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선 누구나 주관적으로 그 영화를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권위의 영화제 역시 그해 심사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쎄시봉>은 어떤 영화일까. 그나마 요즘 가장 객관적인 기준으로 불리는 네티즌 평점은 이 영화에선 전혀 의미가 없었다. 개봉을 앞두고 소위 말하는 ‘평점테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누적 관객 수인데 <쎄시봉>은 170여만 명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이 역시 ‘평점테러’ 여파를 감안한다면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입소문이 그 다음 잣대인데 영화를 본 이들의 평이 서로 엇갈린다. ‘너무 재밌게 봤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유치하다’는 의견이 있고, ‘기발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반해 ‘작위적이다’는 의견도 있다.
우선 이 글을 쓰는 기자의 주관적인 입장에선 기발한 설정과 탄탄한 대본이 돋보인 매우 재밌는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개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는 물론 개인의 취향이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기자는 이 영화에 흐르는 멜로라인의 정서가 마음에 들었으며 주인공 근태(정우, 김윤석 분)의 캐릭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한국 영화에는 근태랑 비슷한 캐릭터들이 있다. 우선 그들은 연애 실력은 수준 이하다, 아니 낙제점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모든 걸 헌신한다. 그러다 보니 사실 남성으로선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들은 로맨틱하기보단 순애보적인 사랑을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를 들자면 <해가 서쪽으로 뜬다면>의 범수(임창정 분),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태(김주혁 분) 등이 있다. <해가 서쪽으로 뜬다면>의 각본을 쓰고 조감독 생활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이 <광식이 동생 광태>인 김현석 감독이 바로 <쎄시봉>의 감독이다. 아무래도 기자는 김현석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바보 같은 남성 캐릭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기자가 생각하는 <쎄시봉>은 ‘60년대 후반의 쎄시봉으로 간 광식이의 이야기’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본 이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연애에 어설펐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쎄시봉>의 근태 역시 광식이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영화의 형식을 놓고 보면 이 영화는 ‘확장판 건축학개론’으로 볼 수도 있다. <건축학개론>이 15년의 시간 공백을 두고 20개 초반과 30대 중반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쎄시봉>은 20대와 40대, 그리고 다시 60대로 이어지는 40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20여년 간격으로 다루고 있다. 둘 다 20대 시절의 첫사랑을 주제로 하는 것은 동일하다.
첫사랑을 얘기하는 영화는 대부분 슬프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은 결혼을 앞둔 남성이 이혼녀가 된 스무 살 시절 첫사랑을 만나는 얘기인 터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 될 여지를 가진 영화다. 반면 <쎄시봉>은 첫사랑은 이미 지나간 사랑으로 ‘완성형’이 된 40대, 그리고 60대의 이야기다.
다만 <건축학개론>은 안타깝게 끝난 첫 사랑을 15년 만에 다시 만난 일이 포커스인 영화라면 <쎄시봉>은 철저히 과거의 이야기다. 그들의 20대 시절, 60년대 후반 음악감상실 쎄시봉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의 주인공은 이제훈과 수지라기보다는 엄태웅과 한가인의 조합이다. 반면 20대 시절의 이야기가 중심인 <쎄시봉>의 주인공은 확연히 정우와 한효주 조합이다.
그리고 <쎄시봉>의 첫사랑이 훨씬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현실적인 첫사랑을 그린 <건축학개론>이 엄청난 호평과 흥행 기록을 올린 데 반해 <쎄시봉>이 작위적이라는 비판과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거둔 까닭 역시 너무 가슴 아픈 첫사랑을 만들려다 보니 그런 작위적인 설정이 등장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쎄시봉 출신 가수들의 히트곡을 얼개로 이야기를 꾸민 영화라는 애초 설정 때문이다. 영화 <맘마미아>가 아바(ABBA)의 음악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꾸민 뮤지컬이듯 영화 <쎄시봉>은 쎄시봉 출신 가수들의 히트곡 가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태생부터 작위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요의 가사를 중심으로 이런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됐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쎄시봉>의 주인공은 정우와 한효주다. 영화 도입부에서 분명히 자막으로 정우와 한효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선 김현석 감독의 이름이 나온 뒤 김윤석과 김희애의 이름이 나온다. 앞에서부터 보면 정우와 한효주가 주인공이며 뒤부터 보면 김윤석과 김희애가 주연이다.
이는 관객의 연령층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다. 20~30대 관객이라면 정우와 한효주의 이야기에 더 감정이 이입될 것이다. 반면 40대 이상은 김윤석과 김희애일 것이다. 기자 역시 40대 초반의 나이인 터라 영화 후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김윤석과 김희애에게 더 감정 이입이 됐다.
<건축학개론>이 국민 첫사랑 ‘수지’를 탄생케 한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내 첫사랑도 수지처럼 예뻤지’라는 회상과 함께 자신의 첫사랑 얼굴에 수지의 얼굴이 오버랩된 것이다. <쎄시봉>은 그 반대다. 이번엔 김희애다. 이제는 못 본지 오래된 첫사랑이 지금 어떤 모습일까. 김희애처럼 예쁘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수지가 기억 속 첫사랑을 대신해 줬다면 김희애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없는 첫사랑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건축학개론>을 보며 내 첫사랑을 수지인 양 생각하게 해준 이용주 감독의 캐스팅이 고마웠다면, <쎄시봉>을 본 뒤에는 지금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첫사랑이 김희애처럼 예쁘게 나이 먹어가고 있을 거란 생각을 갖게 해준 김현석 감독이 고맙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난 뒤 기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60대라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라고. 영화에서 이들의 60대는 매우 짧게 등장한다. 그렇지만 40여 년의 세월이 그 짧은 장면에 응축돼 있는 것 같은데 아직 40대인 기자 입장에선 그 정서를 다 따라가고 이해하긴 힘들다. 내가 60대가 돼 다시 <쎄시봉>을 본다면 그 마지막 짧은 장면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 줄거리
영화 <쎄시봉>은 쎄시봉 출신 가수들의 히트곡을 얼개로 스토리가 완성된 영화다. 따라서 줄거리 역시 평범하게 소개하기보단 이 영화에 등장하는 쎄시봉 가수들의 명곡들을 중심으로 설명해보려 한다.
▲ 백일몽
‘이른 봄날에 꿈처럼 다가온 그대 영원할 줄 알았네.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 파도에 실려가 버렸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 백일몽의 첫 부분 가사다. 어찌 보면 백일몽 같은 이야기다. 한국 음악계에 포크 열풍을 일으킨 조영남(김인권 분), 윤형주(강하늘 분), 송창식(조복래 분), 이장희(진구 분) 등을 배출한 음악감상실 ‘쎄시봉’, 젊음의 거리 무교동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그곳이 바로 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리고 오근태(정우 분)라는 이가 있다.
자칭 ‘쎄시봉’의 전속 프로듀서 이장희가 발굴한 오근태는 윤형주 송창식과 트리오를 이뤄 쎄시봉 무대에 선다. 팀 이름 역시 ‘트리오 쎄시봉’.
오근태는 그렇게 자신도 가수가 될 것이라 믿었다. 쎄시봉 출신으로 한국 가요계의 거목이 된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같은 가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근태의 백일몽이었다. 이른 봄날의 꿈일 뿐이었고,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20대 초반 오근태에게 쎄시봉에서의 나날은 아름답고도 슬펐다. 이런 오근태의 ‘아름다운 봄날의 꿈’이자 ‘행복했던 모래성’이 바로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 담배가게 아가씨
‘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짧은 머리 곱게 빚은 것이 정말로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떼기. 앞집의 병열이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만화가게 용팔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그렇다면 동네에서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유명한 송창식의 노래 ‘담배가게 아가씨’의 가사다. 쎄시봉에도 예쁜 아가씨가 있었으니 바로 민자영(한효주 분)이다. 그리고 새침떼기다. ‘마성의 미성’ 윤형주도, ‘타고난 음악천재’ 송창식도 딱지를 맞았다. 오직 근태만 남았다. 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그렇게 쎄시봉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이 뜨겁게 불타올랐고 근태와 자영의 첫사랑도 시작된다.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
자영의 마음을 얻고 싶은 근태는 이장희처럼 자신은 작곡을 할 능력이 없음에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절친인 이장희에게 그의 곡을 빌려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곤 근태는 자영에게 자신이 만든 곡이라며 노래를 하나 불러주는 데, 그 곡이 바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다. 그리고 이 노래는 바로 연애에 있어 근태의 철학이자 신앙이다.
쎄시봉이 내부 수리를 위해 잠시 문을 닫았을 때 근태는 고향인 충무로 내려가 부모의 일을 돕는다. 충무를 찾아온 자영이 근태에게 묻는다. “근태야! 넌 날 위해서 뭘 해줄 수 있어?”라고. 짐작하겠지만 자영에겐 그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긴 것이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연애 실력이 낙제점인 근태는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라고 노래 한 구절을 부른 뒤 “평생 너를 위해 노래할게”라고 답한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다. 그가 말한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라는 가사의 뜻을. 그가 진정 얼마나 못할 게 없는 순정파 남자인지를.
▲ 웨딩 케이크
이 노래는 영화 <쎄시봉>의 핵심이다. 가사조차 언급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 노래의 가사가 이 영화의 스포일러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가사를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말길 바란다. 그냥 관람하라 영화 <쎄시봉>을. 그러면 이 노래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니….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광식이 동생 광태> <건축학개론>을 재밌게 봤다면 클릭
기본적으로 사랑 얘기를 그린 영화다. 그 시절의 노래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음악 영화일 수도 있다. 다만 요즘 20대에겐 40여년 이야기로 다소 오래 전 이야기이며 이 영화를 통해 그 시절의 노래를 처음 들어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60년대 후반이나 요즘이나 이성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지는 사랑 이야기의 얼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첫사랑을 다룬 영화인 <광식이 동생 광태>와 <건축학개론>을 재밌게 본 이들이라면 강추다. <쎄시봉>의 근태나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 그리고 <건축학개론>의 승민이나, 왜 첫사랑을 다룬 영화 속 남자들은 하나같이 연애 실력이 미천한 바보 같은 남자들일까.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1만 원
개인적인 추천 가격은 5만 원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기자의 철저히 주관적인 평가이니만큼 공식 추천 다운로드 가격은 1만 원으로 정한다. 어느 정도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근태의 바보 같은 사랑의 정서가 좋고 쎄시봉 출신 가수들의 명곡을 얼개로 짜인 스토리가 마음에 들고 김희애를 보며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첫사랑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5만 원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바보 같은 사랑의 정서가 답답하고 세시봉 출신 가수들의 명곡을 얼개로 짠 스토리가 작위적으로 다가온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소 낮아질 수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