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의약품 접근권” vs “법적·의학적 기준 선행””…허가·입법 순서 놓고 시민사회·의료계 시각차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역시 7월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외에서는 법률에 별도 규정을 두지 않고 의약품 허가 사항이나 지침 등을 통해 약물 사용을 규율하는 국가가 있다”면서 관계 부처의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제약회사가 개발한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약물로 현재 미국·영국·프랑스 등 100여 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입법 공백 문제로 수년째 허가심사가 지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가 개정 시한인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2021년부터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임신중지가 허용되는 시기와 방법,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 절차 등을 새롭게 규정하는 후속 입법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현행 모자보건법에도 기존 인공임신중절수술 관련 규정이 남아 있다.
현대약품은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미프지미소정의 품목허가를 추진해왔다. 2021년 7월 첫 허가를 신청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자료 보완 요구 이후 자진 취하했고, 2023년 다시 신청했지만 관련 법 개정 문제로 심사가 중단됐다. 이후 2024년 12월 세 번째 품목허가를 신청해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그동안 임신중지 의약품을 허가하려면 사용할 수 있는 임신 기간 등을 토대로 효능·효과와 용법·용량, 위해성관리계획 등을 확정해야 하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준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대통령의 도입 검토 주문 이후에도 식약처의 기본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여부와 임신중지 허용 기간이 법률로 정해져야 작성할 수 있는 일부 허가요건 자료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는 최근 논평을 통해 “입법 공백은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현행법 안에서 임신중지 의약품의 허가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약은 “미프진이 정식 도입되지 않는 동안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이 성분과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이용하는 등 위험에 노출돼 왔다”며 “관련 법률이 정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가 절차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임신중지 허용 범위와 절차를 정하는 후속입법 없이 의약품부터 허가할 경우 오히려 법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프진의 경우 약물 사용 자체가 임신중지와 직접 연결되는 만큼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적용할 기준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용 가능한 임신 주수와 처방·복용 절차, 의료인의 책임 범위 등이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의약품 허가 사항이나 지침만으로 규율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좋은의료문화연대는 8월 10일 성명을 통해 후속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프진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순서가 거꾸로 된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프진 도입에 앞서 임신중지 허용 시기와 사유, 의료인의 권한과 책임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고 임상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한 의학적 가이드라인과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