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은 미국이 아닌 중국 음식이었고 주재료는 토마토가 아닌 생선이었다. 전투 중인 한무제를 사로잡았던 강렬한 맛의 기록부터 대항해 시대에 해적과 선원들이 변주했던 케첩의 칵테일 버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후 저장성을 높여 상품화시킨 오늘날의 토마토케첩이 탄생하기까지 들려준다. 한낱 가공품 소스로 보였던 케첩이 실은 위대한 문명의 모태에서 만들어진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스탠퍼드 대학의 괴짜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우리의 허기를 품격 있게 채워준다. 케첩뿐만 아니라 영국의 국민음식 피시앤드칩스, 그저 구운 빵일 뿐이었던 토스트, 추수감사절 요리인 칠면조, 흔하디흔한 밀가루와 소금, 현대 과학의 부산물인 듯한 아이스크림 등에 담긴 흥미진진한 사연에 대해 소개한다.
그의 광범위한 연구조사는, 메뉴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는 사실부터 마카롱의 갑작스러운 유행에 담긴 계급의 취향, 음식 브랜드네이밍에 숨겨진 음운학적 마케팅의 비밀, 맛집 리뷰에서 섹스 관련 단어가 많이 언급될수록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놀라운 사실까지 음식에 담긴 문화, 사회, 경제, 심리를 정확히 해독해낸다.
저자는 음식을 탐험하며 대항해시대의 중국과 유럽, 고대의 아랍을 여행한다. 우리는 그가 펼쳐 보인 세계지도 속에서 음식의 모험과 그 음식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음식과 언어에 관한 진지한 연구, 세계와 인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돋보이는 <음식의 언어>는 그가 차려낸 코즈모폴리턴 식탁으로의 초대다.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정가 1만 7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