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인 박용팔씨(67) | ||
비교적 널리 알려진 영화로서는 <남부군>,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 <산딸기> 시리즈가 있으며 최근에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도 출연했다. 박씨는 현재 미혼상태. 한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영화계의 ‘총각배우’다.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창 바쁠 때엔 눈 감고 잠잘 시간이 없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도 많이 출연했기 때문에 나에게 시간은 항상 ‘분단위’로 흘러갔다. 한때는 신성일씨가 촬영장에서 나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많이 출연할 때엔 그 정도로 바빴다.
─한국 영화계 인맥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그렇게 두터운 인맥을 쌓은 비결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출연을 많이 한 게 계기였다. 35년 동안 영화판에 있었으니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이장호, 배창호, 정지영 감독의 영화에는 거의 1백% 출연했다. 70∼80년대에는 영화배우들을 ‘딴따라’라고 부르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같은 배우들을 더욱 뭉치게 했다. 한두 번 같이 촬영하고 나면 다들 ‘형 동생’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흔히 한국 영화계 하면 신성일씨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오히려 신씨보다 더 인맥이 넓다.
▲신성일씨가 활동할 당시는 엄앵란 등으로 대표되는 몇몇 여배우들이 거의 모든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달라져도 함께 촬영하는 배우들은 거의 비슷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새로운 사람을 사귈 기회가 한정되었을 것이다. 또 그는 정치를 하면서 영화를 안 했다. 하지만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계속 활동을 해왔다.
─정말 폭 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데 인간관계를 맺을 때 따로 염두에 두는 게 있나.
▲사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다. 영화배우를 시작한 것도 애초에 사업이 실패해 우연히 들어선 것이다. 그런 만큼 겸손하게 생활했다. 따지고 보면 나 같은 조연급이 누구를 무시할 수나 있었겠나.(웃음)
─‘인맥관리’를 따로 하는지.
▲특별히 ‘관리’라는 것을 하지는 않는다.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아도 ‘현장’에 가면 늘 만날 수 있고 서로의 안부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게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보나.
▲독특한 전라도 사투리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서울 말투로 연기를 하면 감독들은 그냥 사투리를 쓰라고 한다. 그것 때문에 나를 불렀는데 어색한 말투로 연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최근 생활은.
▲작년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와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촬영한 이후에는 단 한 작품에도 출연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연기밖에 없는데 이제 감독들이랑 PD들이 불러주지 않으니 밥도 굶을 지경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원로배우들이 그렇다. 이제 연기의 맛을 알려고 하는데 현실이 아쉽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