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면 어때? “임종룡처럼만…”
차기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추대된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은 4월 24일 퇴직공직자취업심사에서 통과되면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으로 취임하게 된다. 연합뉴스
김 후보자가 급부상한 까닭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끝내 고사하면서 농협금융이 금융감독기관 출신의 무난한 인물로 돌아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용환 후보자가 추대되기 직전까지 농협금융 차기 회장으로 김석동 전 위원장이 영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위원장 허권)가 반대하고 김 전 위원장 본인도 “관심 없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농협금융은 부랴부랴 다른 인물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회장 후보자로 김주하 농협은행장도 물망에 올랐으나 농협금융 내부적으로 내부 출신보다 외부 인사에 초점을 맞춘 탓에 최종 단계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농협 내부 인사는 “금융지주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아직은 내부 출신보다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의중 역시 외부 인사 영입 쪽으로 기울어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용환 후보자 추대로 신동규 전 회장 때부터 이어져온 ‘관료 출신’,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선임에 대한 외부 시각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지적은 농협금융 회추위가 구성되기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농협금융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전임 임종룡 회장이 대단히 잘한 덕분에 관료 출신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며 “오히려 전임 회장이 진행해온 일을 이어가려면 (관료 출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임종룡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월 25일 퇴임식을 마친 뒤 환송나온 농협 임직원들에게 손들어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임종룡 위원장은 농협금융 회장 시절, 설립 초기 어수선한 농협금융의 기반을 닦고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등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인수하며 농협금융은 자산 310조 9000억 원으로 신한금융(323조 원), 하나금융(314조 9000억 원)에 이어 ‘3대 금융지주’로 뛰어올랐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김용환 후보자가 추대된 데는 임 위원장의 덕도 있는 것 같다”며 “전임 회장이 불편했다면 관료 출신 외부 인사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김용환 후보자는 서울고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인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의 길로 들어선 그는 재무부 증권정책과, 옛 금융감독위원회 공보관·감독정책2국장 등을 거쳤다. 금융위원회는 물론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다. 신동규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2014년 2월까지 수출입은행장을 지냈다.
그는 관료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에 2년 동안 파견근무를 했기에 국제적 감각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후보자 스스로 “우리나라 공무원 중에는 전무후무하고 아시아에서도 흔하지 않은 사례다. 그때 정말 많이 익혔다”며 “농협금융 경영 방향에 관한 질문이 많은데 나의 경력을 되짚어보면 답이 나온다”고 자신하고 있다. 경제 관료와 해외 경험에다 수출입은행장으로 시장 경험도 있다는 것이 자신감의 원천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재경부 복지생활과장 시절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었고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때인 2007년, 17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를 해결했다. 2009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때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농협금융 회추위 역시 김 후보자의 이 같은 경험과 역할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증권·보험을 비롯해 금융업 전체에 대해 관료와 은행장으로서 폭넓게 이해하고 있고 해외 실무 경험을 통한 국제 감각도 갖췄다는 얘기다.
김용환 후보자에 대해서는 ‘무난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대놓고 환영하는 것도 아니지만 크게 반대하지도 않는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농협노조 역시 같은 관료 출신인 김석동 전 위원장에 대해 반대하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게 김용환 후보자를 대하고 있다. 김용환 후보자에 대한 퇴직공직자취업심사는 오는 4월 24일 예정돼 있다. 심사에서 통과되면 김 후보자는 농협금융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으로 선임된다.
모든 과정을 거치고 회장으로 선임된 후 김 후보자 앞에 쌓인 일은 만만치 않다. 우선 전임 회장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더욱이 전임 회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탓에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김 후보자의 부담은 더할 것으로 예측된다. 김 후보자는 “농협금융을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키울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또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와 유기적인 협력 관계의 중요성도 피력했다.
일부에서는 김 후보자가 회장 선임 후 농협중앙회와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올해 말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김 후보자가 중심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비록 지분을 전부 갖고 있지만 농협금융 자체적으로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며 갈등 가능성을 부인했다. 농협금융 관계자 역시 “금융 자회사 인사도 모두 농협금융 회장이 직접 할 만큼 중앙회의 간섭이 없다”고 강조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