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돈 털렸다” vs “무고로 맞고소”
구본호 씨는 한때 손대는 주식마다 공공행진을 벌였지만 주가조작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미국 시민권자로 현재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학동역 인근에 위치한 4층 건물. 일명 ‘구본호 빌딩’으로 유명해진 건물 세입자 A 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해당 건물 1층에서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그동안 건물주인 구본호 씨 측으로부터 집요하게 퇴거 요청을 받았다. 구 씨는 지난 2012년 건물을 매입했는데, 모든 관리 권한을 대리인에게 위임했다. 구 씨의 대리인은 세입자들에게 폭언, 민원 제기 등으로 세입자들에게 퇴거를 압박했고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압박에 못 이겨 건물을 나가고 말았다.
구 씨 측이 이처럼 세입자를 압박한 것은 전 주인과 맺은 계약에서 임차금액이 너무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건물 대리인은 “세입자들이 현 시세에 비해 턱없이 싼 가격으로 세 들어 있어서 현실적인 월세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세입자 A 씨는 “구 씨가 건물을 매입하기 전 이미 전주인과 계약을 완료했고 계약 기간이 상당 부분 남은 상황이다. 결국 권리금을 포기하고 빨리 나가라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구 씨 측의 퇴거 압박 내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재벌 3세의 ‘갑질 논란’으로 불거지자, 구 씨 측 관계자는 최근 직접 철물점에 들러 A 씨를 만났다고 한다. A 씨는 “일단 그 쪽에서는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보는 모습 같았다”라며 “오는 4월 계약이 만료된다. 잘 해결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라고 토로했다.
이렇듯 ‘세입자 갑질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른 구 씨는 최근 또 다른 새로운 의혹에 휩싸였다.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지난 2일 고소를 당한 것. 검찰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전 이사인 이 아무개 씨는 구 씨가 지난 2010년부터 투자를 미끼로 ‘수억 원’을 받아간 뒤 갚지 않았다며 고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을 3일 조사 1부(부장 조종태)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 씨가 고소한 내용의 핵심은 지난 2010년 구 씨가 이 씨의 회사에 ‘5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고 현금과 고급 승용차 등 10억 원 이상의 금품을 챙겨갔지만 실제로는 투자가 한 푼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가 지연되자 이 씨는 더 이상 돈을 주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구 씨 측이 ‘50억 5000만 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직접 보여주며 “걱정하지 마라”라고 안심시켰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10억 원이 전달된 과정에서도 수상한 점이 제기되고 있다. 구 씨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다. 이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 씨가) 개인적으로 현금이 필요하다. 내가 너희 아버지 재단에 10억 원을 기부할 테니 3억 원은 기부 환급금으로 받을 것이고, 다른 데에서 현금으로 7억 원을 마련해 줘라. 그러면 자기가 ‘50억 원을 투자해주겠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즉 10억 원을 기부하는 형태로 하면서 1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려고 했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 이 씨의 아버지는 한 NGO 재단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해당 NGO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구 씨로부터 10억 원을 기부 받았는지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갑질 논란’이 일었던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구본호 씨 빌딩 전경. 임준선 기자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수상한 기부 거래가 이뤄졌던 시기는 지난 ‘2010년’이다. 이때부터 구 씨는 이 씨에게 투자를 명목으로 현금을 추가로 요구했다고 한다. 현금 7억 원과 더불어 추가로 3억 원, 구 씨의 여자친구를 위한 9000만 원 상당의 벤츠 승용차, 최신형 휴대폰까지 전달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여기에 더불어 구 씨는 이 씨에게 20억 원에 달하는 ‘고급 슈퍼카’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구 씨의 지인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슈퍼카를 원해 구 씨가 이 씨에게 견적을 뽑아달라고 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계열사를 통해 차 값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CJ그룹 관계자는 “구 씨에게 먼저 제안이 왔고 차는 회사 차원에서 실무진 검토 하에 구입한 것일 뿐 회장님이 개인 용도로 쓴 적이 없다. 다 왜곡된 주장”이라고 밝혔다. 구 씨 측 관계자 역시 “이전에 이 씨가 구 씨에게 돈을 빌리곤 갚지 않은 적이 있어서 구 씨가 소송을 건 적이 있었는데 그때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미 슈퍼카 구입과 관련한 내역이 나왔다. 당시 다 무혐의로 끝난 사안”이라고 전했다. 수상한 거래와 비자금, 슈퍼카 구입 등 여러 의혹이 식지 않는 가운데, <일요신문>은 이 씨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자 여러 방면으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지난 4일 직접 찾은 이 씨의 집 우편함에는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우편물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한편 구 씨 측은 이 씨의 주장이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이다. 구 씨는 한 달여 전부터 외국으로 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구 씨와 관련한 입장은 구 씨가 부사장이자 대주주로 있는 물류업체 ‘범한판토스’에서 맡고 있다. 범한판토스 관계자는 “이 씨의 말은 모두 사실무근이다. 오히려 이 씨 측에서 2012년에 사업자금 명목으로 5억 원을 구 씨로부터 빌려갔는데 갚지 않아 지난해 4월 소송을 걸었고 10월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돈을 갚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LG상사가 범한판토스 지분을 인수하자 이를 노리고 이 씨가 소송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언론 보도로 고소 이슈가 불거진 이후에도 이 씨가 대리인을 통해 ‘합의하자’고 연락이 왔다. 합의 제안을 일축했고 무고혐의로 소송을 거는 것으로 내부 논의를 마쳤다. 현재 시기만 조율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양측 공방이 팽팽한 가운데 유일하게 일치하는 것은 두 사람이 만난 시기뿐이다. 이 씨가 주장하는 수상한 거래가 시작되는 시점과 구 씨 측이 이 씨를 처음 만났다고 주장하는 시기가 바로 ‘2010년’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분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10년 당시 구 씨는 허위 공시로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고, 이 씨는 코스닥 상장사 이사를 맡고 있었다. 특히 이 씨는 젊은 나이임에도 사업을 상당히 활발히 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 씨를 안다는 한 관계자는 “이 씨가 여러 사업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업 상황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청년사업가’였던 이 씨의 꿈을 사업 투자를 미끼로 재벌 3세 구 씨가 짓밟은 것인지, 반대로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른 구 씨가 오히려 피해자인지는 검찰 수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구본호는 누구? 한때 ‘증권가 큰손’서 ‘검은 손’으로 추락 구본호 씨는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정회 씨의 손자다. 즉 구본무 LG그룹 회장과는 6촌 지간으로 범 LG가 3세인 셈. 때문에 잇따른 구 씨의 구설수로 LG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LG그룹 관계자는 “친척인 것만 제외하고 사업상으로나 이번 고소 건으로 보나 LG그룹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일축했다. 구 씨는 한때 ‘주식시장의 큰손’ ‘얼굴 없는 주식 귀재’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주식시장에서 한창 떠올랐던 시기는 2005년부터 2007년인데 그가 손대는 주식마다 고공행진을 벌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2007년에는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 액티패스, 엠피씨, 동일철강 등에 500여억 원을 투자해 2000억 원대 이익을 거둬 증권가에서는 “한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구본호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투자 성공 가도가 절정에 오를 시기인 2008년 ‘주가 조작 의혹’에 휘말리면서 그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게 된다. 기업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DJ 정권의 숨은 측근으로 알려진 재미교포 무기거래상 조풍언 씨(지난해 10월 사망)의 자금을 끌어와 유상증자에 참여한 게 시초가 됐다. 당시 구 씨는 조풍언 씨의 자금을 마치 본인의 자금인 것처럼 허위 공시를 냈고, 투자자들은 재벌 3세와 DJ 정권의 숨겨진 실세가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몰려들어 주가가 급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구 씨가 얻은 시세차익은 ‘165억 원’ 상당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구 씨의 혐의를 포착, 검찰에 기소했다. 구 씨는 2012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 받게 된다. 이렇듯 ‘주식시장의 큰손’에서 순식간에 ‘검은손’으로 추락하게 됐지만 구 씨에게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범한판토스’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977년 설립된 범한판토스는 LG그룹의 물류 부문을 아웃소싱하면서 급성장한 물류 기업이다. 구 씨는 1999년 아버지인 구자헌 씨가 사망하면서 회사 지분을 상속 받았다. 구 씨는 대주주로 있으면서 수년간 4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배당 받았다. 지난해 말에는 LG상사 측이 범한판토스를 인수한다고 밝히면서 구 씨가 돈방석에 앉을 것이라는 관측이 재계에 돌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구 씨는 최근 효성그룹의 장남 조현준 사장이 최대주주인 IT 기업의 3대 주주로 등극하기도 해 유죄 판결의 악몽을 완전히 털고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세입자 ‘갑질 논란’과 사기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 모습이다. 현재 미국에 있는 구 씨는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미국 이름은 ‘베넷 구’이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