는 지적도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인사 비리로 얼룩진 육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여권은 여권대로 차제에 군 개혁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괴문서로 촉발된 군 인사 비리 사건의 이면을 따라가 봤다.
지난 7월 윤광웅 국방부장관이 취임하자 군 내부에서는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윤 장관이 개혁을 명분으로 군을 발가벗기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쏟아져 나왔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윤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군의 문민화’를 강조해 직업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켰고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것을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하는 등 군의 ‘보수적’ 정서와 상반된 언행을 보여왔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반면 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최소한’ 겉으로는 유화적인 모습이었다. 지난 8월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육군 간부회의 석상에서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과 관련, ‘정중부의 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도 정부는 ‘근거 없음’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사건을 무마하는 데 앞장서는 등 ‘조용한 군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참여정부는 ‘군 개혁 프로그램’을 물밑에서 조용히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혁의 핵심은 인사문제였다. 군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는 군 개혁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조용히 군 개혁을 추진해 왔다. 이 계획의 핵심은 장성과 부사관에 대한 인사문제였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군 검찰과 일반 검찰이 군 인사 관련 비리를 내사해 왔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신일순 육군대장이 공금 횡령혐의로 구속된 이후부터 정치권 주변에서도 “청와대가 군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수십 명의 장성급에 대한 비리관련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이러한 정부의 군 개혁에 대한 의욕은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도 입증이 됐다. 국정감사가 열렸던 지난 10월 국방부 합동수사대가 당시 각종 의혹으로 구설수에 시달리던 군인공제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여권의 군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가능성은 열린우리당의 평소 군에 대한 기류를 봐도 확인이 된다.
국방위 소속 임종인 의원은 최근 “수구세력 결집의 핵심에 군부와 법조가 있다. 이 싸움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군 개혁에 관심을 보여 왔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에 꿰맞추기 식으로 군을 끌고 가려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남재준 총장은 현 정부와 코드가 많이 다른 편이다. 그런데 남 총장은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굽힌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군 개혁을 위해서 남 총장 같은 사람을 샘플로 잘라야 하는데 해 놓고 보니 군 내부 반발이 너무 심해 주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청와대와 관련된 인사 청탁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월15일 단행된 장성인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장성 인사와 관련해 정부와 국회는 몇몇 진급대상자를 진급시켜줄 것을 남 총장에게 요청했었다. 그러나 남 총장은 정부와 여당의 요구를 묵살한 것으로 안다. 여권으로서는 일종의 수모를 겪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혀 청와대가 군 인사에 개입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 관계자를 통해 최근까지 국방부측 국회 연락관을 지낸 A대령의 경우 정부와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들과 당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급에서 탈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육본측은 A대령과 관련해 “정보 파트의 경우 2개의 T/O(인원구성표)가 정해져 있는데 A대령은 3순위다”고 전했다고 한다. 결국 여권의 움직임을 육본이 거부한 셈이다.
▲ 지난 10월4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는 윤광웅 국방장관(왼쪽)과 김종환 합참의장. | ||
송영선 의원도 “청와대 모 고위인사가 남 총장에게 인사 청탁을 했는데 한마디로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진급 대상자인 당사자를 불러서 호되게 혼을 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남 총장이 괘씸죄에 걸려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이 인사 비리가 조직적으로 드러난 것도 아닌데 나라가 이렇게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 배경에 뭔가 다른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군 인사와 관련된 청와대 개입 여부를 부인하면서 “(음주운전 경력자 등에 대한) 청와대 제보에 따라 국방부가 조사했고 그 이후 과정은 청와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일부 언론이 이번 사건을 청와대의 군 개혁 신호탄이라거나 특정 인사를 표적으로 청와대가 수사를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이 군 검찰의 ‘과잉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군 검찰이 군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이 되면 군 견제 세력으로서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참여정부는 군 검찰 독립 문제를 군 개혁의 핵심 중 하나로 생각하고 개혁 작업을 진행시켜왔다. 하지만 군의 반발에 부딪혀 진척상황이 더뎌지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터지자 군 검찰이 독립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해석이다.
국방부를 오랫동안 출입했던 일간지의 한 기자는 이에 대해 “군 검찰 지도부가 청와대 386 세력과 코드를 맞추며 군 사법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군 검찰이 청와대 민정에서 제보를 받아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좀 세게 밀어붙인 것 같다. 청와대에서 단순하게 알아보라고 지시한 사항을 군 검찰 지휘부가 확대 해석해서 양측간의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한 “군 검찰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서 조직적으로 이 문제를 확대시킨 정황이 그리 많지 않다. 수사를 이렇게 강도 높게 할 계획은 없었는데 오비이락격으로 괴문서가 터지면서 압수수색이 동시에 이루어지니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다.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왜 하필 군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지 그 배경에 의문이 간다”고 밝히면서 “국방장관이 첩보를 받은 뒤 그것을 내사하는 기구는 여러 곳이 있다. 국방부 감사실이나 기무사 헌병 등도 있는데 왜 하필 윤 장관이 범죄 사실을 미리 상정해 군 검찰에 이 문제를 맡겼는지 그 배경이 석연치 않다”고 밝혔다.
군 검찰이 이 문제를 우연히 접해 의욕을 보인 것이 아니라 윗선의 강력한 의지를 읽고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군 검찰은 육본 압수수색은 정당한 근거를 갖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군 검찰은 인사 비리 관련 장성들을 소환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이미 남 총장이 대통령의 면죄부를 받은 이상 큰 수확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가 군 내부 반발을 우려해 남 총장의 기를 살려주었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군 개혁 프로그램이 다시 가동될 개연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