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새싹들 뻥튀기 기사에 두번 울었다
▲ 서울의 명문대 남학생이 예비 신입생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피해 여학생의 충격 고백 이후 “나도 당했다”고 증언하는 여학생들 수는 점점 늘어났고, 이 사실은 온라인상에서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사건이 확산되자 이 대학 총학생회는 뒤늦게 비상대책위원회를 마련했고, 피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해자를 징계할 것임을 공지했다. <일요신문>은 피해 여학생들과 유일하게 접촉이 가능한 A 군을 통해 성추행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1년여 전부터 행해진 박 군의 충격적인 성추행 행각을 들춰봤다.
곧시작될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던 이 대학 2010학번(10학번) 여학생들은 지난 한 달간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활을 따뜻하게 이끌어줄 거라 믿었던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이 사실을 퍼뜨린 동료들, 그리고 확대 보도한 언론에 연이어 몰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10학번 클럽 정모(정기모임)에 가해자 박 아무개 군이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10학번 클럽 정모는 12월 20일 열린 1차 모임을 기점으로 2주마다 열렸다. 1차 정모 때 참여한 예비 신입생은 4명에 불과해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박 군은 신입생 참여율이 높은 2차 정모 때부터 10학번 여학생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박 군은 술을 깨기 위해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여학생 B 양에게 다가갔다. 박 군은 B 양을 상대로 뽀뽀와 키스 등 성추행을 서슴없이 행했다. 놀란 B 양이 박 군을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작정하고 달려든 건장한 남자의 힘을 당해내긴 역부족이었다.
박 군의 성추행은 대부분 1 대 1로 진행됐다. 박 군은 길거리, 택시 안, 멀티방 등에서 혼자 있는 여학생을 노렸다. 그는 정모에서 연락처를 받아낸 뒤 여학생을 한 명씩 따로 불러내 만났다. 멀티 방에 데려가서 스킨십을 시도하다 거절당하면 “너도 즐기면서 왜?”라고 말해 여학생을 당혹케 했다. 또한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면서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면서 “예전 여자친구는 가슴이 작아서 헤어졌는데 너는 가슴이 커서 좋다. 남자랑 여자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어도 관계를 맺곤 한다. 우리 관계 한 번 하고 잊을래?”라고 말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박 군은 성추행을 한 후에도 다른 여학생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계속 정모에 참석하는 대담한 행보를 보였다. 이는 지난 1월 18일 4차 정모 때 참석한 C 양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A 군에게 위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밝혀지게 됐다. A 군은 4차 정모에 참석한 박 군과 C 양 사이가 갑자기 어색해진 것을 발견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게 됐다. C 양은 1시간 동안 울면서 그동안 겪은 일을 A 군에게 어렵사리 털어놓았다. C 양을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온 A 군은 4차 정모 자리에 또 다른 피해 여학생이 있음을 알게 됐다. ‘혹시 박 군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한 적 없느냐?’는 A 군의 물음에 이 여학생 역시 울면서 성추행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A 군은 이후 피해 여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는 등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뒤 이미 피해 입은 여학생과 피해가 염려되는 여학생들(박 군이 평상시 자주 연락하던 10학번 여학생들)을 합한 20여 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이는 박 군과 다른 여학생들의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A 군은 1월 24일 피해 여학생들과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여기서 피해 여학생들은 가해자의 사과문을 학교에 붙여 전교생에게 알리고, 휴학을 요구하는 선에서 해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에서 박 군이 한 달 동안 성추행한 여학생이 20여 명이라고 확대 보도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A 군은 “실제 피해 입은 여학생은 8명이다. 피해가 염려되는 여학생을 포함해 20여 명인 것을 언론에서 잘못 보도해 일이 더 커졌다. 한 언론사는 나와 통화한 후 녹취한 사실을 나중에 알려줬다. 기사화하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는 박 군의 평상시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같은 학과에서 그와 함께 공부한 학생들 말에 따르면 박 군은 평상시 유머가 넘쳐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말을 험하게 하고 허세가 심한 데다 자기주장이 강해 그를 불편해하는 동료들도 꽤 있다고 한다. 1월 27일 기자와 통화한 이 학과 한 학생은 “강남에 나름 잘사는 집 아들이란 얘기가 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160㎞/h까지 속도를 낸다”고 귀띔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10학번 합격자 클럽’을 만든 당사자가 바로 박 군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박 군은 2009년 10월 16일 ‘10학번 합격자 클럽’을 개설했다. 그 후 박 군은 D 군에게 10월 27일과 1월 3일 클럽장 자격을 두 차례 양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D 군도 가해자와 공범이 아니냐는 말이 학교 게시판에 올라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박 군과 D 군이 친구인 건 사실이나 박 군이 클럽장 자격을 D 군에게 양도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다음(Daum) 카페에 마련된 09학번 합격자 클럽 정모에 나간 박 군이 여학생들에게 집적대다 차이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불미스런 일이 여학생들 사이에 퍼져가자 박 군은 10학번 클럽장 자격을 유지하면 문제가 더 커질 거라 생각하고 D 군에게 자격을 양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군은 클럽장 자격을 양도한 후에도 D 군에게 자기가 클럽을 계속 관리할 수 있도록 비밀번호 공유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군의 성추행 사실을 접한 D 군은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통해 “1년 친구 다 필요없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피해 여학생들의 신분이 노출돼 2차 피해를 염려한 총학생회와 학교 관계자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1월 26일 기자와 통화한 총여학생회 관계자는 “상황이 정리되기까지 언론과 접촉하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A 군은 ‘피해 여학생과 통화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나를 포함한 3인 이외에 피해 여학생들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없다. 피해자들이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지 않도록 부탁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의 의견은 우리를 통해 피해자에게 전달되고 있다. 따라서 여자 선배들은 물론 총학생회조차 정확한 피해 여학생들의 신분을 모르고 있다”며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박 군은 1월 25일 “휴학하겠다”며 두 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올렸다. 1월 27일 기자와 어렵게 통화한 박 군은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다. 정확한 사실은 나 외에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곤란해할까봐 내 발언은 자제하겠다.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