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들이 불치병에 걸리는 드라마 <러브레터> | ||
MBC <러브레터>에서는 여주인공이 심장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고, SBS <흐르는 세월처럼>은 첫 회부터 아버지의 병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왔다. <가을동화>, <아름다운 날들>, <유리구두>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의 특징은 ‘여주인공이 병으로 죽거나 죽을 뻔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과연 이들의 병은 죽음밖에 그 결말이 없는 것일까?
드라마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 은하(수애 분)는 ‘어느 날 갑자기 극히 희귀한 심장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그러나 그런 위중한 병을 안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녀의 증세는 가끔 가다가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 전부다. 드라마의 설정대로 ‘최대 5년까지만 살 수 있는 극히 드문 심장질환’에 대해 실제 의사에게 확인했더니 “그런 심장병은 없다”라는 답을 했다.
“심장병 자체가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 죽을 수도 있고, 관리를 잘하면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지낼 수도 있는 병이다. 암의 경우에는 암세포가 퍼지는 속도에 따라 시한이 어느 정도라는 예측이 가능하지만 심장병은 그렇게 날짜를 정할 수 없다. 단지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 ‘이 증상이면 환자들이 발병 후 5년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이 60%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 내과전문의의 답변이다.
이에 대해 <러브레터>의 김성호 PD는 “은하가 앓는 희귀한 심장병은 분명히 있다. 심장 주변 근육에 이상이 생겨서 심장이식을 해야 살 수 있는 병이다. 정확한 병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논란거리만 제공하고 드라마가 방해받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하의 증세도 크게 드러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병이 주제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설명했다.
▲ <가을동화> | ||
심장병보다 더 흔하게 등장하는 드라마 속 질환은 백혈병. ‘작가들이 특히 소재거리로 애용한다’고 알려진 백혈병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에게 생기는 ‘대표 불치병’(난치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혈로 인해 피가 부족하여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가는 증상이 청순가련한 멜로드라마 여주인공을 더욱 주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을동화>의 은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등에서 조용히 죽어갈 때 얼마나 애틋했었나? 하지만 현실은 결코 ‘드라마틱’ 하지 않다.
“드라마에 나온 백혈병 환자들은 공주처럼 품위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단 발병해서 병원에 오면 격리수용되고,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머리카락은 물론 손톱 발톱도 모조리 빠진다. 안색이 하얗게 되는 건 비슷하지만 그것도 항암치료를 받으면 너무 힘들어서 금세 얼굴이 시커멓게 탄다.
<가을동화>처럼 잠들 듯이 죽는 건 그야말로 허구에 가깝다. 백혈병 환자들은 병 자체보다 균의 침입으로 인한 폐렴이나 신장, 간기능 이상으로 죽게 된다. 피를 토하고 얼굴 여기저기가 터지고 잇몸도 터져 죽는 모습조차 비참하다. 사실 백혈병 환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참한 몰골로 변한다는 거다. 작가들이 환자 병동에 하루만 와서 보면 그렇게 쓰지 않을 텐데….”
본인도 병을 앓은 적이 있다는 한국혈액암협회 한욱 사업부장이 밝힌 실상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것은 시청자들의 연민을 자아내 더욱 관심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계기로 극적인 화해를 이끌어낼 수도 있어 엔딩을 장식하기에도 더 없이 적합한 것.
하지만 문제는 리얼리티. 일부에서는 “뒷수습이 안되면 다 죽이거나 되살리더라”는 비난의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리얼리티 논란을 두고 드라마 속 상황을 그저 드라마 자체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비현실적’ 스토리는 결국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게 마련이다.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