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1 특정한 역할과 내용을 반복하는 아이
아이들도 선호하는 역할이 있다. 대부분 엄마, 요리사, 가게 주인, 의사, 영웅 등을 맡으려 한다. 이러한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아직 다양한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가 매번 특정한 역할과 상황만을 반복한다면 그 놀이를 통해 해결하고 싶은 갈등이나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엄마놀이나 소꿉놀이를 자주 하면서 이상적인 엄마 역할을 보인다면 평소 엄마의 양육 방식을 모방한 것이거나 자신이 그런 양육을 받고 싶은 욕구를 표현할 것일 수 있다.
또 텐트를 흔들며 지진이 나서 집이 무너지는 위기 상황을 자꾸 반복하는 아이는 관련된 뉴스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거나 부부싸움이 심한 가정의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위기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구조와 힘, 안전이 아이의 놀이 주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아이마다 각기 갈등이나 욕구가 다르다는 점이다. 놀이에서는 아이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반복되는 내용과 아이가 맡은 역할, 자주 하는 말 등을 파악해보고 아이가 실제 생활에서 힘들어하는 부분과도 연결시켜봐야 한다. 만일 불안이나 분노, 애착과 관련한 문제가 짐작된다면 전문 상담기관에서 놀이평가를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갈등 정도를 살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Tip 대표적인 역할놀이 속 아이의 심리
엄마놀이 아이에게 엄마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이다. 여자아이뿐 아니라 남자아이도 엄마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데, 성역할에 대한 혼란이라기보다 능력 있고 따뜻한 역할을 내면화하고 싶은 바람이다. 단, 역할극에서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돌보다 갑자기 호통을 치거나 때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가 부모의 양육 태도를 혼란스럽게 느낀다는 의미일 수 있으므로 잘 관찰해야 한다.
병원놀이 실제로 아파서 병원에 다녀온 뒤 병원놀이를 반복하며 병원에서 느꼈던 공포심을 표현하고 질병을 이겨내고 싶은 바람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 의사라는 권위자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감과 힘을 느끼기도 한다.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주사는 무섭기도 하지만 병을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는 걸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게 요령.
가게놀이 요리사놀이, 마트놀이에서 아이는 주인 역할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때로 손님이 되어 대접받는 만족감도 느낀다. 주인 역할을 하며 ‘공짜’, ‘세일’로 물건을 퍼주기도 하는데 이는 반대로 자신이 받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거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Case 2 폭력적인 장면이나 역할에 몰입하는 아이
‘선과 악’, ‘공격자와 피해자’는 놀이에서 중요한 주제다. 아이는 선과 악의 싸움, 공격하고 피해를 입기도 하는 상황에 몰입하면서 불안이나 혼란을 극복하고 성장한다.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전쟁이나 싸움놀이처럼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놀이를 즐기는데 이는 발달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간혹 부모가 “아휴, 그렇게 죽이는 건 나쁜 거야”라고 말하거나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건강한 공격성을 억압해 아이가 갑자기 분노를 터트리거나 불안해할 수도 있다. 평가 대신 이기고 싶은 마음, 영웅이 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기본.
엄마가 감당하기 힘들면 아빠가 놀이를 담당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폭력 장면을 지나치게 잔인하게 묘사하거나, 물건을 실제로 던지고 상대를 때린다면 개입이 필요하다. 아이가 잔인하게 묘사할 때 지나치게 무서워하거나 놀라는 등 큰 반응을 보이면 더 큰 쾌감을 느껴 강도가 심해질 수 있다. 또 평소 아이가 폭력적인 만화나 동영상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잔인한 장면을 상상하는 빈도를 줄이려면 활달하게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비중을 높이도록 하자.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놀이를 하다가 지나치게 흥분한 경우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므로 후퇴하거나 작전을 짜는 시간이라며 잠시 쉬는 것도 방법이다.
Case 3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는 아이
역할놀이를 할 때 지시적이고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아이가 있다. 자기가 생각한 시나리오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거 아니라니까”, “이렇게 하라고!” 호통을 치거나 사사건건 상대의 의사를 거부한다. 만 4~5세 아이는 상황을 통제하면서 주도성을 발휘하려는 욕구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놀이 상대가 자기 생각을 읽고 착착 맞춰줄 것을 기대하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이밖에 부모의 양육 방식이 통제적이었던 경우 놀이에서 그와 비슷하게 상황을 통제하면서 지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만일 발달 과정에서 주도성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아이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그래, 이 놀이는 네가 감독님이지”라는 식으로 호응해주면 된다. 혹은 엄마가 자기 생각을 읽고 알아서 해주기를 원하는 경우라면 “엄마가 네 생각을 미리 다 알았으면 좋겠지? 그런데 이 놀이에서는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어떤 계획인지 미리 말해줘”라고 알려주자. 한편 부모의 통제적인 양육 방식을 따라하는 거라면 극중 인물이 되어 “와,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만 하는 건 정말 쉽지 않군요. 아휴, 내 얘기도 좀 들어주면 좋을 텐데”라고 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이야기해주자.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평소 양육 태도에서 혹시 조정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고 변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Case 4 시키는 역할만 하고 의사표현을 못하는 아이
역할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해보면 각각의 성향뿐 아니라 일종의 권력 관계가 보이기도 한다. 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갈지 협상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감독형 아이가 있고, 맡기는 배역을 수용하며 추종자 역할을 하는 아이도 있다. 감독형 아이는 주로 또래에게 인기가 많거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거나 지시적인 유형이 많은 편. 반면에 수용적이거나 소극적인 아이, 아직 역할놀이에 미숙한 아이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기 쉽다.
만일 아이가 지나치게 감독 역할만 하려고 한다면 떠오르는 이야기는 자유롭게 말하게 하되 작은 역할을 맡아보는 식으로 균형을 잡도록 유도하자. 반대로 수동적으로 맡기는 역할만 하는 아이라면 먼저 손을 들어 하고 싶은 역할을 말하는 연습부터 시켜본다. 또 엄마와 자주 역할을 바꾸어 놀며 자신감을 길러주고, 친구 한두 명을 집으로 초대해 놀이를 주도하는 경험을 해보게 하는 것도 좋다. 특히 역할놀이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역할을 바꾸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협상하는 과정이 중요하므로 평소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
Case 5 가상과 현실을 혼란스러워하는 아이
모처럼 실감나게 놀아주려고 혼신을 다한 아빠의 괴물 연기에 아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연령이 어릴수록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혼란스러워하기 때문. 실감나는 분장이나 표정, 목소리는 아이의 불안을 자극해 놀이의 재미를 빼앗기 십상.
따라서 겁이 많거나 소리나 시각적인 자극에 유독 예민한 아이 앞에서는 ‘발연기’를 펼치는 편이 더 낫다. 소꿉놀이나 슈퍼놀이, 청소놀이처럼 아이에게 익숙한 일상적인 역할놀이를 충분히 한 뒤에 좀 더 판타지가 가미된 놀이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싸움놀이나 괴물놀이를 할 때는 아이와 1:1로 맞서 싸우기보다 두 사람이 한편이 되어 큰 인형 같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 협동 공격을 하는 놀이가 적당하다. 이렇게 안전하게 단계를 밟아나가면 점차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힘을 발휘해보려는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Case 6 역할놀이에 관심이 없고 쉽게 흥미를 잃는 아이
역할놀이는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놀이지만 아이가 별 관심이 없다면 억지로 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만일 가상놀이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상상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함께 같은 주제에 집중해 놀이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발달의 이상 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만 3세가 지났는데도 단순한 가상놀이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눈맞춤이나 언어 발달 등에도 문제가 있다면 전문 기관에서 발달평가를 받아볼 것.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다소 생각이 경직되거나 논리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일 수 있으니 평소 아이와 놀이할 때 가상의 요소를 조금씩 더해보자. 예를 들어 미끄럼틀을 탈 때 “와, 이걸 산이라고 하자. 이제 우리는 높은 산에 올라가는 거야. 힘내”라는 식으로 가상의 요소를 넣어 아이의 흥미를 자극하면 된다.
Tip 역할놀이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
재미를 우선으로 한다 좋은 대답을 하려고 망설이면 가장 중요한 ‘재미’를 놓친다. 엄마는 상담자로 아이와 노는 것이 아니다.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고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개방형 질문을 한다 극중 아이의 질문에 “나는 무서울 때도, 재밌을 때도 있더라. 너는 어떠니?” 식으로 엄마가 맡은 역할로서 말하고 아이 역할에게도 질문을 해 감정 표현 기회를 준다.
다음 전개는 아이에게 묻는다 다음 이야기의 전개는 감독인 아이의 의사에 따라 진행한다. 가령 마트 놀이를 할 때 물건을 많이 사야 할지 아이가 잘 모른다고 한다면 엄마가 “많이 살까? 조금 살까?” 물어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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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황선영 기자 / 글 김이경(육아 컬럼니스트)/ 모델 빈센트(4세), 로건(7세), 이병찬(7세)/ 스타일리스트 김유미/ 헤어·메이크업 박성미/ 도움말 신민진(보라매청소년수련관 놀이치료사), 박소연(서울주니어상담센터 놀이치료사)/ 의상협찬 유니클로·스티브매든(02-3442-3012), 빈폴키즈(02-3447-7701), 키블리(www.kive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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